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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6.07 18:17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_ 이석우/시공사,2002-05-29 00:00:00

 독일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요한 드로이젠은 “역사야말로 동시에 예술이 될 것을 요구받는 모호한 행운을 누리는 유일한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역사란 당대의 숨결에 공명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로 태어난다. 그렇기에 후대의 우리는 예술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연결해 과거를 나름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리비도적인 관점으로 인지하는지 모른다.


한국의 유명 역사학자 이석우가 쓴 <그림, 역사간 쓴 자서전>은 과거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거나 그것 안에서 다른 자의식을 표출한 예술가들의 그림을 역사와 연계해 풀어가는 미술사 서적이다. 위대한 인류 문화유산으로 칭송받고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 ‘들소와 사람’에서부터 한국의 정치사회적 환경 안에서 절망하거나 그것을 위무하려했던 김병기의 그림 ‘인왕제색’과 권순철의 ‘넋’까지, 역사학자는 역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위대한 그림의 역사를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역사학자다운 비판의식으로, 때로는 시대의 아픔에 동승하는 한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미술사에 대한 무지한 지식을 늘리고자 그간 여러 권의 미술서 관련 서적과 화보를 읽고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르네상스,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인상파,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파 등 각각의 미술사조를 시간의 순서에 억지로 끼워 맞춰 설명하고 있어 역사와 연관돼 고찰하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했다. 때문에 아무리 미술사 관련 책을 읽어도 왜 이 그림이 이 시대에 ‘왜’ 또는 ‘어떻게’ 그려졌고, 이것을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명작이네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가에 대해 나는 무지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미술과 역사에 대한 갈증을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은 다소나마 해갈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요 근래 본 미술관련 서적 중 단연 최고의 책이었다.


총9장으로 나뉜 책의 목차는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근대, 그리고 현재별로 나뉘어 각각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상징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그림과 역사의 시간 속으로 읽는 이를 빨아들인다. 이석우 역사학자 자체가 그림에 매료된 사람으로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시대의 명화를 감상한 생생한 소감과 그것을 역사의 향기로 풀어내는 글솜씨는 가히 최고이다.


특히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명저를 남긴 역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음을 책의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를 과학, 즉 객관적 과거의 시간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시(詩)로 파악해, 역사를 문학과 예술의 세계로 이해하려 했다.


때문에 이 책 역시 이런 관점에서 역사와 예술을 독자가 마주할 수 있도록 써졌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대가의 그림들 안에서 역사의 숨결과 고통, 환희, 절망 등을 자연스레 공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정 이렇게 읽는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림’을 보고 읽는 것에 흠뻑 빠져 본 것은 처음일 정도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역사와 그림 소개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근대화의 시절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5장, 화려한 진보의 뒷모습’부터였다. 그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그 시대에 더 이상 왕과 귀족에게 후원의 명목으로 예속된 고용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느끼고 표현하고픈 것들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들을 혹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고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내면의 고독과 싸워야 했던 ‘불운한’ 예술가의 시대를 겪어야만 했다.


 





이중 반 고흐의 ‘운동하는 죄수들’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 해석과 예술적 가치를 설명한 대목은 막연히 고흐를 좋아했던 나에게 일순 번쩍할 정도의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말년(말년이라 해봤자 35세다)에 생 레이미 정신병원에 수용됐을 때 그린 그림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구스타브 도레의 ‘교소도의 운동장’을 자신의 정신세계와 연결시켜 모사한 그림이다.


그런데 높다란 병원의 건물 벽 사이로 원 대형을 이루며 걸어가는 환자(혹은 죄수)의 모습은 고흐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고 있음에도 그 시대의 아픔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석우는 고흐의 ‘그림에는 한 치의 속임수도 없었다.’고 표현했다. 난 그의 표현에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감동 한방을 제대로 얻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고흐의 그림을 한 개인의 불운에서만 보려했던 나의 편협한 시선의 잘못을 깨달았고 고흐의 그림에서 그 전 어느 때보다 깊은 감동을 받기까지 했다.


이로써 진정 과거의 시간을 예술가의 주관적인 취사선택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 왜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림을 볼 줄 아는 대단한 안목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도식적인 설명에 의지한, 막말로 한쪽 눈 감고 보려했던, 나의 미술보기의 즐거움을 분명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대두된 부르주아의 출연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구폭발에 의한 개인의 존재적 박탈의식과 소멸감을 담은 엔소르의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도 근대의 이면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어 신선했다. 이석우는 엔소르의 그림에 빗대 ‘진보란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저 19세기 말에만 해당하지 않고, 오늘날의 진보에 퇴행까지 포섭하는 모습을 고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시대는 직․간접적으로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쳐, 한 폭의 그림을 남겼다. 허나 그 시간이란 것은, 결국 지금의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엔소르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또한 내가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이 책을 통해 체득한 부분이다.



현재, 우리는 혁명을 꿈꾼다. 부조리한 정권의 행태로 인해 사회 전반에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혁명의 이중성을 샤갈은 자신의 그림 ‘혁명’(p.266)에서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출신 샤갈이 1차 대전 당시 모스크바에 머무르면서 목격한 혁명(레닌의 10월 혁명 또는 볼셰비키혁명)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였지만, 현실과 환상의 괴리로 말미암아 실패의 시간으로 역사에 각인되어 있다. 이것을 샤갈은 1937년 ‘혁명’이란 그림 안에서 자신의 내면에 각인된 고통과 과거의 시간에 새겨진 혁명의 의미와 그 상흔을 역설적인 배치로 표현해냈다.


이석우 역사학자는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며 또 역사가 진실을 말해 줄 때까지는 얼마만큼을 기다려야 하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며 곤혹스럽기까지 하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샤갈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훗날 오늘의 한국이 겪고 있는 이 모든 부당한 일들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를 상상하게 됐고 두려움에 순간 움찔했다. 역사란 책임을 끝끝내 묻고 마는 생물적인 ‘결과물’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지금을 이런 식으로 내가, 우리가 방조(傍助)하는 것은 분명 뼈아픈 책임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돌아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샤갈의 그림은 그 점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었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앤디 워홀을 위시한 팝아트 이후, 보이는 것을 다시 보이게 하는 예술의 세계를 걷고 있다. 예술을 대량 소비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얼마나 과거와 연계해 예술을 소비하고 있는지 한번 쯤 자문 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보는 이의 의식과 이미지의 충돌을 의미하며, 그 이미지는 한 예술가의 가치관과 생애 그리고 그림을 그린 순간의 내면의 의식을 표출한 것이기에, 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역사와 시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술은 역사의 표정이며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자 역사와 만나는 직접적인 통로이다.’(p. 318) 또한 ‘세월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과 함께 자란다.’(p.322). 그러기에 나는 그림을 보면 마음을 키울 것이고 개인의 역사를 촘촘히 이어나가려 한다.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은 마치 나의 자서전을 보는 듯한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고 그럼으로써 예술과의 거리를 한 발짝 더 좁힌 것만 같다. 이제 그림에서 역사를 물을 때 ‘왜?’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를 스스로 묻고 답하며 그림과 진정으로 마주하고 소통하고 싶다. 설사 그것이 내 안에 내재된 고통과 상처의 시간을 다시 꺼내보게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 written by 빨강머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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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10.03.02 21:11
그래도, 희망의 역사
_ 장수한/동녘,2009-12-01 00:00:00

역사는 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 조금 중구난방이다. 많지 않은 책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하곤 했다. 각자가 자란 환경과 기타 여건에 따라 역사를 보고 해석하는 방법이 모두 달랐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축적한 것이라면 외우면 그만이다. 한때 역사의 기록은 정확하고 공정하다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눈을 뜨고 얼마나 쉽게 왜곡이 벌어지는가 알게 되면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부제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역사 읽기로 되어 있다. 단순히 역사를 읽는다고 나와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그에 따라 나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게 된다. 한 개인의 변화가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변화의 시작이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은 나에서 시작하여 민족, 국가, 자연 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저자는 바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한 두 가지로 관계와 변화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두 여덟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로 시작한다. 역사에 왠 음악인가 하는 순간 이 음악이 왜 역사인지 설명한다. 이 음악 속에 그 시대의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를 말하고, 역사의 창조자로서 인간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역사의 두 시선인 관계와 장기 지속을 동서양의 두 제국이었던 로마와 당 나라를 통해 설명한다. 이후 자국의 역사를 남기지 못한 인도 이야기로 나를 놀라게 하고, 늘 역사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우연과 필연을 통해 역사의 변화 법칙을 알아본다. 흔히 말하는 역사는 진보하는가를 둘러본 후 역사의 주체가 누군지 생각해본다. 이후 자본주의 제도들인 개인, 국민국가, 시장을 살핀 후 마지막 장에서 미국 자본주의는 세계의 모델인가를 역사 속에서 검토해본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 중 많은 것들이 알고 있던 내용이다. 인도가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했지만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알았던지 몰랐던지 상관없이 이런 사례들은 저자가 역사를 보는 시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 속에 담긴 의미와 해석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 하나로 그 시대의 삶을 파헤치고, 로마와 당의 몰락을 다양한 해석을 통해 살피고, 과연 1차 대전이 한 청년의 알살에서 시작된 것인지 돌아본다. 이런 사례들은 사실 이미 많은 역사가들의 글로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간략하면서 요약된 경우는 처음이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분명하다.

어린 시절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민중인데 너무 영웅들만 부각되는 기록에 불만을 가졌다. 나폴레옹과 링컨의 사례를 통해 그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왜 그들이 중요한지도 말한다. 단순히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시대와 인물이 정확하게 맞은 것이다. 흔히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한때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었던 민중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시민, 다중, 대중의 단어가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한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역사의 진보와 희망을 노래한 때문인지 저자는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에서 글을 썼다. 이 시각은 조용히 드러난다. 하나의 사례를 다양한 시각을 통해 분석하고 해석한 후 자신의 의견을 넣는다. 특히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장은 저자의 정치 견해와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개혁과 발전과 의지와 소통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희망을 펼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몇몇 사례나 해석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의 시각에 동의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세우려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 written by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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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1.04 10:48

석양 녘의 왈츠-제국의 붕괴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_ 프레더릭 모턴 (지은이) | 김지은 (옮긴이)/주영사 ,2009-10-26 00:00:00

 

역사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제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승리가 먼 훗날 그저 왕의 찬란한 업적으로 그려지는 걸 볼 때 나는 때로 불편하기까지 하다. 전장에서 병사들만큼 용감하게 싸우고 전사한 왕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주인공 앞에 나는 늘 가슴이 뛴다. 사실로서의 역사가 어떻든, 역사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많은 사건들이 내게는 살아있는 이유가 된다. 과거로 인해 현재가 존재하고, 현재로 인해 미래는 변해갈 것이다.


내가 비엔나에 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스트리아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비포 선라이즈>를 본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니 그건 정말 우연이라고 해야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비엔나까지 야간열차를 타던 겨울날,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타는 예약열차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운명이라고 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비엔나의 국립미술관에서 클림트의 작품들을 만난 것도 마찬가지다. 그 때 나는 클림트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란 걸 몰랐으니 비엔나에 대해 아는 건 단지 한국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달달한 비엔나 커피 뿐이었다. 그런 내가 비엔나는 물론, 오스트리아 제국과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알 리가 있었겠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본 비엔나를 떠올리려 했지만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대책 없는 여행자였는지만 실감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석양 녘의 왈츠>는 프레더릭 모턴이 지은 첫 번째 비엔나 이야기인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후속작이다. 제국의 붕괴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다루는 역사상의 실존 인물들이 대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빙자한 역사이야기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역사 속 비엔나로 떠나는 가장 즐거운 방법이다. 바로 그 1913년부터 1914년 시점이 이 역사소설이 다루는 범위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아주 사소한 발단이나 명분에도 처절한 살상이 자행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는 생생한 묘사는 그간 제2차 세계대전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넓은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황실의 불안한 대결구도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레닌과 트로츠키, 정신분석학의 대표주자 프로이트와 융의 대립까지 버물리며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흥미진진했던 세계로 이끈다.


앞서 저자의 이전 작을 읽었더라면 오스트리아 왕국 전반에 관한 인물들의 이해구도가 빨랐으리라 생각되어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아들이자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태자였던 루돌프의 죽음으로 시작된 고리는 지도자로서 아들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던 요제프 황제의 후계자 선정으로 이어진다. 후계자의 주인공은 바로 황제의 조카 페르디난트다. 그에게는 낮은 신분의 사랑하는 여인 조피가 있었는데, 황태자비가 된 그녀를 황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비참한 생활을 한다. 페르디난트 또한 늘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황제 때문에 곤혹스러운 시간을 견디다 결국 암살됨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의 막이 오른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과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오스트리아 제국의 붕괴는 예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현재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하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의 상황만 봐도 얼마나 많은 집단과 민족이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애초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아무런 노력없이 하나라는 틀에 가둬졌으니 비극의 발생은 시간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제1차 세계대전이 아니었다면 현 유럽은 물론, 세계의 정세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힘의 균형과 역사의 물줄기가 어느 정도 변했을까. 상상은 즐거운 일이다. 역사는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듯, 현재의 선택으로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과거를 역사로만 치부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흥미진진한 비엔나의 역사여행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지성적인 결정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우리의 미래를 영원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고, 그로인해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훗날 나 또한 역사로 기억되겠지만 아쉬운 선택이 아닌 최고의 선택으로 평가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실체가 분명한 일을 우연으로 치부하려는 행동이야말로 진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비겁한 변명이 아닌지 모르겠다. 


- written by 깊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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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12.12 23:30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_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 최용찬 옮김/난장이,2009-09-21 00:00:00

‘지롱드 주의 경찰 총서기로서 보르도로부터 유대인을 강제 이송하는 법령에 서명했던 모리스 파퐁에 대한 재판에서 사람들은 ‘행정 범죄’라는 말을 했단다. 업무상 자신의 상관에게 복종하는 행정 관료의 간단한 서명이 특정 상황 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어.‘-『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중에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면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지난 8년 동안의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달 8일 식민지 시절 일제에 협력한 인사 4000여명의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공개한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무용가 최승희,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소설가 이광수, 최남선 및 현재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인물들도 상당수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언론들은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느니, 편 가르기 한다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게 호들갑 떨 일인가? 해방된 지 64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 과거 청산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일제에 부역했던 인물들이 해방 후 현대사를 주도해 왔고 현재까지도 직간접적으로 대한민국 주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실이건만 그보다 더 심각한 원인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친일 기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마저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저자 아네트 비비오르카가 딸 마틸드에게 프랑스의 과거 청산에 대해 얘기한 것처럼 모리스 파퐁 지롱드주 총서기가 나치에 직접적으로 부역해서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지만 그가 행정 관료였기 때문에 업무상 행해졌던 간단한 서명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 청산은 직접적인 가해자 뿐만 아니라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한 역사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의 원제는 『엄마, 아우슈비츠가 뭐예요?』이다. 아네트의 딸 마틸드는 어느 날 옆집에 사는 베러트 아줌마의 왼팔 아래쪽에 새겨진 문신으로 된 번호에 충격을 받아 아우슈비츠에 대해 물어온다. 아네트는 혼란을 혼란스럽다. 학살의 역사를 어린 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그러나 그녀는 어린 딸의 질문이 그동안 스스로도 자문해 왔던 터라 과감하게 대화 형식을 빌려 마틸드에게 슬픈 역사를 담담하게 얘기해 준다.

그런데 머나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와는 먼 얘기로 들리는 아우슈비츠 학살에 대한 진실과 청산에 관한 얘기를 굳이 우리사회로 끌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딸아이의 질문에 대한 아네트의 대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오로지 유대인들에 관련된 사건이 아니란다. 아우슈비츠는 유럽의 역사에 속하는 거야....유대인에 가해진 민족 학살을 연구하다 보면 그 차원이 엄청나서 우리는 지칠 줄도 모른 채 삶과 인류 역사의 무든 깊은 측면까지 곰곰이 생각하게 돼.”

그렇다. 아우슈비츠 학살의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에 한정된 역사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슬픈 역사들이 진행되고 있고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더욱 우리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오늘날 사회적 발전과 진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가 전쟁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나치 부역자들을 찾고 있다는 아네트의 말에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해방된 지 64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이 친일파 후손들과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려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이없는 현실이지만 가깝게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한 5.18 민중항쟁마저도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에 부딪쳐 완전한 청산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아네트는 과거 청산에 대한 중요성을 마이다네크에서 살해된 역사가 이그나시 쉬퍼의 말을 인용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모든 것은 너희들의 유언을 후세에 전해주는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역사를 쓰게 될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살해된 민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결국 살인자들이 살해된 민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만약 살인자들이 승리하게 된다면, 그들이 이 전쟁의 역사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학살된 이 사건이 도리어 세계 역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 중 하나로 표현될 것이고, 앞으로의 세대는 그러한 십자군 기사들의 용기를 기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모든 말은 복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폴란드 유대인이나 바르샤바 게토, 마이다네크의 게토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세계의 기억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결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직 감정에만 호소하여 가르치는 역사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아네트의 말대로 과거 청산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가르쳐져야 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역사의 현장을 주도했던 인물들에 대한 처벌과 사회적 비난의 한 가운데 세우기 위함이 목적이 아닐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후세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남기려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독일의 위대한 작가인 파울 첼란(아우슈비츠 생존자. 아우슈비츠의 끔찍함을 시로 옮겼고, 살아남은 죄의식 등으로 삶과 화해하지 못하고 결국 세느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이 아우슈비츠에서 이름도 없이 살해되어 불에 태워진 이들을 애도하며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있다네” 라고 했듯이, 자신들을 살해하려는 의도에 맞서서 생존하고자 저항했던 선조들을 역사의 장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written by 아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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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11.20 16:28
밴버드의 어리석음
_ 폴 콜린스 지음 | 홍한별 옮김/양철북,2009-09-30 00:00:00

  

흔히 하는 말 중에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표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거나 그럴지도 모르는 천재와 세간의 비웃음을 받거나 혹은 아무에게도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채 존재에 대한 흔적도 남지 않을 바보가 어찌해서 종이한장 차이라는 걸까? 천재와 바보는 천양지차라는 표현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천재와 바보가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천재와 바보는 정말로 종이 한 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또 그 차이가 불러온 조금의 변화가 얼마간의 간극을 만들어내는지가 천재와 바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는 것 뿐.




 


13인의 어리석은 자들. 그들의 시작과 끝에 놓인 공통점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바로 이 천재와 바보 사이에서 간발의 차이로 바보가 되어버린 13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 다른 시대의 사람. 모두 다른 일들을 하던 사람. 모두 다른 배경과 다른 목적을 추구했던 사람들인 13인의 이 바보들은 때로는 일생을 불운하게 살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자신의 인생의 절정에 도달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지식인으로, 때로는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한 인물들이다. 모두다 조금은 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시작과 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 남다른 인생의 시작에 있어 모두가 다른이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가진 이들이었고 그 창의성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거나 혹은 이끌어내려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또 그렇게 시작한 인생의 끝이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두가 망각한 존재로 마무리 되었다는 것 또한 공통점일것이다.




 


천재가 될 수 있었던 바보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모두 잘못된 사고와 잘못된 결정으로 옳지 못한 인생을 살았던 실패한 인생 혹은 잊혀져야 함이 마땅한 인간이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앞서 거론했듯이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이며 이 차이는 그들의 의지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 시작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인류의 위대한 인물들의 현재에 이르러 많은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은 그들의 사고와 그들의 업적이 현대의 인류에게 거대하거나 혹은 핵심적인 가치로서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천재와 바보가 갈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있기 보다는 역사가 혹은 인류가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대의 요구에 너무나 충실히 부흥했기 때문에 한때는 부와 명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던 존 밴버드나 마틴 파쿼 터퍼는 그 시대에는 선택받았으나 시대의 흐름이 그들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기에 잊혀졌고,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고 인류를 위한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프랑수와 수드르는 당시의 시대에 선택받지 못했기에 이미 이전의 시대에서 잊혀져 버렸으며, 나름의 성공과 목적을 달성했으나 시대의 체제가 그를 보호하지 못한 탓으로 엉뚱한 이에게 그의 영광을 넘겨주어야 했던 이프레임 불이 잊혀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위대한 이름, 시대와 재능이 어울려야 탄생 가능한 신의 걸작품


누군가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 살아있을 당시 그의 재능과 뛰어난 지성이 빛을 발해 그에게 보상을 해줄 수 있다면 더더욱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관점이나 사람들의 요구가 상상 다채롭게 변화하는 탓에 어떤 위인은 살아생전 영광의 빛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죽어서야 그 이름을 새롭게 알리기도 한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천재였으나 바보로 기억되는, 혹은 기억조차 되지 못하는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음으로써 천재 혹은 위인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끝에 자신의 토양을 마련한 정직한 사람의 재능 위에 사람들의 관심과 시대적 배경의 선택이라는 거름이 있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천재나 혹은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재능만을 가지고는 가능한 것이 아니며 지금 우리가 위인이나 천재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롤모델로 삼는 많은 이들이 언젠가는 어리석은 13인의 이야기 목록에 14번째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재와 바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예스와 노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천재를 만드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여기에 시대의 요구와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져 선택되어지는 하나의 걸작품이라는 것으로 대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written by 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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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09.09.11 17:08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옛 그림을 곁에서 찬찬히 설명해주는 형태의 그림이야기이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당연히 나도 학생이 된다. 왜냐고?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기꺼이 학생이 된다. 정규교육을 대학까지 마쳤지만 이처럼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가만, 이제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교육 중인데 나만 모르는 건가.

서양에서는 알몸을 묘사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기 때문에 부끄러울 것이 없었거든요. 벌거벗은 몸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 하지만 우리는 달랐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중심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 속한 부속물에 불과했지요. ~ 더구나 벗은 사람을 그린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신윤복이 이걸 깼습니다. ( <단오 풍경>을 보며 ) (17)

신윤복의 그림을 모아놓은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나오는 그림들을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첫 마당에 등장하는 <단오 풍경>의 '누드화'에 대한 장면 이해를 돕는 말이다. 어린이들이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리고 이 설명의 아래쪽에는 '누드화'에 대한 별도 개념정리가 되어 있다. 옳거니, 궁금한 건 바로 그 자리에서 풀어주니 더욱 쉽게 배운다. 이 책에는 너무도 많은 장점이 넘쳐난다. 행복한 고민이다.

첫 번째 작품인 <단오 풍경>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 쓰인 분량이 모두 열일곱 쪽,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앞에 두고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듣는 듯하다. 이 책을 들고 미술관에 가서 아이들에게 그대로 들려주어도 좋은 만큼 구체적이고 자상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전개방식도 '입학식' 뒤 하루에 4시간씩, 그러니까 1,2,3,4교시로, 사흘 동안 진행된다. 차례만으로도 사흘 동안의 강의내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2교시가 끝나면 신나는 중간놀이가 소개되어 짬을 내어 책에서 눈을 떼고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한 시간이 끝날 때마다 더 알아보아요, 옛날엔 이랬어요. 또는 어떤 사람일까요?라는 깊이 읽기가 더해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한 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만나는 그림도 넘쳐난다. 주제가 되는 신윤복의 그림 외에도 비교하여 만나는 그림들이 서너 점 더 있다. 한 가지를 배우는 동안 더하여 두세 점의 그림들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진다. 또한, 하루의 수업이 마무리되면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보충학습 이 따로 진행된다. 그림과 관련된 '색', '제발과 낙관', '화폭'에 대한 상세한 공부로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정(情)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배우면 즐거워짐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생김새도 야무져요. 저런 사람에게는 덤벼보았자 질 게 뻔해요. ( <싸움>을 보며 ) (62)

이건 또 어떤 설명일까? 바로 자유토론의 내용이다. 매일 4교시에는 '함께 얘기해봐요' 라는 형식으로 아이들 스스로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선생님-지은이- 은 중간마다 끼어들어 방향만 이끌어 갈 뿐 이 시간 동안의 그림 해석은 오로지 아이들 몫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림 이야기를 만난다. 이 역시 새롭고 신선한 발상의 진행이다.

그림 한 점을 놓고 이처럼 세세하게 살펴보고 이해를 하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흘러간다. 신윤복이라는 화가가 놀라운 파격으로 보여주었던 당시의 시대 풍경과 정취들이 가슴 속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그만의 '섬세한 표현', '뛰어난 사실성', '양반들의 놀이 문화' 그리고 '충격적'인 '내용' (197)들까지…. '[단원풍속화첩]이 서민들 세상이라면 [혜원전신첩]은 여인들 세상' (198) 이라는 명쾌한 설명 그대로다.

이 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지은이가 들려주는 옛그림 학교의 두 번째 책이다. 그럼 첫 번째는? 당연히 김홍도의 [옛사람들의 삶]이겠지…. 이렇게 좋은 책을 인제야 만나다니. 1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 우리 그림에 대한 입문서로 반드시 만나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옛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처럼 잘 정제되어 소개된다면 그림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당연히 깊어지리라. 하여 행복한 책읽기는 계속 된다.


2009.8.16. 늦은 밤, 배워서 즐기는 시간입니다.

들풀처럼

신윤복의 풍속화로 배우는 옛 사람들의 풍류
_ 최석조/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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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09.09.01 10:43

  [아빠가 결혼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 아빠가 여든이 다 되어서 나보다 어린 아내를 들이겠다고 하는 상황을 상상해봤습니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더군요. 거기다가 내 새 어머니가 될 사람의 시커먼 속내가 보이는데도 아빠가 고집을 부리신다면 저로서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거 같더군요. 제가 워낙 우유부단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아빠에게 있어서 지금 당장의 행복과 앞으로 남은 인생의 안정중 뭘 바라실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신의 돈은 어찌 되어도 좋으니 이 여자와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아요. 또 저희 아빠 고집이 한 고집 하시니까 뭐, 말릴수도 없을테지만요. 하지만 오래, 건강하게, 여유롭게 남은 생을 살고싶어 하신다면 이 결혼 어떻게 해서든 (결혼식장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든, 그 여자를 스토킹을 하든) 막아내야죠. 이 책의 주인공인 나데즈다는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합니다. 다만 그녀가 저보다 훠~~얼씬 갈팡질팡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저희 아빠보다 한 만배는 완고하시고 덜 이성적이며 기분파라는 거죠. 그런 개인적인 요소 말고도 그녀의 가족과 저의 가족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희 가족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고, 나데즈다네 가족은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라는 겁니다.

  그저 노망난 아버지가 젊은 여자의 탱탱한 외모에 반해서 결혼을 하려고 해서 딸들이 말리려고 한다는 한문장으로는 이 책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소련의 우크라이나인 탄압정치와 세계 제 2차대전의 나치를 겪은 그녀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족인 것 같지만 그 역사와 내면은 쉽게 알 수 없는 어둠과 비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데즈다는 모든 힘든 시절이 지나간 다음에 태어난 아이로 독자와 마찬가지로 가족사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언제나 막내취급을 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4살짜리같은 느낌이 드는 그녀는 아버지의 말도 안되는 결혼 요구를 기회로 언제나 자신만 모르고 있던 가족의 과거를 조금씩 알아냅니다. 어떤 부분은 10살 위의 언니에게서, 또 어떤 부분은 아버지에게서. 나데즈다에게 언니는 매사에 염세주의적이고 신경질적에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며 어느정도 세상을 알았다고 생각하는 동생에게도 넌 정말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 라는 식으로 타박을 줍니다. 그런 언니를 돈밖에 모르는 속물로 생각하죠. 실제로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이나 유품을 빼돌릴 정도로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이 언니의 모습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언니는 나데즈다가 모르는 과거의 일들을 겪었고 그로인한 영향을 받았을 텐데.... 두 자매간의 싸움이 잦은 것은 서로 다른 바탕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두 사람 앞에 공공의 적이 생깁니다. 아버지(의 유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악당, 발렌티나가 그 주인공이에요.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영국인으로 귀화하기 위해 갖은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 나데즈다의 아버지 니콜라이였던 거죠. 처음에는 마치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니콜라이를 이용해 결혼을 하고 돈을 많이 뜯어낸 다음 다른 사람과 인생을 즐기려는 심산이었어요. 니콜라이가 돈을 대주지 못하면 생 떼를 쓰고 욕을 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때리기까지 합니다.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만큼 덩치가 커서 덩치가 작은 나데즈다의 가족들은 그녀를 힘으로 밀어부쳐 떼어내기보다는 머리를 쓰기 시작합니다. 웬수같았던 두 자매가 힘을 합쳐 이민국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이혼에 필요한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 준비를 하고 발렌티나로부터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전략을 짭니다. 발렌티나도 성격은 거칠지만 바보는 아니라서 주변의 우크라이나 출신 친구의 악질적인 충고를 바탕으로 끈질기게 그들 자매에게 맞섭니다. 아주 길고 어이없는 싸움 동안 두 자매는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알게되고 나데즈다는 몰랐던 가족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진정으로 어른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결국 긴 소송 끝에 승리한 자매는 발렌티나를 쫓아내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게 되지요.

  언니인 베라는 성격이 똑부러져서 안되는 것은 안돼!라고 말하지만 나데즈다는 사람이 물러서 발렌티나에게 동정심을 갖기도 하고 아버지가 딱해보여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 돈을 드리게 됩니다. 언니라는 기둥과 아버지라는 기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더군요. 자신만의 색깔이나 의견을 갖지 못한 채 기가 센 두 사람의 사이에서 그저 어쩔줄 몰라 합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읽는 내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멋대로인 아버지와 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도 하지 못하는 나 라는 상황을 가정해 봤을 때 마음이 답답해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나데즈다는 몰랐던 어두운 가족사를 들춰내면서 점차 답답한 가족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저 피하기만 했죠. 마지막에 보인 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트랙터에 관한 역사는 그들 가족이 겪어왔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과거와 대면하며 성숙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성장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속해있을 때의 역사와 나치가 유럽을 호령하던 시절의 역사, 그리고 그 시절을 우크라이나 인으로 살아왔던 것. 전쟁과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거의 경우가 없는 이민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이 책의 광고문구처럼 눈물나게 웃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감동적이고 까칠하면서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책이더군요. 너무 코믹을 바라신다면 이 책이 맞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한번 나데즈다를 만나보세요.



아빠가 결혼했다
_ 마리나 레비츠카 (지은이) | 노진선 (옮긴이)/을유문화사

- written by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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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09.07.12 13:45

 

  책에 대한 책.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로 소설 위주였고, 책 자체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거기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읽어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였다. 책을 신봉하고 책을 애지중지하는 '애서가' 타입은 아니다. 자연히 책의 역사나 책에 대한 철학 같은 것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스토리에만 관심있는 나에게도 아주 친절하게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소설과 책의 역사가 만났다. 역사와 소설을 결부지어 지은 소설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종류와는 조금 다르다.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고 역사서이면서 역사서가 아니고 철학서이면서 철학서가 아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이다.

  이 책에 담긴 10편의 이야기들. 모두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다. 나는 모든 에피소드를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조금 알아듣기 힘들거나 이해가 잘 안되어 앞뒤로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인피에 대한 이야기나 조선시대 패설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도 중간에 뭔가 훌쩍 뛰어넘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고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매력은 대단하다. 이 책을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읽고 아침에 학교를 갈 때 까지 나는 그 책 내용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학교도 가기 싫었다. 침대에 벌렁 누워 이대로 학교를 안가도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진심으로 바랬다. 그정도로 이 책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 소설이 다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10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책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콕 집어 이야기의 마지막에 역사와 맛있게 버무림을 한다. 나는 역사책을 진득하니 잘 못읽는 편이지만 이 책의 짧게 실린 역사들은 앞의 이야기를 떠올려가며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어려운 말들이 나를 중간중간 멈추게는 했지만. 출판에 대해 다루기도 하고, 책을 빌려주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책의 축제, 책으로서의 인간 등등... 이 책은 끊임없이 우리 역사에 있었던 책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것도 하나같이 흥미로운것들로만. 

  소설, 역사, 그리고 이 책의 나머지 파트는 철학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내 태도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오래동안 책은 그저 대상일 뿐이었다. 이야기가 적혀있을 뿐인. 책을 소장하고 있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책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고 인간의 책에 대한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내 머리속에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책의 날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시작은 인간이다. 인간이 책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인간이 먼저인가, 그것은 아니다. 시작은 인간이 했으나 계속 엎치락 뒤치락하며 인간과 책은 평행선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책을 만들어 냈으나 책은 우리 인간들의 생각을 벗어나 있는 존재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페이지수가 얼마 안되어서 쉬이 읽히려니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다 읽었을 무렵 책의 내용이 다소 어렵고 읽기 힘든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침대에 누워 책에 대해 생각해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었다. 곱씹어볼수록 진한 향이 나는 것 같달까. 얼른 이 책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선보였으면 한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서 이 책을 읽고 함께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written by agnes


순례자의 책
_ 김이경 (지은이)/뿌리와이파리,2009-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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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09.07.08 13:22

파리코뮌 - 고려대학교 교양총서 4
_ 가쓰라 아키오/고려대학교출판부,2007-07-25 00:00:00

 




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이 뽑고, 여러분과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어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줄거리 。。。。。。。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들에 의한 정부 구성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파리 코뮌’에 관한 학술적 서술이다.

     나폴레옹 3세의 황제 취임은 프랑스에게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주는 것만 같았다. 공화정을 폐지하고 강력한 황제 주도의 각종 개혁들은 급속한 발전의 이유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정치체제에서, 황제의 판단력 저하는 치명적이었다. 잇따른 외교적 실패들은 프랑스 내에 경제적 위기를 불러왔고, 한창 뜨고 있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은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갔다.

     결국 포로가 되어 권좌에서 밀려난 나폴레옹 3세를 대신해 프랑스를 대표하게 된 것은 ‘국방정부’. 하지만 전세는 이미 기울었고, 국방정부의 요인들은 이름과는 반대로 항복을 할 궁리만을 하고 있었다. 절대항전을 주장하는 민중들과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수도 파리에서는 마침내 무력을 동원한 혁명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정부의 구성과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수도 파리를 빼앗긴 국방정부파와 왕정복고를 노리던 왕당파들, 그리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부유층들은 당연히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 전열을 가다듬은 국방정부측은 어제까지의 적이었던 프로이센과의 협상을 통해 포로가 되었던 정규군들을 반환받고 일거에 파리를 포위한다.


2. 감상평 。。。。。。。                     

     말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권력은 소위 ‘지도층’들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행정과 법률을 다루는 데는 ‘전문가들’의 능력이 필요한데,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그런 것을 감당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부족하니까.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보다는 작은 공동체가 적절하다. 이를테면 ‘도시’ 같은.

     파리 코뮌의 한계도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파리라는 한 개의 도시 안에서 그들은 실제로 노동자들에 의한 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그들이 세운 정부는 파리라는 한 도시의 정부인지, 프랑스라는 국가의 정부인지 그들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이는 코뮌 성립 이후 여러 급박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도시들의 연합체 정도를 생각했던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프로이센은 물론 인근의 강력한 국가들의 압박을 그런 연합체로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정치라는 체제의 한계는 아니었을까.


     파리 코뮌을 보며 새삼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그들이 코뮌을 성립시키는 데 있어서 철저히 민주적 절차를 고수하려 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물론 우파 쪽도 마찬가지이지만)이 단숨에 정권을 장악해 자신들의 사상을 통한 정부를 구성하려고 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 역사적 사실 아닌가.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라고 잡아 죽이고, 좌파는 우파를 수구꼴통이라고 비난하며 잡아 죽이는 행태는 근대 이래로 계속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하지만 파리 코뮌 안에서는 전적으로 모든 것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국방정부 측의 실책으로 정권을 잡은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제한된 시간 동안만 행사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다음 정부를 구성했다. 당연히 코뮌 세력을 견제하는 왕당파나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의원들도 선출되었고, 두 세력은 저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가운데 심각한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랑스다운 모습인건가.


    
코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앞두고 사회주의 측에서 했던 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시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활하고 여러분과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이라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치인들이 있는가?

- 노란가방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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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09.06.23 19:33
 

책귀신 세종대왕
_ 이상배(글), 백명식(그림)/처음주니어,2009-04-

 


세종대왕, 참으로 훌륭한 조선의 왕입니다. 그리고 온달장군은 '평강공주'라는 베필의 내조를 얻어 장군이 된 고구려의 평민입니다.  그 두 사람은 살 던 시대가 다르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만납니다. 어떻게 만났을까요? 바로, 책을 통하여 만나게 됩니다.^^ 
우리아이들도 현시대에 살면서 과거에 살았던 유명한 과학자, 장군, 예술가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남긴 저서를 통해서 만날 수도 있고, 후시대 사람들이 그들에 관해 적은 책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불문하고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고 알려줍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 책은 태종의 셋째아들 막둥이 도로 불리는 때부터 시작됩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어린 왕자 도, 어느 날 맏형(양평대군)이 건네 준 책 한 권을 통해 책읽기의 맛을 들이게 됩니다. '평강일기'라는 제목의 평강공주가 남긴 책, 그 책 속에 쓰여진 바보 온달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저자의 상상으로 쓰여지긴 했지만, 양평대군이야기, 세종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세종이 왕이 된 후의 이야기, 고구려 평원왕때의 이야기도 함께 맛볼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어린 세종이 평강일기를 읽어가면서 책읽는 맛에 한발짝 한발짝 들어 가는 단계를, 이야기에 녹여서 자연스럽게 들려주고 있는 이 책은... 책맛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세종에게 더욱 친근함을, 책맛을 아직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세종처럼, 그렇게 책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알게 해줍니다.
어린 세종이 책 속 온달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가며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 보는 점, 읽다가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그 뜻을 찾아 익히고 내용을 적어 놓듯이 의미를 깨우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반복해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책읽기의 반복 또한 필요하다는 점, 읽고 난 후에는 자기 생각을 옮겨 독후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평강일기를 통해 그려지는 평강공주와 온달의 이야기에서는, 온달이 글조차 몰라 배움 자체를 어려워 할 때, 자신의 재능을 깨닫게 하고, 그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꿈을 갖게 하고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함을 알려주므로써, 책읽기는 모든 일에 기본이 됨을 알려줍니다. 또, 책맛을 들인 후에는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면 글만 알지 글을 제대로 쓸줄 모르는 글벙어리라는 말이 와닿기도 했네요. 


이 책을 읽고나면 책을 막 읽고 싶어집니다. 어떤 책이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편안한 자세로 포옥~ 빠져서 읽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모두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 책에서 만날수 있는 세종대왕과 온달장군은 책읽는 재미가 안겨주는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 written by lip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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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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