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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_ 노익상/청어람미디어,2010-01-20 00:00:00

우리가 흔히 시간 내어 찾아가서 보는 집은 문화유산이거나 화려한 집들이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집에 산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럼 대부분의 서민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작가는 이런 자료가 없거나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긴 시간을 들여 이렇게 가난한 우리 서민들의 살림집을 글과 사진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속에서 만나는 집 중 몇몇은 이름조차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집들이다.

모두 열한 집이 나온다. 그 중에서 분교와 간이역을 제외하면 모두 아홉 곳이다. 외주물집, 외딴집, 독가촌, 차부집, 여인숙, 막살이집, 미관주택, 시민아파트, 문화주택 등이다. 처음에 외주물집을 보고 읽으면서부터 낯설다. 분명히 어린 시절 주변에서 많이 본 집들인데 이렇게 불린다는 것을 안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작가가 긴 세월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고 살아가는 집과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작가를 통해 보는 삶은 깊은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위치에서 본 내용들이다. 그렇다고 그 세부적인 상황이나 현실이 그냥 묻혀버린 것은 아니다.

한국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과 집들은 한 장의 사진으로 몇 장의 글로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 집들과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요청에 의해 점점 없어지거나 사라졌다. 근대 이후 이런 집들이 왜,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지를 시대 속에서 보게 되면 가슴이 아린다.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농경문화의 특징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놀이와 문화가 생전 처음 듣고 본 것이란 독가촌의 경험을 듣는 순간 어리둥절함과 굳건하게 뿌리내린 상식의 벽이 무너진다.

정겹고 그리운 풍경으로 이제 변한 분교와 간이역의 다른 역할을 알게 될 때는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 느껴지고, 분단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군사독재 속에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미관주택 이야기 속에선 평양의 거짓 건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도시의 흉물로 변한 시민아파트의 역사는 졸속 행정이 만들어낸 산물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 문화주택이 어떻게 개량 한옥과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는 나의 개량한옥에 대한 이유 없는 선호가 살짝 부끄러워진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집만 보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실제 그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대로 저런 곳에 살면 걱정이 없겠다고 하지만 그들도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현대화 물결 속에서 개인의 생활 보장이 점점 중요해지는 요즘 외주물집의 노출된 환경은 옛날 이웃 사촌간의 관계와는 분명히 다르다. 외딴집의 외로움은 사진 속의 개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작가가 차부집에서 먹은 라면의 추억은 입가에 침이 고이고, 옛날 큰아버지 집을 생각나게 한다. 막살이집은 어릴 때 길 하나를 두고 살던 아이들이 눈가에 아른거리고, 철없던 그 시절이 그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사진이 많은 책이라 단숨에 읽으려고 했다. 실제로 하루 만에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과 되살아나는 추억과 기억들이 나를 즐겁게 만들기보다 괴롭혔다. 한 장의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감탄하다가도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으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집들은 그리움을 불러오고, 무표정하거나 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집의 변화를 풀어내고, 그 역기능뿐만 아니라 장점도 같이 다루는 작가의 시각에선 한 수 이상 배우지 않을 수 없다.


- written by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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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5.25 10:47
풀밭 위의 식사
_ 전경린 (지은이) /문학동네 ,2010-01-28 00:00:00

외로웠다. 더 외로워졌다. 요즘 느끼는 기분을 단지 외로움이란 단어에 가둘 수 있다면 차라리 나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랐다. 눈앞에 닥친 시간들이 벅찼고, 누군가와 나의 기대에 숨찼고,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멈춰버리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것 외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절실히 믿으며 버티는 나날이었다. 특별한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려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쳐 나가떨어지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상처 입은 나비처럼 나도 모르게 자꾸만 몸을 사렸다. 나이 탓인가. 마음이 도전과 안주 사이를 널뛰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결정된 것 없는 20대의 끝줄기가 이토록 처절하게 외로울 줄 미처 몰랐다. 이대로 서른이 올까봐 두려웠다. 놓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깜빡 든 낮잠처럼 놓쳐버린 시간은 누릴 틈도 없이 쉽게만 멀어져갔다. 그런데 누경을 만나면서, 더더욱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에 나는 몸서리쳤다. 그녀는 나와 닮았으며 또한 달랐다. 적어도 그녀는 버티고 있었다. 숨으려고만 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어느 누구보다 내 삶에 자신이 있었다. 일도, 사랑도, 삶도, 꿈도 내 것이면 다를 거라 믿었다. 지나친 긍정과 막연한 자신감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틈바구니에서 삶이라는 고통과 마주하며 사랑이란 감정에 온 마음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다가올 내 30대도 누경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자꾸만 다가오는 기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꼬꼬마였던 아홉 살부터 열여섯 소녀시절도 모자라, 심지어 청춘이 모조리 지나갈 때까지 온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이름 모를 끌림을 어쩌지 못해 기다림과 어긋남을 반복하는 서강주와 그녀의 관계 때문에 호흡이 가빴다. 지옥과 천국을 넘나드는 기분. 딱 그것만치 어지러웠다. 도대체 사람이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것에 대해 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했다. 막 스물다섯. 그때 나도 그랬다.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이 기대만 충만했던 어느 겨울, 한 달 간의 유럽여행 끝자락에서 마음을 흔드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건 단지 그곳이 이국적인 풍경을 가진 예술의 도시였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후로 쭉 파리는 다시 가지 못할 꿈의 도시인 것만 같다. 그를 만난 겨울은 봉인된 봉투 속 편지처럼 비밀스러운 곳에 갇혀서도 여전히 숨을 쉰다. 열 시간의 물질적 거리와 여덟 시간의 시차만이 그와 나를 가르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3년 전 내가 과연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이상할 뿐. 누경의 서강주를 향한 마음이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었듯, 시간과 공기만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해하거나 받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누경과 서강주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누경에게 한없이 다가가려는 또 다른 남자 기현은 왜 하필 누경이었을까. 누경은 왜 기현이 아니라 인서였을까.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든 사랑의 묘약이 정말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삶은, 세상은,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정석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이란 것은 원래 유리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투명한데, 그래서 절대로 흐릿해지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하기 힘든 우리의 마음이 자꾸만 유리와 스테인드글라스를 흐리게 하는지도. 누경이 서강주를, 기현이 누경을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숙명이기 때문이지, 누경의 헝겊인형 때문이거나 기현이 들은 점쟁이의 말 때문이 아니다. 우린 누구나 본능적으로 나를 간직해둘 곳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져지지 않는 사람을 만지려 애쓰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은 없고, 다시 돌아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서 모두에게 삶이 이토록 벅찬 것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상처를 있는 그대로, 추억도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있던 그 자리에 돌려놓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그래서 이 긴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세 노르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안고 일상적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럴 것이다. 라는 말. 나에게는 물론, 파리에 있는 나의 아저씨에게도, 누경과 기현, 누경의 꿈속 아버지에게도, 여전히 알쏭달쏭해서 잘 모르겠는 서강주에게도, 더불어 삶에 지치고 사랑에 미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우린 모두 자신의 진실은 감당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뇐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세 노르말.
 


- written by 깊은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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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2.12 16:32


_ 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은이) | 박광자 (옮긴이)/문학동네 ,2009-10-05 00:00:00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자...생각을 해보자.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과정을 추리해보기는 쉽지 않다.
몇 일도 아닌 몇 년의 시간을 상상력만으로 그려내기엔 지나치게 경험밖의 일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 기대하고 설레였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40대의 여주인공은 사촌부부를 따라 주말여행을 떠나 산장에 머물던 어느날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산장 주변에 투명하고 딱딱한 벽과도 같은 장애물이 세워진 것이다. 만질 순 있지만 보이진 않는 존재. 그 존재 너머로 보이는 세계엔 움직이는 생명체라곤 없다. 모두 화석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죽은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녀는 강했다. 주변을 이해하고 정리하며 차분히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올때까지. 어쩌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상황일지도 모를 사태를. 다행히 그녀에겐 친구가 있다. 어미소와 개와 고양이. 그녀가 돌봐야하는 부담인 동시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나눌 친구들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벽은 쉽게 헐린다.
우리 모두는 결국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며, 외롭고 불행해지면 아주 먼 친척들 사이에도 우정이 생기는 법이다.'


벽이 생기기 이전의 그녀는 삶이 주는 무게로 벅차고 힘들었다. 오히려 혼자인 지금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며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그녀의 지난 날의 삶은 지금 '나'의 삶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땅의 평범한 주부들의 모습과 닮은 것이다. 가정과 자식이 주는 버거운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바람. 그래서, 그녀가 처한 고독을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그 안엔 해결해야할 생계문제가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식량이 줄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


그녀와 함께 밭을 일구고, 소를 돌보고,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반복적인 시간들을 살다보니 어느새 지루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지만 그 또한 내마음에 쏙 드는 상황은 아니다. 어느 것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없다. 산속에서 홀로 지낸 2년 여의 세월을 그녀는 잘 꾸려 나간다. 감자와 콩은 제 때에 수확을 했고, 어미소는 수소를 낳았고, 여전히 발랄한 개는 졸졸 따라 다니고, 고양이는 세 번이나 출산을 했으니 이들의 세상은 평화롭다. 그런데, 그런 가족의 평화를 짓밟는 인간, 남자가 등장한다. 느닷없이 나타나 그녀의 개와 송아지를 죽인 한 남자.


벽이 생기고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상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다른 생존자가 아니던가. 어쩌면 안정적인 그녀의 삶에 파란을 일으킬 존재 이상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의 세상에 들어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헤치는 인간은 이제 '적'일뿐이다. 남자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궁금함도 없다. 이미 그녀의 세상에선 필요하지 않기에... 


2년 반 동안 홀로 산속에서 지낸 일들을 기록한 이 일기는 경험할 수 없는 범주의 공포와 암담함을 차분하게 풀어가며 동참하게 해주었다. 그녀와 함께 벽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동물들을 걱정하며, 밭을 일구고 풀을 베고, 매서운 날씨를 견뎌내며 어느새 강인한 여자가 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보다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감동이 밀려드는 소설이었다. 다시 곱씹어 볼 수록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런 책 때문에 책을 읽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하루도...



- written by 세상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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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1.20 11:36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리나, 그리고 인생
_ 석영중 저/예담,2009-10-30 00:00:00

고전과 문호를 연결하여 기억하는 일은 마치 지구본을 놓고 국가와 수도를 외우는 일만큼 의미있지만 실제로 고전을 읽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양이 어마어마하고, 주제의 진정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무작정 읽으면 지겹기만 할 뿐 전혀 와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안다고 착각하기 가장 쉬운 것도 고전인 것 같다. 톨스토이가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대문호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렇게 톨스토이의 문학관과 삶을 통째 분석하는 책을 읽으려니 괜한 죄책감이 앞선다. 생각해봤는데 나는 달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 권만을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읽었을 뿐이다. <부활>을 여러 번 벼렀고, <전쟁과 평화>나 <안나 까레니나>는 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숨이 막혀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다. 정말 그의 문학이 그토록 어려워서였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저 톨스토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서 겁먹은 나머지 문조차 열지 못하는 독자였을 뿐이다.


이 책은 많은 것을 말하지만 핵심은 비교적 간단하다. 톨스토이의 인생관, 가치관, 문학관, 도덕관 등을 그의 작품들을 통해 해석하고 분석하는 톨스토이 이해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톨스토이가 추구한 윤리관을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상황과 대사로 이해하려한 노력이 돋보인다. 톨스토이의 생애를 관찰할 수 있고, 그의 윤리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톨스토이는 살아생전 9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사실상 그 모두를 다 읽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란 걸 잘 아는 저자는 그의 윤리관을 가장 통합적이고 명확하게 대변하는 몇 가지 작품들을 통해 해설을 연결짓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조금 비약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 한 권으로 톨스토이를 제법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당대 귀족의 자손으로 부유하게 태어났으며 대농장을 사유한 지주이기도 했다. 당시의 귀족이 그러했듯, 지적, 성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유쾌하게 누릴 줄 알았던 그는 50세를 기준으로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도시보다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했고,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도 금욕을 주장했으며, 나중에는 자신의 저작권으로 돈을 버는 것마저 타락이라고 느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가 모든 사람이 한 번쯤 꿈꾸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윤리적 가치관을 뛰어넘은 나머지 실제로도 그렇게 살기 위해 시골로 거주지를 옮기고, 재산을 내버려두고, 성욕을 증오하는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은 한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멀쩡하게 잘 살던 집을 버리고 시골로 가서 이제부터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남편과 아버지를 어느 누가 제정신으로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까. 그 뿐만 아니라 굉장히 정욕이 강했던 톨스토이는 여러 창녀들을 전전하는 삶을 죄의식이라고 느껴 합법적 성관계가 인정되는 결혼이란 걸 했다. 꽤 서두른 결정이었고 어느 정도 예고된 불화이기도 했지만, 그의 양면적 성향 때문에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아내와의 결혼 후 16년간 열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다. 톨스토이가 50세가 넘어간 이후로는 거의 매일 싸웠고, 말년엔 거의 전쟁 수준의 다툼을 했지만 이혼하지 않은 것은 기적처럼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톨스토이의 모든 인생관은 <안나 까레니나>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구절구절 얼마나 절절하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이 책만 읽어도 모든 것을 생생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니, 나는 굳이 긴 텍스트를 읽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꼭 읽을 작품이라고 아직도 굳게 믿고있긴 하지만.


한 작가를 이토록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그가 남긴 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모든 것을 철저히 구하고, 읽고, 이해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일생을 다 바쳐야 할 지도. 그렇게 해서 톨스토이의 작품 90편을 읽는 수고를 덜어준 저자 석영중 교수께 감사하다. 물론 나만을 위한 선물은 아니었을 테지만. 톨스토이의 윤리관을 관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자세한 설명 덕분에 더이상 그의 작품을 대하는데 있어 가장 큰 벽이던 두려움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놀라운 경험이자 신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대한 양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그 또한 자신감이 생긴다. 톨스토이를 함께 읽어나갈 수 있는 꼼꼼한 친구가 생긴 기분이라고 할까. 당장 톨스토이 읽기 대장정에 돌입할 수 없는 현실이란 게 굳이 있다면 있겠지만, 그의 작품을 읽을 날이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굉장히 빨리 다가오리라 자신한다. 사실 톨스토이와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 것이란 것도 잘 안다. 톨스토이의 도덕적 성품에 흠집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대문호가 되기 위한 신념이나 고집은 그것이 비록 좀 비뚤어지고 외골수적인 방향이라도 인정되어야 마땅한 모양이다. 좀 괴짜같고 피곤한 사람이긴 하지만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 위해 온갖 것들을 실행에 옮겼던 톨스토이를 나는 존경한다. 톨스토이가 고민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아마 내가 찾아야 하는 또다른 과제인가 보다.



- written by 깊은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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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8.31 15:01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작은 쉼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볼 때면 '아...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 <효재처럼 살아요>의 저자 이효재도 이미 TV나 두 권의 책으로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중에게 선보여 '살림의 여왕'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등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효재라는 인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별 바탕 지식이 없이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기존에 나왔던 <효재처럼>,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효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보통의 책이라면 서문에 유명인들의 추천사가 달리기 마련인데, 독특하게도 <효재처럼 살아요>에는 독자들이 쓴 편지의 일부가 담겨 있다. 은은한 달빛처럼 선생님이 지으시는 친절함과 아름다운 일들이 주위를 더욱 환하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집안일과 가사활동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창의적인 행위라는 것을 속속들이 깨닫게 해주었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대체 효재가 어떤 사람이기에'라는 궁금증이 들어 다음 페이지에 절로 손이 갔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선물, 살림, 아름다움, 부부, 나이 듦. 총 6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실 처음엔 이 책을 읽으면서 '다 먹고 살만하니까 그러는거야'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손목이 아프다는 구절이나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피곤한 생활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등을 보며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효재처럼 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효재처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이 키울 에너지를 보자기 싸는데 쓰고, 남는 시간에 풀을 뽑으며 살다보니 살림의 여왕, 보자기 아티스트, 한복 디자이너, 자연주의 살림꾼, 한국의 타샤 튜더 등등 온갖 칭찬은 다 듣고 산다고 아이 없는 것도 자신의 복'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됐다. 나도 남과 다른 삶을 살게 됐을 때 과연 그것도 나의 복이라고 생각하며 순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환한 미소가 어울리는 이효재라는 사람이 겉보기와는 달리 속은 단단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이 많이 담겨있고, 그 속에 저자의 이야기가 조곤조곤 담겨 있어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엄마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있을 것 같은 책. 그냥 그런 에세이가 아니라 바쁜 하루에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휴식 같은 에세이였다.


효재처럼 살아요 - 효재 에세이
_ 이효재 (지은이)/문학동네

 

- written by 이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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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려의 49재이다.

어떤 사람은 추모 촛불이 사그라든 이유는 살기 바뻐서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2000년 부터 불기 시작한 노풍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다 생업이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거기간중 회사일을 등한시해서 퇴직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에 대해 충실하지 못해 힘든 삶을 가족에게 안겨기도 했다.

살아있는 노무현보다 죽음 이후의 노무현이 더 약해서일까? 

쉽지 않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노무현이 남긴 족적을 쫓아가며 그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봇물처럼 쏟아지는 노무현과 관련된 출판물을 만나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제2, 제3의 노무현을 간절히 기다리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쓴 책은 공저를 제외하면 세 권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정치 입문후 겪었던 여러가지 우여곡절과 자신의 정치철학을 쉽게 담은 이야기이다. 노무현식 유머와 아내에 대한 사랑, 정치인으로서의 희노애락을 묘사한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한 부를 이끌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양수산부를 '힘'이 있는 부서로 만들기 위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노무현의 리더십이야기>(행복한책읽기). 전문가가 아닌 노무현이 어떻게 전문가인 관료들과 소통하는 지 잘 묘사되어 있다. 부서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좋은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것을 즐겼던 노무현을 통해 그의 수평주의적 리더십을 만나볼 수 있다.   
 
대선에 출마하기전에 닮고자 했던 정치인인 링컨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열정을 묘사한 <노무현이 만난 링컨>. 그는 부산에서 선거에 질때도 자신을 지지한 선거운동원들에게 상원의원 선거에서 진 링컨이 더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위로 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자신처럼 가진 배경이 약했던  링컨이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가 남긴 족적처럼 곱씹어 볼만하다.


  • 노무현의 정치 철학은 정치개혁, 언론개혁, 국민통합이라는 구호에 함축되어 있다.


그가 말하는 정치개혁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이다. 반칙과 자기편만 있는 정치를 변화시키려 한 것이다. 대선기간의 노란 저금통은 그가 재벌의 돈을 받고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상징처럼 떠올랐다.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for book)은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이 얼마나 '바보'인지 잘 알 수 있다. 관행적으로 받아오던 사무실 개소식에 당의 유명 인사의 초청을 하지 않았던 일, 당시 집권당 부총재라는 자격(?)때문인지 부산으로 가는 길에 경찰 에스코트를 보고 크게 화를 내던 일, 언제나 웃기지 않는 유머로 어설픈 미소를 짓게 하지만 선거운동원들을 편안하게 하던일, 선거를 원칙대로만 해서 배고프고 사람없이 치루는 선거운동. 그렇지만 그가 겪어내야 할 것은 여론조사에서 10% 앞서가던 그가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후보에 하루 아침에 역전되고 말았던 패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패배로 '바보' 노무현은 수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과 '지못미'로 탄생했다. 

  • 언론개혁은 우리 정치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그가 평생을 두고 생각했던 화두이다.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인물과사상사)을 통해서 조선일보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정치라는 한계를 두고 노무현을 비판하며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1년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며 거대한 언론권력과 기득권 세력과 대항하는 노무현의 위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조.중.동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대통령인 노무현을 비난하고 사사건건 국정에 발목을 잡았다.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개마고원)에서 유시민은 조선일보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에는 대한민국을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목숨이 걸려 있다. (…) 국민은 6월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의 문을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고한 동맹을 맺은 극우언론과 극우정당의 사상적 정치적 지배에서 사회를 전면적으로 해방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노무현의 전쟁은 바로 ‘앙시앵 레짐’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노무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무관하게 이 싸움은 그런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7-8쪽)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 강한 노무현은 극우언론과의 싸움을 마다 하지 않았다. 그 극우언론들은 끝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몰고갔다.

  • 국민통합은 수십년을 이어온 우리 정치의 구태인 지역주의를 벗기위한 몸부림이었다.
노무현의 집권시기인 2003~2007년까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던 수구 언론도 인사와 재정 지원 등에서 지역에 대한 치중에 대한 비판을 하기 힘들었던 시기이다. 특히 지역 균형 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고 비록 변형되었지만 수도 이전이란 화두는 전국 균형 발전의 큰 주춧돌을 놓았다.


참여정부가 행했던 많은 정책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는 찬반이 엇갈린다. 진보, 개혁, 양심적 보수라는 구분을 떠나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의 정책의 당위성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설혹 명분상 명확하더라도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는 지를 함께 생각해 볼 때 참여정부가 펼친 정책에 대하여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청와대 비서실을 중심으로 쓰인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지식공작소)와 <노무현, "한국정치 이의 있습니다.">(역사비평사)와 퇴임을 바로 앞두고 한 인터뷰 내용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마이뉴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부치지 못한 편지나마 그에게 보내고(노무현, 부치지 못한 편지/ 퍼플레인), 그리고 그에 대한 추모 콘서트를 통해 '천개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그의 사즉생의 삶은 이제 진짜 자신의 목숨조차 내놓는 죽음이 되었지만, 수천 수만의 노무현으로 되살아올 것이다.

"무현짱이 없어지면 어떻하나?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무현짱을 또 한 사람 만들어놓았으니 만천하에 공개하겠습니다. 작은 무현짱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

맙소사! 터벅터벅 걸어와 진짜 노무현 옆에 턱하니 선 작은 노무현은 너무나 흡사해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장내는 열광의 도과니에 빠지기 시작했다.
"무현짱! 무현짱"


- 2000 첫 노사모 송년행사에서 /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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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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