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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10.02.16 18:26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_ 이철수 (지은이) /삼인 ,2009-12-17 00:00:00

 


2009년 일몰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2010년 일출을 다시 봅니다.

올해는 일출 보기를 책으로 대신했습니다.

해마다 이철수님의 달력도 선물하고 그랬는데,올해는 제가 책으로 선물을 받았습니다.

<화택>이란 글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는 힘겹게 살면서도 새해가 되면 늘 '건강하시라'라는 덕담을 제일 우선합니다. 그 마음에 '함께'라는 마음도 담으시라고,이철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네요.


책을 읽으면서,저 역시 2010년을 넘어 평생 삶의 화두로 삼고 싶어집니다.

무서워지는 세상,서로 손을 마주 잡아 주어야겠노라고.




대운하문제 뿐일까요?

얼마전 어느방송에서 산에서 밭으로 내려와 농부들의 농사를 망치는 맷돼지들때문에 힘겨워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해결책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맷돼지들을 포획 할 생각이 우선 하더군요. 사실,농부님들의 고통이야 얼마나 클지  상상 할 수 조차 없겠지만,점점 산이 없어지고,환경이 파괴되어 가다 보니 맷돼지들이 농가로 내려 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산에 먹을 것을 있게,그들의 터전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우선이란 생각인데

대운하문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상상 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 질 것 같아,걱정입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흥분도 하며,공감도 하며 책을 읽다 문득 그림이 조금 더 컸다면 책이 조금 더 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작을수록 더 가까이..라는 문장에서 저는 그만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작을 수록 더 가까이,라는 말이 주는 메세지란!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조금 더 큰것에 대한 욕심을 가진 저를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계획을 세우면서 한해를 시작하고 한 저에게

부끄러움도 함께 선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어..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written by 똘레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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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1.18 04:11
좋은 이별
_ 김형경 (지은이)/푸른숲 ,2009-11-15 00:00:00

 

어떤 사람도 이별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 더 많은 이별을 경험하고 더 적은 이별을 경험하는 횟수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가족간의 이별이든, 연인간의 이별이든, 동료간의 이별이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어떤 이유에서건 이별을 경험한다. 이별은 아픈 상처이지만 그 상처는 누군가와의 관계의 증거이며 내 마음에서 넘쳐났던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별을 어떻게 겪어내느냐가 그 다음의 관계와 그 다음의 나의 마음을 다듬는 또 하나의 연장이 되기도 한다.





좋은 이별이란게 있긴 하니?


<좋은 이별>은 사실 제목만으로는 뭔가 미심쩍은 느낌을 전달한다. 이별은 분명 상처이고 아픔인데 그런 이별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아무리 좋아도 이별은 이별일 뿐이고, 결국 좋은 이별이란것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제목. 그래서 <좋은 이별>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먼듯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좋은 이별>을 펴들기 전 <좋은 이별>의 첫인상이었다. 약간의 호기심과 약간의 반감, 그리고 그안에서 어쩌면 정말 좋은 이별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아주 약간의 기대를 안고 책을 펴들었다.





이별에서 나를 구해내라.


<좋은 이별>은 이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전한다. 그리고 한 두 번의 이별을 경험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별을 충분히 잘 겪어내고 난 다음 이별 뒤의 나의 모습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쓰여진 안내서이다. 술픔을 내색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이겨내는 것이 사실은 이별을 잘 겪어내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잘못된 이별의 경험은 훗날 당신의 감정을 굳게하고 상처를 향해 고개조차도 돌리지 못하게 한다고 <좋은 이별>은 말한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이별을 잘 겪어내고 그 이별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고비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바로 <좋은 이별>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좋은 이별>이 조금 다른 이유는 짧은 몇줄의 말로 이별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슬픔은 창피하지 않다. 아플때에는 아프다고 말하라 등의 그저그렇고 뻔한 이별에 대한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이별을 똑같이 경험하고 때로는 더욱 큰 상처로 남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이별을 돌아보고 나는 어떤 경우에 속하는지 진단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데에 있을 것이다. 너의 지나간 이별에는 신경쓰지 말고 이제부터 잘하라는 막연한 말이 아닌, 너의 이별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먼저 묻고, 그것은 너만의 아픔이 아니며, 그보다 더 깊게 아팠던 사람들도 있었노라고, 그러니 그 이별의 상처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주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별의 모습을 마주보고 그 이별을 충분히 겪고 난 다음에야 당신은 그 이별을 조금은 더 침착하게 마주 볼 수 있을것이라고 말이다.





좋은 이별을 충분히 겪기 위해 나를 찾는 것 부터 시작하게 한다.


<좋은 이별>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이별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실제로 그 안에서 나의 모습도 발견했다. 이별을 겪어낼 자신이 없어 스스로의 감정을 무덤덤하게 만들고 그 이후에는 이별이 될 수 있는 것들에게 감정을 나누어주지 않는 모습, 그리고 언젠가부터 무슨일에나 눈물이 없어, 친구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 그런것들이 모두 책 속의 누군가에게 있던 나의 모습들이었다. 아마 수 많은 <좋은 이별>속의 이별의 모습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별을 맞딱드렸을때 보였던 이별의 후유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후에 나에게 어떤 모습이 되어 딱지가 되어 버렸는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부터 <좋은 이별>은 시작하라고 했다. 내 모습을 그 안에서 찾았다면 이제 그 안에서 해야할 일은 그들에게 내릴 저자의 작은 처방들을 읽어볼 차례이다. 물론 책을 한 권 읽는다고 해서 오랜시간 외면했던 이별을 겪는 나의 행동습관이 한순간에 확 바뀌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달라지지 않을까? 바로 그런 나의 모습이 나에게 옹이가 되어 오랜 흉터로 남는 다는 것 말이다. 아마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은 이별>을 겪어내는 첫 단계를 순조롭게 밟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written by 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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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10.12 15:25
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_ 김형술/사문난적,2009-09-01 00:00:00





스물 둘에 처음 미술전시회에 갔다. 달리와 샤갈의 대형전시회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나는 그림은 볼 줄도 읽을 줄도, 심지어 화가 이름도 몇 개 모르던 그야말로 그림엔 무지한 애였다. 신방과에 재학 중이였는데 다큐PD가 꿈이었고 어린 마음에 세상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모르면 얕은 관심이라도 둬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방이었기 때문에 대형작가 전시회는 흔하지 않았고 마침 달리전과 샤갈전이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시점에 한 수업에서 교수님의 절절한 교양 예찬론을 듣고 역시 그림을 모르던 친구와 남자친구를 끌고 두 전시회에 갔다. 그런데 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이해만 안 되면 다행인데 내가 왜 여기 와서 그림을 보고 있는지 당황스럽기까지 해서 생애 첫 번째, 두 번째 미술전시회는 그렇게 무성의하게 기억되고 말았다. 다음해 글을 쓰겠다는 일념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수업도 듣고 싶다는 단순한 목표아래 순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문창과로 덜컥 편입을 했는데 수난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아는 게 없는 거다. 물론 아는 게 없어도 쓸 수는 있지만 그건 단지 끄적이는 데 불과한 글밖에 되지 못했다. 철학과 역사와 그림과 종교에 대한 불같은 관심은 아마 그때부터 생겨난 것 같다. 처음에는 몰랐던 것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보이기 시작했고 점차 내 것이 되어 묵혀져갔다. 그게 온전히 글이 되지는 않았던 게 내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지만.




그럼 위 그림들의 공통점은? 그림을 처음 알게 된 그 때부터 혼자 그림과 미술사 공부를 하며 처음으로 좋아했던 그림들이다. 주로 어둡고 퇴폐적이고 몽환적이거나 섹슈얼적인 면을 부각시킨 작품들. 20대 초반의 나는 그림이든 영화든 예술성이 짙고 비극적인 삶을 그려내는 모든 것들에 광적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보고 또 보고 철저히 아끼는 그림들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내게 그림 에세이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심리로서 작용한다. 이 책은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을 말한다. 나와 비슷하고 나보다 조금 많이 아는 그 역시 아마추어다. 그래서 거부감 없고 어렵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산책하듯, 연애하듯, 모험하듯 그림을 봐도 괜찮다고 말하는 저자의 부드러움이 이 책의 무기다. 그림을 보고나서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는 메모를 써두면 근사한 책이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었다. 나는 그림을 보고 작가를 검색하고 그 사람의 간단한 생애를 숙지하는 정도에 그치는 그림공부를 해왔지만 좀 더 내공이 쌓이면 화가 하나하나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룬 깊이 있는 책들을 읽고 싶다. 유럽여행 당시 가장 관심있는 분야가 미술이었기 때문에 근 한 달간 미술관은 지겹도록 가고 또 갔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아는 게 적었지만 돌아와보니 교양은 한층 상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 현대까지 그림은 언제나 새롭고 신비로웠다. 그림을 쉽게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고맙다. 자신있게 그림을 즐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한결 가볍다.

내가 돌아갈 곳은 결국 인상파 작품들이다. 20대 초,중반에 주로 어두운 느낌을 동경했다면 이제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의 그림이 좋다. 꼭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자연과 사람을 절묘하고 신비롭게 연관시킨 사유가 가능한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 속에 이야기가 있으면 더 좋다. 모네, 바스키아, 시슬레, 들라크루아, 피사로, 르누아르 비롯 고흐와 고갱, 클림트와 쉴레도 전부 좋다. 서양미술사를 통달할 때까진 루브르 박물관에 다시 가지 않을 생각이지만 고대와 중세를 특히 동경하는 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들과 다빈치에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로 이어지는 라인을 따라 다시 한번 파리와 로마를 여행하고 싶다. 언젠가는 서양미술사를 전공으로 공부하고 싶은 꿈도 가졌었다. 지금은 취미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면 주인공이 보이고 풍경이 보이고 사연이 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와 작품세계가 보일 때까지 내공을 쌓아가야겠다. 그리 어렵지 않다면, 보는 것에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면, 영화보다는 연극, 연극보다는 미술전시회를 추천한다. 나와 예술이 충동하는 순간, 그것은 순수 창작물을 오로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 한참을 들여다보다]는 그림에 다가가고 싶지만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 written by  깊은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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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9.17 12:41

지구 위의 작업실
_ 김갑수 (지은이), 김상민(그림), 김선규 (사진) /푸른숲,2009-06-25 00:00:00

솔직히 말하자. 이런 冊, 재미있게 읽고 좋은 이야기들도 넘쳐나지만 나는 싫다. 지은이의 작업실 이야기에 120% 공감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실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리츄얼에도 공감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는 열등감, 커피를 나도 좋아하지만 지은이가 들려주는 열정에는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등등 이 책을 재미잇게 읽고 즐기면 즐길수록 다가오는 나는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으리라는 느낌. 어찌 이 책을 내가 좋아할 수 있으랴.

그것은 리추얼(ritual)이다. 절차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적 행위, 즉 문화행위라는 뜻이다. ~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재배치되는 ~ 커피 따위를 갖고 왠 호들갑이냐고 비웃는 친구야. 그럼 네게 중요한 일은 뭐니? 재테크니? 민족 통일과 세계평화니? 킁. (74)

그래, 세상 사는 일이 어떻게 자로 잰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랴. 조금 여유가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아도 자신이 몰두하는 한가지에 지은이처럼 미쳐버린다면 그 경지만으로도 무언가 얻을 것은 있는 법이다. 지은이는 옛날음반(LP) 3만여장에 CD 4천여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음악광!!!이다. 아니, 음악광의 단계를 넘어서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레벨이다. 건물 지하 37평을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 음악과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줄라이홀'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여유라니....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보니 단순히 사람 이름을 붙였다는 그 쿨함이라니.....

어, 그럴까? 오늘 줄라이가 왔네. 그럼 앞으로 줄라이홀이라고 부르지 뭐.(44)

책을 통하여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업실이 필요한 까닭이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위무해야할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지은이에게는 커피와 음반과 오디오에 대한 예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내용들이 어쩌면 너무 사치스럽거나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꺄진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 '회사원 생활'(19)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작업실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업실의 의미를 얼마만큼 준수할 수 있을까? 그 기준에 맞출 수는 있는걸까?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 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경탄을 위해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지, 그 일상을 말해야 한다. 실은 나 자신이 언제나 내 작업실의 방문객이다. 문을 열고 발을 디디는 순간 탄성과 탄식, 감동과 회한, 그런 감흥이 일지 않으면 그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업은 추억의 공간이다. 당장의 한순간이 추억의 시간이다. 작업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추억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28)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이 그날의 날씨다. ~
또 하나 결별해야 할 것이 소리다. ~
아울러 결별해야 할 것이 햇살이다. ~ (32)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러한 나만의 작업실을 마련할 것인가? 설사 마련한다 하여도 제대로 활용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저 지은이의 흉내만 낸다, 그리고 또 좌절한다. 물론 날마다 좌절하지만 날마다 다시 일어선다. 나에게, 작업실은 물론 없다. 4인 가족에 방 3 개, 어디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하여 겨우겨우 숨을 공간을 만든 것이 거실이다. 거실에 있던 TV를 치우고 거의 모든 벽면을 책꽂이로 도배하고 2000여권의 책으로 감싸안았다. 다 진열할 수 없는 책들은 별도 박스에 보관하여 베란다에 재어놓았다. 그리고 밤 깊은 새벽녘에야 거실에 나선다. 가족들도 모두 잠든 시간, 그때는 당연히 '캄캄'하고 '날씨'도'소리'도'햇살'도 피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작업실의 조건을 겨우 흉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만의 작업실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은이의 글을 읽고 즐기면서도 그 생활을 싫어하는 까닭이다. 지은이의 생활 끝자락이라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처럼 태생이 한 곳에 몰두하여 미치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의 생활이, 다 이룬듯 보여 스스로 '불쌍'해질 수 없다는 그 생활이 부럽다못하여 싫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그래, 지은이의 말처럼 '마음만 젊으면, 마음만 젊으면 무엇이라도!'(50) 못하랴. 게다가 그처럼 '남의 글 떠올리며 생각의 단서가 풀려나가는 것도 병인 것 같다.'(39) 나도 그렇다. 그에게 '아내의 책이 내게는 음악'(195)인 것처럼 내게는 책이 그의 음악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하여 나처럼 질투하고 시새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새로운 경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분도 있으리라.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만난 속시원한 詩 한 편 옮겨본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리니…..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전문 (117)

책 속에는 커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에서부터 심오한 원두커피의 더 깊은 곳까지, 음악, 특히 클래식의 기초부터 전반적인 흐름까지, 오디오의 어마어마한 세계까지 많은 상식과 지식이 등장한다. 그 지식만으로도 본전은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마냥 부러워만 할 것인지 흉내라도 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 결정은 여러분의 몫이리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부터 그저 차근차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2009. 7.26. 밤,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도 '내부가 그립'(133) 습니다.

들풀처럼

*2009-167-07-19


*冊에서 옮겨두다

땀꾸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이 가능하다는 꿈을 말하고 싶다. (7)

꿈은 도시 탈출이었고 정착점은 작가 생활이었다. (13)

이 순간의 점점에 머무르듯 살아가는 거다. 이 순간 이전과 이 순간 이후의 지루한 인과의 법칙과 응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거다. 이 순간 점점의 끄트머리에서 칼처럼 살아가는 거다. 저지르자! 암, 저지르고말고. (13)

한자에 '졸(拙)'이 있고 '박(薄)'이 있으니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그게 되지 않는다. 좋박이 되지 않는, 과잉으로 넘쳐나는 성정이 화근이다. (36)

매력없고 상스러워진 사람의 피난처, 그곳이 지하실에 꾸미는 작업실 공간이다.(39)

아파트 위 아래 층 이웃들의 끝없는 항의로부터 탈출해서 집밖 어딘가에 음악 감상실을 만들고자 한다면 첫째 높은 천장, 둘째 완벽한 방슴, 셋째 가능하면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 지하실을 찾아야 한다. (41)

욕심 없고 절제하는 태도, 그것이 고매함이다. 할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충분한데 사양하는 것, 그래, 그것이 고매함이다. 고매, 그 빛나는 광채 곁으로 다가가고만 싶은데 내게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45)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 (78)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훨씬 열심히 공들여 청소한다는 것. 실내의 때깔이 달라지는 비법이 그거였다. (91)

공지영이 그렇게 썼었다. 슬퍼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도 죄스러워지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저물녘 강변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는 청춘기를 보냈다고. 나도 그랬었다. (97)

혼자서 하염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사람 없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람처럼 사는.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원두를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 지금 줄라이홀은 혼자를 견디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 집에 들른 지 너무 오래됐다. (98)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튀르크 카베시의 커피 예찬) (110)

만일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섬세함에서 온다. 그것은 괴로움에 짓눌려 끙끙거리며 자라나고 좁다란 밀실에서 아른아른 피어난다. 낭만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낭만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지 낭만가객 자신의 몫은 전혀 아니다. (116)

아직도 근육과 정신이 근질거리는 혈기방장의 젊은 나이였다면 나는 아나키스트가 됐을 것이다. (127)

그 안에는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129)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133)

다들 그렇다. 바빠 죽겠다면서 고독에 치를 떤다. 일감에 숨이 막힌다면서도 마치 나의 음악처럼 각자의 한가 속으로 도망치고 침몰한다. 그게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 아니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이다. (143)

공간이 사람이다. 공간의 구성과 외양은 그 사람과 정확히 일치한다. (162)

읽기 싫은데 책을 읽고 듣기 싫은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건만 계속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이 인생에 있다. ~ 그것이 비가역이고 불가역이며 다른 말도 팔자고 숙명이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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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9.16 17:49

  에세이. 결혼 에세이. 에쿠니 가오리의 결혼 에세이 입니다. 모든 글들이 그녀의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해 남편이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거니와 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30살 이전엔 결혼을 할 마음조차 없습니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과 여자로서의 피해망상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그녀의 결혼 생활이 왠지 미래에 제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결혼 생활과 닮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매해 결혼 기념일마다 '너희가 이혼을 안하고 살고 있어 놀랍다'는 카드를 보낼 정도로 결혼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주변에서 좋은 아내감이 되기는 글렀다는 둥의 평가를 받는 편이라 글을 읽으면서 아직 결혼도 안해본 주제에 묘하게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글에서 표현되는 그녀의 결혼 생활은 모순적인 감정의 연속입니다. '공원'에서는 주말에만 가끔 산책을 가자고 말해주는 남편이 치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일에는 혼자 공원을 서성입니다. 간혹가다 주말에 부부가 같이 공원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그녀는 시간이 많고 한가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바쁘고 그래서 그녀가 남편에게 매달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나봐요. 왠지 자신이 졸라서 산책을 나오게 된 듯한 느낌인가 봅니다. 이렇게 얄미워하다가도 '색'에서는 남편 덕분에 모노톤이었던 그녀의 일상이 다채롭게 바뀌었다고 이야기 하지요.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에는 감정 소모를 하면서도 월요일이 되면 그를 보내기 싫은 마음. 그렇게 같이 있고 싶어 부루퉁한 얼굴로 배웅한 뒤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 '월요일'에는 이 두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교차합니다.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때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 (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찍한 것일까). (40p)

  이런 모순을 비단 그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왜냐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남자친구와 모든 생활을 공유하다보면, 차라리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고독감은 반갑기까지 하고 저를 들뜨게 만드는데 남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갑자기 그와 제가 너무 다르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고 둘이 있긴 하지만 혼자인 것 같은 느낌에 쉽게 답답해집니다. 그럼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나구요? 에쿠니 가오리씨가 말한 것 처럼 둘일 때의 고독이 끔찍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웃는 모습을 보면 좋고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면 그에게만은 어리광을 부려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좋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가끔은 제풀에 지쳐서 어떤 한 사람이랑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인 것 같아. 하고 말하지만 막상 사나흘 연락이 없으면 먼저 전화해서 목소리를 듣고 안심하는 것은 저입니다. '어리광에 대해서'에서 그녀는 이렇게 표현하죠.

  올바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으니까 그래주었으면 한다. (119p)

  뭐가 옳은 것인지 정도는 저도 압니다. 알지만 꼭 그렇게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그냥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틀린 것이더라도 내가 우기면 가끔은 눈감고 봐줬으면 하는 어리광. 남들에게는 쉬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수 없지만 한사람에게만은 그렇게 바랄 수 있다는 것. 아, 어째서 저는 유부녀 에쿠니 가오리에 이렇게 공감하고 마는 걸까요. 결혼같은 연애를 하는 저때문인지 아니면 연애같은 결혼을 하고 있는 작가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행복하면서 행복하지만은 않고, 괴로우면서 괴롭지만은 않은 결혼. 가끔은 남편이 자신을 밥해주는 여자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다른 많은 주부들과 같은 고민을 합니다. (밥) 그래도 지금까지느 남편과 같이 살고있고 지금의 결혼 생활을 맛있는 케익을 음미하듯 맛보고 있다고 여기며 행복해하죠. (RELISH) '외간여자'에서는 자신을 그의 여자가 아닌 외간 여자와 같이 대접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벚꽃 드라이브와 설날'에서는 새해 아침 가장 보고싶은 얼굴이 남편이라는 것에, 돌아갈 지이 있고 남편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녀. 제멋대로 인 것 같기도 하고 자유로운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떨 땐 5살의 어린아이, 또 어떨 땐 17살 사춘기 소녀, 그리고 많은 시간은 결혼한 여자로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결혼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요. 그건 이 글들이 에쿠니 가오리씨의 결혼생활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며 읽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게 왠걸, 작품 해설의 이노우에 아레노씨는 에쿠니 가오리씨가 '행간의 작가'라고 하며 이 글들이 과연 논픽션인가 하는 의문을 턱하니 던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이미지와 머릿 속 문장들 그리고 색깔들이 갈 곳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어요. 이노우에 아레노씨, 저 당신의 '채굴장으로'를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저에게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게 만일 소설이라면 배신감이 들 것 같아요. 정말로. ㅠㅠ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_ 에쿠니 가오리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태일소담

- written by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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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8.31 15:01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작은 쉼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볼 때면 '아...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 <효재처럼 살아요>의 저자 이효재도 이미 TV나 두 권의 책으로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중에게 선보여 '살림의 여왕'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등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효재라는 인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별 바탕 지식이 없이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기존에 나왔던 <효재처럼>,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효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보통의 책이라면 서문에 유명인들의 추천사가 달리기 마련인데, 독특하게도 <효재처럼 살아요>에는 독자들이 쓴 편지의 일부가 담겨 있다. 은은한 달빛처럼 선생님이 지으시는 친절함과 아름다운 일들이 주위를 더욱 환하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집안일과 가사활동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창의적인 행위라는 것을 속속들이 깨닫게 해주었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대체 효재가 어떤 사람이기에'라는 궁금증이 들어 다음 페이지에 절로 손이 갔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선물, 살림, 아름다움, 부부, 나이 듦. 총 6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실 처음엔 이 책을 읽으면서 '다 먹고 살만하니까 그러는거야'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손목이 아프다는 구절이나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피곤한 생활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등을 보며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효재처럼 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효재처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이 키울 에너지를 보자기 싸는데 쓰고, 남는 시간에 풀을 뽑으며 살다보니 살림의 여왕, 보자기 아티스트, 한복 디자이너, 자연주의 살림꾼, 한국의 타샤 튜더 등등 온갖 칭찬은 다 듣고 산다고 아이 없는 것도 자신의 복'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됐다. 나도 남과 다른 삶을 살게 됐을 때 과연 그것도 나의 복이라고 생각하며 순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환한 미소가 어울리는 이효재라는 사람이 겉보기와는 달리 속은 단단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이 많이 담겨있고, 그 속에 저자의 이야기가 조곤조곤 담겨 있어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엄마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있을 것 같은 책. 그냥 그런 에세이가 아니라 바쁜 하루에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휴식 같은 에세이였다.


효재처럼 살아요 - 효재 에세이
_ 이효재 (지은이)/문학동네

 

- written by 이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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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09.08.21 17:42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지금도 여전히 제주의 고향땅에서 살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제주에는 올레길이 있다. 제주 올레에 관한 책이 나오고, 친숙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저자 서명숙씨와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올레길을 걷기도 했었다. 아니, 그렇게 개발된 올레길이 나오기 전에도 어릴적에는 동무들과 손잡고 소풍을 걸었던 길이고, 자라고 나서는 내 고향의 역사가 담긴 땅을 순례하기도 했던 길이다. 지금은 또 자연유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오름을 걷기도 한다.

내가 산티아고에 대한 책을 잡고 읽고 있으려면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이라면 올레를 걸어도 되는데 왜 굳이 산티아고를 가려고 해?라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글쎄, 올레나 걸으면 됐지 왜 굳이 산티아고일까?
솔직히 나 역시 굳이 산티아고를 걸을 생각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로 혼자서 그 먼길을 떠나는 것이 두렵고, 체력이 뒷받침 안되는 것도 문제였고, 낯선사람들과 냄새나고 시끄럽고 때론 축축하기도 할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면서 한달이나 버틸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난 자꾸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게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산티아고를 걸었던 이들에 대한 글을 읽으며 좋지 않았던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문득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단지 그들은 걸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 길에서 그들 모두는 자신을 만났고, 친구를 만났다. 기나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단지 걸었을 뿐이라고 느꼈던 산티아고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이기때문에 좋을 수밖에 없었고, 또 나는 그들의 만남에 감동받고 괜히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라는 것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솔직히 처음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막연한 동경으로, 그리고 언젠가 한번쯤은 시도해 볼 여정으로 생각하다가 조금씩 그 길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그 길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그 두려움은 내가 굳이 그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정말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은 죽음을 막아주기는 커녕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게 삶을 가로막는 것이 아닐까. 일상에서 문제가 되는 건 구체적 대상이 있는 두려움보다 그런 막연한 불안일 것이다. 평소 겁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는데 내 엉터리 관찰에 따르면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까지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할수록, 일이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일수록,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며 일이 잘못되면 오래 후회하는 완벽주의자들일수록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는 겁쟁이들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갖고 싶은 용기는 매사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강박을 버리고 삶에서 우연의 여지를 열어두는 태도였다. 예기치 않은 일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면서 살아가기, 실수를 저지르거나 일이 잘못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래도 어디까지 한번 가보겠다고 하는 마음, 내가 갖고 싶은 용기는 그런 거였다. 카미노에서도 그런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251)

아직까지 내게 제주의 올레길이나 머나먼 이국땅의 산티아고, 야고보 순례길이나 길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걷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그 머나먼 곳까지 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있어 새로운 한발을 내딛는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길, 그 한걸음을 가로막는 두려움을 떨쳐 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단지 '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또 다른 어떤 만남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길의 끝에 나의 변화된 새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길의 여정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수만 있다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수많은 만남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새로운 도전이 되는 것이리라. 아, 제주의 올레 길 역시 그러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나는 산티아고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제주의 올레길을 좋아하니까.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에서 저자가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세세히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대한 책들은 날짜별로, 만난 사람들별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이라면 이 책은 곁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커다란 줄기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글을 풀어놓고 있다.
우리의 인생길과 마찬가지로 그 길에서 온전히 혼자이기 위해 떠나고 또 실제로 시작은 혼자이지만 가는 길에서 마음을 열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믿음과 아름다움, 용기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 체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저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마음에서 놓았던 산티아고에 대한 열망을 다시 찾게 되었다. 어쩌면 굳이 산티아고를 가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에서 그곳을 순례해보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나도 그 길에서 만난 나 자신과 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 written by 치카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_ 김희경 (지은이)/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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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추천도서2009.07.28 12:16

고맙습니다.
당신의 글이 아니었다면 전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과 삶의 이유들을 손톱의 때만큼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건방진 믿음으로 내게 남은 삶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의 글을 신문 칼럼으로 접하고는 ‘좋은 글’에 위안을 삼으며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만 당신의 삶이 그렇게 평탄치 않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다면 당신의 글을 접하면서 문자를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를 비롯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힘차게 응원하고 싶어 했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했을 텐데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선물하고 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 속에는 당신의 고귀한 삶과 인생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기적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천형의 삶이 아닌 천혜의 삶을 살고 있노라고 당신이 누리는 축복들을 하나하나 세고 있는 모습에서 나 자신 또한 너무나도 많은 축복 속에 둘러싸여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살을 해서 당신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던 제자의 명복을 온통 미안한 마음으로 빌어주던 모습에서 당신이 또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싶어 하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말괄량이처럼 천진난만한 일상의 모습들에서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발견하였고 제자들의 고민과 상담을 제 일처럼 여기고 열심히 답 해주는 모습에서는 인생의 선배임을 느꼈습니다.


그런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지도 천금같은 말로 답해주지도 못하겠지만 당신의 품성과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좋은 책을 유산처럼 남겨주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제는 평안하신 가요?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 잠이 깬 당신이 천장의 얼룩마저도 소중하고 악착같이 남은 생을 살아가겠다며 부여잡던 침대의 난간처럼 저 역시 그런 힘으로 제게 부여된 삶을 살아가고자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당신이 장영희의 흔적을 이 세상 여기 저기 깊고 향기롭게 남긴 것처럼 저 또한 저의 흔적을 남겨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을 지라도 내가 죽은 후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크나큰 바람을 살짝 가져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내 인생에 살아온 기적과 함께 살아갈 기적들이 남아있어서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해 봅니다. 매일 매일 그 기적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당신 몫까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_ 장영희 (지은이), 정일(그림)/샘터사,2009-05-13 00:00:00

 

- written by 영원한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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