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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10.03.22 21:25

인문학 콘서트
_ 고미숙 | 김경동 | 김광웅 | 김기현 | 김영한 | 김효은 외/이숲,2010-01-10 00:00:00

작년,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속된말로 간지나는 그래픽노블 양장본을 들고, 이 책이 재미있을까? 의구심에 가득 차 '브이 포 벤데타'를 읽었던 것이.
그때 책의 머릿말에 씌여있던 이 책은 뉴스가 시작되어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입니다,라는 글을 읽으며 조금 뜨끔한 느낌을 가졌었다. 뉴스가 뉴스가 아니라 쇼,라고 생각한 이후 이슈가 되는 뉴스가 있을 때만 가끔 쳐다보던 뉴스를 그 이후에는 조금 열심히 지켜보려고 노력한것은 그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하릴없이 뉴스방송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가지 토픽이 지나가고,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던 아이티 뉴스가 이제는 점차 밀려나더니 이제는 구조소식도 아니고 아이티를 위한 모금활동을 보여주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대사관의 역할은 어떤가,를 이야기한다. 성급한 맘에 뭔 개뿔같은 소리를 하나 지켜봤는데, 소위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대사관 직원들의 행태에 대한 고발이었다.

아이티의 지진대재앙 이후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구조대원이 아이티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119구조대원도 역시 파견되어 최소한의 짐만을 꾸리고 육로로 머나먼 길을 찾아가 구조활동을 시작했고 열흘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물이 모자라 샤워도 못하고, 침낭도 없이 맨흙바닥에 모기장하나만 치고 잠을 자고...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올수가 없다며 그저그렇게 열악한 사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119구조대원의 인터뷰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프랑스나 영국같은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못사는 나라들로 이루어진 남아메리카의) 에쿠아도르 구조대원의 '샤워는 매일 하고 있습니다. 매일하지 않고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지요?'라는 반문으로 더욱 어이없어졌다. 그 뒤에 이어진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의 인터뷰와 대사관 직원들 임시숙소에 쌓여있는, 수백개는 되어보이는 콜라와 맥주캔, 포장도 뜯기지 않은채 혹시 언제 방문할지 모르는 국회의원들, 대사관 직원들을 위해 쌓아둔 매트를 보고 있으려니 화가나는데, 소위 우리나라에서 외교관으로 해외에 파견된 대사라는 작자는 '스스로 생활이 가능하고 자급자족이 되시는 분들만 찾아와주시면...'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화가난다.

나는 '인문학 콘서트'라는 책을 읽는동안 '먹고 사는데 인문학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뉴스를 보고 나니 그 물음이 얼마나 절박한것인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문학 콘서트는 인문학에 대한 여러분야의 전공자들이 자기분야의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콘서트 연주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고, 이것이 인문학이라는 것이구나 감탄하고 있었지만 정말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오늘의 뉴스로 인해서이다.

119 구조대원은 자신의 일이 생명을 구하는 일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삶의 모습으로 체화시키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앎과 삶은 구분되는 것이 아닐것이다.
모든 사랑의 기본은 '측은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든 길가의 풀이든, 어쩌면 고통일지도 모르는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인간이라는 사실에 너무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겸허하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아야겠지요.(289)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인문학 따위는 집어치우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어 제 몸 하나 살찌우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어느 대학을 가야하는지에 더 혈안이 된 사람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똥덩어리 지식으로 가득찬 이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본래 앎의 목적은 결국 좋은 삶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학계에서는 앎과 삶의 관계는 도외시하고 그저 앎 자체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것을 소위 '아카데미즘'이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까 앎의 범위나 내용은 넓고 깊어지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점에 대한 생각은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은 아예 저 밖에 있고, 우리는 그저 조각난 부분들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삶과 앎 사이에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봅니다.(234
)

삶과 앎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모든 학문 분야가 내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이가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삶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리의 현재인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막대한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에게, 교육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깊이있는 성찰을 하자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다.


- written by 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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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감옥에 산다는 이야기를 사회학자가 했다면 편하게 이해하련만 한 건축학자의 이야기이다. 아니 저자는 명확히 감옥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팬옵티콘(pan - optincon : 넓은 것을 한눈에 보기)는 근대에 와서 감옥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즉결심판이 주류였으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교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면서 대규모 수용시설이 필요하였다. 최소한의 간수들이 최대의 죄수를 가두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감시의 효율성이 강조되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고 알려진 벤담의 공리주의는 가장 합리적인 즉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최초의 팬옵티콘 건축은 동물원이다. 제국주의로 세계 식민지를 개척한 프랑스는 각 대륙의 동물(원주민 포함)을 구역을 나우어 배치한 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오만을 즐겼다. 가운데 첨탑이 있고, 주변을 두르는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권력의 비대칭성이 건축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눈요기거리인 원주민들은 같힌 공간에서 발가벗힌채 구경거리로 전락되었다.

 

어두운 첨탑과 주변을 두른 죄수실 모양을 갖춘 판옵티콘 교도소는 드러내놓고 권력의 위치를 실감시키는 것이지만, 감시의 효율성은 근대 집합건물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위인으로 알려진 나이팅게일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야전병원을 효율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방마다 있던 치료실을 긴 침상으로 연결해놓고 가운데에 간호사의 동선을 배치해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서대문 형무소와 학교의 기본구조는 동일하다. 청주여자교도소와 중정형 아파트는 모양이 유사하다. 감시는 효율성에 맞닿아있다.

 

대형 집합건물이 아닌 상업적인 곳에서 작용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욕망이다. 테헤란로에 즐비한 재벌 사옥들을 보면 1층은 비어있다. 비싼 땅의 1층을 비어놓고 수 억원 대의 미술품 하나나 둘 정도를 두는 것은 그 자체로 재벌이 가진 경제력을 외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은행이나 편의점을 두어 받을 수 있는 임대료 대신에 경제적 힘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유럽에서 백화점은 원래 중산층의 소비를 따라가고자 하는 하층 중산층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었지만, 근대화로 인해 외부에서 이식된 우리는 백화점은 중, 상류층의 소비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럽의 상류층은 출입구에서 문지기를 통해야 갈 수 있는 곳을 이용했다. 최근 빈부격차가 강화되면서 명품관이 이런 형태를 답습하고, 최고의 명품 소비는 과거 유럽 상류층의 형태를 쫓아간다.

 

하나의 건축물에서 벗어나 도시로 본다면 어떨까? 프랑스의 개선문을 중심으로 사통팔달형 도로를 뚫어 방사형 도시구조를 가진 것은 프랑스혁명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 혁명기를 거쳐 집권한 나폴레옹 3세는 바리케이트를 무력화 하기 위해 도로를 넓히고 신속한 진압을 위해 도로를 방사형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요즘은 격자형으로 도시 설계를 많이 한다. 격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의미상으로 다른 것은 동양의 도시 형태이다. 동양의 도시는 정(井)전제라는 농촌 세제의 형태를 그대로 취한다. 주변의 8방을 외부에 두고 가운데 황제가 기거하는 형태이다. 최근 북경의 지하철을 2050년까지 이런 모양으로 만든다고 하니, 아직도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건축에도 그대로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은 어떨까? 정(井)모양을 근간으로 하되, 그 질서가 있다. 전조 후시 좌종 우사이다. (앞에는 조정을 두고 뒤에는 시장을 둔다. 오른쪽에는 사직을 두고, 왼쪽에는 종묘를 둔다.) 경복궁에서 서 보면 과연 그렇다. 다만 정도선이 처음 수도를 열때 풍수지리의 여향을 받아 배산임수 즉 산을 뒤로 하여 시장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런 시스템은 궁의 형태에서도 그대로 제현된다. 전조 후침 좌동 우모 (근정전의 앞은 대신들이 서있고, 뒤에는 침실을 두며, 오른쪽은 어머님의 처소를 두며, 왼쪽은 동궁의 처소를 둔다). 다시 침실로 들어가도 그대로 적용된다. 네 명의 상궁들이 임금의 침실을 두르며 잠자지를 살핀다.

건출물과 도시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예술보다는 권력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 하나의 집은 개별적으로 지었을 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조형은 가장 효율적인 관리라는 방식을 취한다. 동양에서 권력의 정점인 임금을 중시으로 사방 팔방을 두르는 방식은 유럽의 집합건물의 판옵티콘에 맞닿아 있다. 건축은 그런 권력의 비대칭성에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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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8일 르네(www.renai21.net)의 금요강좌 <도시를 말하다> 첫번째 저자 강연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의 서윤영의 강의가 있었다. 건축을 생각할 때 기술로 바라보던 시각이 교정될 수 있었다. 혹자들이 건축을 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보기도 하고, 건축에서도 행태 즉 사람들과 환경을 고려한 분야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의 건축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서윤영 (궁리, 2009년)
상세보기

 

Q / A  

 

영국 박람회때 수정궁을 설계한 것은 원예사라고 했는데, 건축가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당시에는 대부분 목재로 틀을 잡는 건축을 했습니다. 또 박람회까지 시간이 없었죠. 그런데 원예사들은 화원이나 온실을 만들 때 유리와 철골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이 기술은 최첨단이었죠. 그래서 빠른 시간과 유리와 철골을 이용한 수정궁의 설계를 원예사인 사람이 설계를 맡게 되었씁니다.

 

 판 옵티콘이 적용돼었다고 해서 과연 감시와 피감시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이팅 게일의 병원 시스템은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득이 아닌가? 청주여자교도소의 경우도 감시탑이 사실상 낮아 오히려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

 

A 감시라는 것은 하나의 표현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건물주나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의 권력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감시는 한편으로는 효율성으로 볼 수 도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소비형태가 서재가 생기고, 넓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가족내의 여성의 위상 강화를 보면 남성만의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인가요?

 

A 과거에는 건축물 자체가 영업과 사업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갈 수록 업무는 외부에서 하고, 집은 사적 공간으로 나뉩니다. 따러서 외부와는 차단된 자기만의 공간화 됩니다. 침실이 여성의 전용공간화되어 갈 수록 남자의 전용공간의 대한 욕구도 강화됩니다. 서재는 꼭 남자만의 공간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공과 사적 공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구요. 남녀간의 성적 견제로 보기는 힘든 점이 있씁니다.

 

건축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A 건축에서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은 우선순위에서 뒤집니다. 기능과 구조, 심미 세 요소 가운데 기능과 구조가 더 중심적입니다. 심미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건축물을 근거로 건축의 심미만을 강조하기는 힘듭니다.

 

강사가 예쁘다고 좋은 강의일 수 있는가요? 결국 강의 내용과 태도 등이 중요한 것 처럼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어, 박물관 같은 경우 뛰어난 외형미를 갖추는 데, 그런 경우에는 외관 자체가 하나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경우도 건축물의 미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의 목적 자체에서 외관의 아름다움을 함께 해야 합니다.

 

건축과 도시, 건축과 인문에 대한 풍부한 느낌을 준 2시간 반의 강의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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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수학은 옷으로 이야기하면 아주 낯선 정장이다. 기호가 날라다니며 정답을 강요하는 것에서 인간미를 느끼기 힘들다. 수학과 인문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게 당연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기호 X와 철학이 같아지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런데, 잠간 생각해보니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철학자들이 있었지 않은가. 직각삼각형의 원리라는 문제 풀이에 자주 인용되는 원리를 발견한 피타고라스는 수의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봤다. 악보에 보면 숫자로 다 표시되지 않는가. 피타고라스에게는 수는 우주였다. 절대 불안전할 수 없는 완벽한 어떤 것.

 

그에게 √(루트)는 용납될 수 없는 수이다. √2 는 1.414... 무한히 반복된다. 완벽한 우주를 생각한 그에게 이런 수는 용납될 수 없었다. 이 수를 발견한 제자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연로그에 사용되는 e와 π(파이)도 무리수이다.  이 무리수들과 허수 i(imaginary number)가 만나면 일반 정수가 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는 eπⅰ+ 1=0이라는 오일러의 유명한 공식에서 i는 사랑의 메신저러 해석한다. 무한히 지속되는 우주의 수 두 가지의 조합이 상상의 수 i를 만나면 일반 정수처럼 뚜렷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고 해석한다. 또, 여기에 등호의 미학이 있다. eπⅰ= -1 은 마음에서 하나를 빼내어 당신을 묻고 산다는 뜻이라면, eπⅰ+ 1 = 0 우리에게 남은 것은 비어있음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학과 사랑의 만남이 가능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쉬에게 물어야 한다. 어느 날 친구들과 들른 바에서 예쁜 아가씨들이 있다. 그 중 한 여자는 누가 봐도 예쁘다. 늑대들이 침을 흘리며 그 여자에 눈독드릴 즈음, 내쉬는 잠간 생각해본다. 모두들 그 여자를 꼬시려고 한다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짜를 맞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에게 접근하면 역시 퇴짜는 기다리고 있다. 결국 가장 현명한 방법은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두들 좀 덜 이쁜 여자들과 짝이되고자 한다면 모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는 아니겠지만. 이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내쉬의 균형이론이다. 『뷰티플 마인드』는 이 이 착안을 통해 논문을 쓰고, 노벨경제학상이 받게 된 인물인 천재수학자 내쉬를 이야기한다.

 

연애의 심리학에 쓸모 있는 수학이 되었다. 물론 그의 이론이 경제학 관련된 분야에서 더 많이 쓰이지만. 연인들에게 좋은 추억중의 하나는 밤하늘의 별이다. 몇 달 만에 가 본 여행지에서 별을 보면 멀리 있는 두 별이 헤어졌다가 만났다가 한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그 별들의 관계를 나타나는 주는 게 ‘사이각’이다. 작도기 없이 사이각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삼각법이 있다. 사인, 코사인 어쩌구는 천문을 보면서 머리 좋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 만든 결과만 보자니 참으로 알수 없는 외계어가 둥둥 떠다니고, 문제만 풀어야 할 우리들에게 수학은 그만큼 낯선 타인이었을 뿐이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헤드의 『수학이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아는 수학의 개념들에 대해서 철학적인 안내를 해준다. 그가 쓴 책 중에서 가장 쉽다는 이 책은 수학에 조금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도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다시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돌아가 보자. 혼자 사는 완전수는 28이다. 28을 구성하는 약수들은 서로 합하면 자신과 동일하다. 애초에 혼자 살 팔자인 사람도 있으려나. 그러나 다른 두 수가 서로의 약수의 합이 똑같다면, 그건 천생연분이 아닐까. 이런 수가 우애수이다. 220과 284은 우주적인 인연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미분과 적분은 순간과 이어짐, 그리고 공간을 넘어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미분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정지된 것을 말하는 듯 보인다. 긴 공간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자신을 상상해보자. 어떤 특정 순간에 멈추려고 해보자. 무한한 연장에서 사실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순간으로 다가가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이 미분이다. 곡선이 직선으로 변한다. 우리가 사랑한 그 순간 자체는 잘라낼 수 없지만, 미분을 통해 그 순간을 정의내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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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8.05 22:29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 Science & Society 03
_ 프란시스 위스타슈 (지은이), 이효숙 (옮긴이)/알마,2009-01-23 00:00:00

기억이란 정보를 기호화하고(기록하고),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게 할 수 있는 기능이다. (16)

우리는 '기억'이라는 말보다 '추억' 그리고 '기억력'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서 '추억'이란 '저장하고 다시 불러'온 기억에 해당될 것이고 '기억력'은 기억을 활성화하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라는 의문이 이 책에게 나를 다가서게 하였다.

기억은 우리의 추억과 지식의 정신적 표상을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현상이다. 같은 사건을 경험한 두 사람이 그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흔적을 보유하고 있다. (45)

최근에 아내랑 이야기를 하다 말문이 막히는 때가 늘었다. 몇 년 전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기억이 끊겨버리는 경우이다. 도대체 이러한 기억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기억은 사건을 지속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관심이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그 순간은 똑같이 보존되지 않는다 (111)

그러고보니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이 이러한 기억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사람들의 불완전성과 우리들 행동의 엇갈림을 통하여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고 있는데 이 역시 '기억'의 불완전성 탓에 비롯된 얘기이리라. 여기 '기억'과 '기억상실증'과의 연관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실험결과) 처음으로 환자를 만나면 손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그런 다음 환자를 떠났다가 2~3분 뒤에 다시 가면 환자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환자에게 나를 이미 본 적 있느냐고 물으면 환자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질문에 대한 답에서 환자는 의사의 방문을 잊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이 대답은 3분 전에 의사와 만났던 일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서는 예견된 대답이다.
반면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은 정상적인 태도다. 몇 분 전에 본 사람에게 또다시 손을 내밀지는 않으니까. (26)


그러니까 몸은 본능적으로 앞서 인사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뇌는 기록을 하고 있는데 의식은 다시 만난 의사를 불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기록하고 저장하고'는 몸에 되어 있는데 '다시 불러'오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책에는 약간 어려운 표현들로 설명되고 있지만 간단히 말해 두뇌의 어떤 부분이 손상되어 특정한 기억을 불러오지 못하는 것이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억도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사건에 대한 표상은 시간이 흐르면 주체의 경험과 바람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74)

나는 여기서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10분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 이야기, <메멘토>라는 영화는 '기억'이 '기록'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조작하는지, 그리고 그 남겨진 기록이 다시 지금 나의 기억 - 좀 더 근접한 느낌으로 말하자면 회상, 또는 추억 - 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에 관한 모범답안 같은 내용으로 많은 이들을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작품이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든지 엉망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기억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시라.

오랜 시간에 걸쳐 주체의 관심과 욕망에 따라 기억이 구축된다는 점은 실제적인 사건과 이 사건에 대한 기억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부정확성은 우리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이긴 하지만, 인간관계와 사회적인 기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만한 정도여야 한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 한가운데 있다. 기억은 주변 환경의 요구와 우리의 내적 일관성 사이에서 바람직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73)

사실 기억에 관한 연구는 뇌에 관한 연구와 거의 동일시되며 뇌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점점 더 넓고 깊은 세계로 진화중이다. 물론 나는 그만한 지식이 없으므로 그 연구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 책을 통하여 위안이 되는 것은 부족하고 모자라고 왜곡된 나의 기억이 나의 어떤 모자란 성향 탓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뇌의 일반적인 활동의 일부분임을 알게된 것이다. 이래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다.

기억상실증 환자는 지난주에 비행기를 탔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툴루즈가 분홍빛 도시고 로마가 이탈이라의 수도라는 것은 안다. ~ 왜냐하면 그 환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훨씬 전인 아주 오래전에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102)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하루하루를 좀 더 조신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설사 기억상실증이 오더라도 이미 각인된 기억은 그대로일 것이기에 곱씹고 되씹으며 좋은 기억들만 챙겨두어야겠다.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대비하여서라도…. ^^

기억을 이해하고 기억 관련 질환을 않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116)


2009. 7.5.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들풀처럼

*2009-15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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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7.13 11:33

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_ 이현우 (지은이)/산책자,2009-05-18 00:00:00

 
옛날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엔 다르다. 10년이 아니라 1년만 지나도 세상이 확확확 바뀌는게 느껴진다.
이른바 IT산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고 거기에 맞춰 사람들의 삶도 변해가다보니깐 1년이란 세월이 요즘엔 아주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는 시간인것이다.

그전에는 없던 책 출판형태가 나타나는 것도 그런 일환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적은 글들이, 종이에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는 출판의 형태로 나오는게 그 하나이다.
어떻게보면 남에게 보이는 '일기'를 쓰는 셈인데 블로그라는 글쓰는 공간이 큰 촉매제가 되었다고 볼수있다.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지식을 그냥 풀어놓거나,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소박한 목적에서 시작했을수도 있는 것들이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서 나름 막중한 임무를 띄게 되는 경우도 많다.

여러 분야의 많은 글잘쓰는 고수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을 바탕으로 책을 낸 가운데 여기 또 한명의 글쓰기 스타가 책을 냈으니 이번엔 인문학자다.
'로쟈'라는 필명을 쓰는 러시아문학전공자라고 하는데 지은이 스스로의 말에 의하면 '하는
일에 비해서  좀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인문학쪽의 책을 곧잘 읽기는 해도 블로그를 일일이 찾아갈만큼 열성적이진 않은 나도 언뜻 들어본 닉넴이니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다.

사실 지은이가 주로 서식하면서 글을 풀어놓는다는 인터넷 서점에 나도 블로그를 갖고 있긴 해도 서평을 저장한다는 의미로만 활용할뿐, 소통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기에 다른 블로그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처음 방문을 해봤는데 유명인이 된  이유를 알았다. 보기 좋게 정렬된 여러 분야의 논리정연한 글들을 보니 과연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걸로 끝이었다. 눈 아프게 인터넷으로 긴 글을 보는게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책은 참 반갑다. 물론 올린 글을 전부 책으로 낸 것도 아니고 책으로 펴내면서 고친 부분도 있지만 일단 편한 자세로 내가 읽고 싶은 부분을 눈 아픔 없이 읽을수있다는게 좋았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전문적인 인문학자의 책읽기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기대를 한건 좋았지만 책을 펴는 순간 살짝 한숨이 나왔다. 그 옛날 책만 봐도 한숨이 나왔던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풀어도 풀어도 다 못풀 수학문제로 가득찼던 그 책을 보고 느꼈던 느낌이 이 책에서도 느낀 이유는 두꺼운 책에 글자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많은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분권을 하지 않고 한권에 넣은 그 뜻은 알겠으나 기본적으로 머리 아픈 것은 어쩔수 없었다.

책은 크게 5가지 부분으로 나눈다. 지은이가 러시아 문학 전공자답게 러시아 문학과 책읽기, 문체등에 관한 이야기가 한 꼭지를 이루고 두번째로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그리고 철학, 지젝, 번역에 관한 이야기가 뒤를 잇는 형식으로 책 내용을 이루고 있다.

사실 내용 자체는 크게 기억에 남는것이 없는게 지은이가 언급한 책들중에 읽어본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읽었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읽었다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지젝같은 경우에는 이름만 들어본 경우라서 잘 읽히지도 않았다. 제일 편하게 읽었던 부분은 영화를 이야기한 예술쪽이다. 거기서 이야기한 영화를 거의 다 본 탓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인문학자가 생각했던 부분을 비교하면서 읽으니 흥미로왔다.

이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번역에 관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번역부분이 문제가 많은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러시아어 전공자로써 이른바 외국어를 다루는 입장에서 번역을 잘해야한다는 그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로만 지식을 축적할수는 없기에 외국인이 쓴 책들이 적극 들어와야하는데 그만큼 번역이 중요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것이 문제일것이다. 지은이같이 번역에 대해서 깐깐한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나라의 번역 문학도 좋아지려나.

글은 전체적으로 그리 쉽게도, 그리 어렵게도 쓰여지진 않았다. 인문학에 관한 기본 소양이 없다면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는 내용인데 찬찬히 읽는다면 나름의 재미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많은 내용을 한권에 넣으려고 한건지 아니면 편집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활자로 가득찬 책을 보는게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글자가 빽빽한 책을 잘 안 읽은 탓이려니 하긴 해도 선뜻 완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어쨌던 이런 책은 많이 나와야한다. 아무리 첨단과학의 기술이긴 해도 그것을 만들고 발현하는것은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의 밑바탕에는 인문지리적인 것이 기본이 되어야 제대로된 것이 나올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멀어진 인문학을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누구나 인문학을 편하게 읊을수 있을때까지는 지은이에게 인문학 전파의 소임을 부탁할수밖에 없겠다.



- written by 살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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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6.21 19:05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_ 이준구 /푸른숲,2009-04

제가 이 자리를 빌려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더 열심히 듣도록 노력해달라는 것입니다. ~ 또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성급하게 모든 것을 뜯어고치려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 에필로그에서 ) (325)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라 칭하는 주류경제학자인 이준구 교수, 그의 말처럼 그는 보수적인 학자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좌빨'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당연한 일이다. 생각이 있는 이들이라면 지금,오늘의 우리 경제정책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비판의 날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모든 정책들이 상식과 여론을 무시하고 가진자들을 위한 것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칭하는 지은이의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오히려 참담하다. 대운하의 허구성, 주택정책의 문제점, 망가져버린 종부세에서 교육문제, 일상적인 정책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확하면서도 쉬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느는 것은 한숨이다.

지은이가 일러주는 정책들만 제대로 시행이 되어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정책 시행 하나로 위기의 경제가 갑자기 살아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우리도 함께 가면 되겠구나라는 느낌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네 마음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짚어볼수록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서 마지막에까지 지은이는 '간곡하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것이다. 그들이 듣고싶은 자세가 안되어 있다는게 거의 확실하지만...

드디어 오늘이다. 이 책에서 줄곧 지적한 정책의 일방성이 가져온 최대의 결과인 前 대통령의 죽음이 마무리의 단계로 넘어가는 날이다. 착잡하고 또 우울하다. 돌이켜보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는 정부라니, 게다가 앞으로 3년 더라니, 악몽은 계속된다. 하여 지은이가 이 책의 제목을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라고 지은 것이리라. 정말 우리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숨은 늘어간다.

저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구상에 본질적인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특정계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 시지프스의 바위,교육에서, '독자에게 드리는 글') (194)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시론들을 묶어내면서 지은이는 각 주제의 머리부분에 '들어가는 말'로 지금, 현재, 이 땅의 상황들에 대하여 친절하게 다시 짚어주고 있다. 물론 그 지적은 대부분 옳지만 시행은 요원하다. 앞으로 기대를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개인이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서도 '경청'이란 과정이 필수적이거는 도무지 듣지않고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 정부는 무얼 저지르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갖게한다. 참 답답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스스로의 실력을 쌓으며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다. 시간은 흐를 것이고 힘들고 괴로운 날들도 지나가리라. 이제는 살아남아 다음날을 준비해야하리라. 묵묵히 고개들어 하늘 한 번 보고 터벅터벅 우리의 길을 걸어가리라.

이념은 정책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유일한 잣대는 합리성이다. (뒷표지에서)


2009. 5. 28. 잠들지 않는 새벽,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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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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