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베스트서평2010.05.25 10:47
풀밭 위의 식사
_ 전경린 (지은이) /문학동네 ,2010-01-28 00:00:00

외로웠다. 더 외로워졌다. 요즘 느끼는 기분을 단지 외로움이란 단어에 가둘 수 있다면 차라리 나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랐다. 눈앞에 닥친 시간들이 벅찼고, 누군가와 나의 기대에 숨찼고,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멈춰버리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것 외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절실히 믿으며 버티는 나날이었다. 특별한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려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쳐 나가떨어지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상처 입은 나비처럼 나도 모르게 자꾸만 몸을 사렸다. 나이 탓인가. 마음이 도전과 안주 사이를 널뛰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결정된 것 없는 20대의 끝줄기가 이토록 처절하게 외로울 줄 미처 몰랐다. 이대로 서른이 올까봐 두려웠다. 놓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깜빡 든 낮잠처럼 놓쳐버린 시간은 누릴 틈도 없이 쉽게만 멀어져갔다. 그런데 누경을 만나면서, 더더욱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에 나는 몸서리쳤다. 그녀는 나와 닮았으며 또한 달랐다. 적어도 그녀는 버티고 있었다. 숨으려고만 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어느 누구보다 내 삶에 자신이 있었다. 일도, 사랑도, 삶도, 꿈도 내 것이면 다를 거라 믿었다. 지나친 긍정과 막연한 자신감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틈바구니에서 삶이라는 고통과 마주하며 사랑이란 감정에 온 마음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다가올 내 30대도 누경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자꾸만 다가오는 기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꼬꼬마였던 아홉 살부터 열여섯 소녀시절도 모자라, 심지어 청춘이 모조리 지나갈 때까지 온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이름 모를 끌림을 어쩌지 못해 기다림과 어긋남을 반복하는 서강주와 그녀의 관계 때문에 호흡이 가빴다. 지옥과 천국을 넘나드는 기분. 딱 그것만치 어지러웠다. 도대체 사람이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것에 대해 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했다. 막 스물다섯. 그때 나도 그랬다.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이 기대만 충만했던 어느 겨울, 한 달 간의 유럽여행 끝자락에서 마음을 흔드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건 단지 그곳이 이국적인 풍경을 가진 예술의 도시였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후로 쭉 파리는 다시 가지 못할 꿈의 도시인 것만 같다. 그를 만난 겨울은 봉인된 봉투 속 편지처럼 비밀스러운 곳에 갇혀서도 여전히 숨을 쉰다. 열 시간의 물질적 거리와 여덟 시간의 시차만이 그와 나를 가르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3년 전 내가 과연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이상할 뿐. 누경의 서강주를 향한 마음이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었듯, 시간과 공기만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해하거나 받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누경과 서강주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누경에게 한없이 다가가려는 또 다른 남자 기현은 왜 하필 누경이었을까. 누경은 왜 기현이 아니라 인서였을까.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든 사랑의 묘약이 정말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삶은, 세상은,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정석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이란 것은 원래 유리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투명한데, 그래서 절대로 흐릿해지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하기 힘든 우리의 마음이 자꾸만 유리와 스테인드글라스를 흐리게 하는지도. 누경이 서강주를, 기현이 누경을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숙명이기 때문이지, 누경의 헝겊인형 때문이거나 기현이 들은 점쟁이의 말 때문이 아니다. 우린 누구나 본능적으로 나를 간직해둘 곳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져지지 않는 사람을 만지려 애쓰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은 없고, 다시 돌아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서 모두에게 삶이 이토록 벅찬 것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상처를 있는 그대로, 추억도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있던 그 자리에 돌려놓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그래서 이 긴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세 노르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안고 일상적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럴 것이다. 라는 말. 나에게는 물론, 파리에 있는 나의 아저씨에게도, 누경과 기현, 누경의 꿈속 아버지에게도, 여전히 알쏭달쏭해서 잘 모르겠는 서강주에게도, 더불어 삶에 지치고 사랑에 미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우린 모두 자신의 진실은 감당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뇐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세 노르말.
 


- written by 깊은슬픔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분류없음2010.03.31 16:09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_ 언니네 사람들 지음/갤리온,2006-03-27 00:00:00

엊그제 이 책을 읽고 거기 나온 '성적 모욕에 대처하는 법' (http://blog.aladdin.co.kr/stella09/3392262)이란 글을 올렸더니 지금까지 추천을 무려 17개나 받았다. 글이 워낙 재미있어서 함께 나누자고 올렸을 뿐인데 추천을 그렇게나 많이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추천을 많이 받은 이유는 뭘까? 나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재미있어서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여성들은 여전히 성적 모욕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것 


뭐 이렇게 성을 건강하게 드러내놓고 나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웃을만한 부분도 있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다. 내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런 게 성폭력이 아니라고?>(70p~76p)를 쓴 '안티 오아시스'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의 내용이다. 간단하게 얘기를 하자면, 그녀는 먼저 자신은 '오아시스'란 영화를 지독히 싫어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그녀는 한마디로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강간범에게 당했다. 강간 당하지 않으려고 소리치고 반항해 봤자 자신의 목숨만 위태로워질테니 그 목숨 지켜내보겠다고 생면부지의 놈이 시키는대로 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상당히 침착해서 비교적 상처도 안 받았을 것 같지? 사실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녀는 비교적 담담하고 상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이 위기의 순간을 대처하느라 그녀가 받았을 고통과 상처가 어땠을지 가히 잠작이 간다.(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그녀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는 그 처절한 상황에서도 범인을 따돌리고 간신히 경찰서로가 범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잡아줄 것을 말해 봤지만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경찰서로 가기까지는 그전에 눈을 다쳐 범인을 졸라 안과를 갔는데 진술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어떻게 범인과 안과까지 갈 수 있었냐며 의아해 하더란다. 거기엔 경찰의 무슨 생각이 덧발라져 있을까? 어쨌든 둘이 좋아서 섹스한 거 아니냐라는 것도 포함이 되었겠지. 그녀는 그 일이 있기 전, 강간범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에 관한 글을 읽어둔 터라 그렇게 해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외국 사람이 쓴 외국의 경우라 우리나라엔 아직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을까? 그녀에겐 덧이었을 뿐이다. 정작 그 간강범에게서 여자를 지켜줘야 할 경찰이 미온적으로 나왔고 범인에게 내려진 죄명은 '무단침입강간미수'가 다였다. 이것은 정말 내가 봐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오아시스'란 영화를 혐오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영화도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소통부재를 다루고 있는데 그녀는 진짜 강간이란 걸 당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나중에 그 강간범에게서 주인공이 애정을갈구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감독은 사랑, 해보셨나요?라며 간강범의 간강을 미화시키고 나아가선 관객을 가르칠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영화를 지독히도 미워한다고 했다.(나도 그 영화를 보긴 했지만 정말 그 영화는 문제가 많은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백 번 아니 천만 번 공감한다.  


원래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긴 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저술가들이 이것을 좁혀 보고자 많은 책을 써왔다.(이를테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그런데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언어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경찰서에 여자 경찰만 있었어도 상황은 그나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말 여자는 남자 보다 언어 능력이 발달 됐다고는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남자의 논리와 힘이 지배를 하고 있음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              


또 하나의 이야기는 <섹스할 때, 끝까지 넌 이기적이었지>를 쓴 글이다. 나도 들어보기는 한 것 같다. 섹스는 가급적 이기적으로 하라고. 그것도 여자에게 이르는 말이다. 얼핏들으면 여자를 위한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보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섹스에 대해 소극적일 수 밖에 없음으로 여자를 자극하여 남자를 유리하게 만드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의 내용은 사랑해서 동거를 했지만 남자의 배려없음에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는 한 여자의 씁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헤어졌으면 끝까지 쿨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 남자 녀석 헤어지고 두 달쯤 지나서 우연히 지나는 길에 만났는데, 대뜸 지금은 안 피곤하냐고 묻더란다. 너 그때 '피곤해서' 섹스하기 싫다고 했잖아. 요즘에는 안 그렇냐는 거지. 모르긴 해도 그 녀석도 여자와 헤어진 것이 꽤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런 식으로 긁고 있으니.  사실은 남자의 지독한 이기심 때문에 헤어진 건데. 그녀가 섹스할 때마다 당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뿐인가? 다른 부분의 이야기지만, 깐엔 배려한답시고 끊임없이 좋으냐? 물으며 자신의 능력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그 남자의 심리는 또 뭐냐? 빨리 일을 끝마쳐주길 바라면서 일부러 연기해야 하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이 알기는 알까?  


이책은 좋으면서도 위험하다.      


이 책이 어떻게 해서 내 손에 들어 왔는지 모르겠다. 사지는 않았고, 몇년 전에 받아만 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 걸 최근에야 읽었다. 여러가지 사정상 못 읽은 것도 있었지만 한편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난 그다지 성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관심이 없다는 게 자랑은 아닐 터. 읽어보니 내가 이 책에 선입견이 많았구나 싶다. 이렇게 솔직하고 대범할 수가! 하지만 너무 공감이 가고, 오히려 나의 무지와 게으름을 책망하고 싶어졌다. 어떤 부분은 단편 소설을 읽는 것 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기도 했다. 


이책은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언니네 방'이란 싸이트에 올라 온 글들을 발췌한 글들이다. 이 싸이트가 생겼을 때 적지 않은 여성 네티즌들이 환영을 했다고 한다. 혼자만 음습하게 가지고 있었던 아픔들 상처들을 용기있게 양지로 끌고 나왔다는 점에서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있었는가? 당한 건 여잔데 범한 남자는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말이나 되는가? 섹스가 인생에 전부는 아닌데 상업주의와 맞물려 모든 사고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고 귀결시키는 이놈의 세상. 그리고 그 후유증은 또 얼마냐? ...좇까라. 씨발...은 이럴 때 써 먹는 말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언니네 방'이 잘 운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싸이트 찾아 봤지만 잘 못 찾겠던데. 이렇게 자유롭게 서로의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지만 자칫 우려되는 건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남성 기피' 내지는 '남성 혐오'를 부추길까 봐 그게 걱정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정한 페미니즘은 여성우위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자는 억압받고 하위의 개념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해 보고자 하는 움직임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공존하는 것일 것이다.  


결코 만들어지지 못할 방           


'언니네 방'이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시도가 있다는 건 상당히 획기적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언니네 방'은 있으면서 남성을 위한 '형님네 방'이나 '오빠네 방'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이런 방쯤 만들어질 필요도 있을 텐데 내가 아는 바로는 없는 것 같다. 있어도 섹스를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할 것이냐? 뭐 그런 게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남성도 말 못할 고민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방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부장의 사회에서 같은 종족 욕 먹일 필요 있냐? 절대 만들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성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기론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진데 그속은 좀 다를 것이다.  


 '여성학'이란 학문은 진정한 의미에서 '학'이 될 수 없다     


나의 20대 어느 가을 날 나는 어느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었고 그때 처음 여성학이란 학문을 접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그때 가르쳤던 강사가 '여성학'이란 학문은 진정한 의미에서 '학'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언젠가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이 되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안다. 여성학이란 학문은 지구에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여성학은 점점 더 중요한 학문이 되리라는 걸. 


하지만 여성학은 어느 특정인을 위한 전위물처럼 취급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저작물이 아니면 어디가서 여성의 실태를 쉽게 접할 수 있을까? 여성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인데 이 책은 절판이 됐다는 것이 다만 아쉬울 뿐이다.(품절로 나오지만 아마도 절판됐지 싶다) 그런데 왜 짧은 시간 절판(품절)이 됐는지(이책의 초판은 2006년이다.) 알 것도 같다. 나름 부작용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궈서야 말이 되는가? 어느 날 화려한 복간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줬으면 한다.                  


- written by stella09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추천도서2010.02.02 13:50
셀러브리티
_ 정수현/이룸,2009-11-16 00:00:00

아만다 바인즈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면 이런 기분이었다. 사람 넘치는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보는 것보다, 집 거실에서 뒹굴며 귤이나 포테이토칩 같은 걸 먹으면서 보는 게 더 어울리는 느낌. 아만다 바인즈의 <쉬즈 더 맨>과 <왓 어 걸 원츠> 같은 영화를 보면서 말로는 유치해 하면서도 유쾌해서 어쩔 줄 모르며 깔깔거리는 어쩐지 영 맘에 안 드는 기분. 20대 초반에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가벼움을 유난히 싫어한 나는 멜로나 코미디 영화까지 멀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게 어느 순간, 어느 시간에 와서야 너무 재밌는 거다. 보고나면 막 행복해지는 기분이 절로 든다고나 할까. 이 책을 만났을 때도 그런 기분. 뇌는 읽을 필요 없어, 하는데 마음은 간절히 원하고 있는 그런 언발런스한 태도로 귤과 커피를 손닿는 곳에 놓고, 하필이면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셀러브리티>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유치하고, 뻔하고, 가벼울꺼야, 라던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읽는 도중의 나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거다.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 마냥. 이런 식으로 나는 또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아만다 바인즈가 나오는 영화 같은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이전에 나온 정수현 작가의 소설을 읽지 못한 게 후회될 정도로 재밌게 읽은 걸 보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여자일까.


스물 일곱의 가십전문잡지 기자 백이현. 공주가 될 수 없는 21세기 현실을 깨닫고 일찌감치 셀러브리티의 꿈으로 전향한 그녀는 어느 날 편의점 앞에서 인기스타 유상현의 데이트 장면을 목격하고 특종을 위해 그의 차를 의도적으로 들이박는다. 바로 그 날 우연찮게 그녀의 차 위에서 잠들어 있던 환을 만나 집으로 데려오면서, 팔자에도 없는 삼각관계에 얽히는 동시에, 유상현과 환의 인생에 끼어들게 된다. 처음엔 그저 특종을 잡기 위해서였는데, 유상현과 기사보도 사이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댓가를 저울질 하던 중 정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유상현의 곁에 머물다 유상현의 비밀과 환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 이후는 비슷하다. 제멋대로인 나쁜 남자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매력을 지닌 유상현과 동화 아니, 드라마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소녀같은 여자 백이현. 그들이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지닌 평범한 아가씨가 우연히 왕자님의 사랑을 얻어 키스를 한 후, 드디어 공주가 되었습니다'로 끝나는 바로 그 주인공이 된 것.


그런데 인생은 아니 사랑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방해꾼이 꼭 있기 마련. 숨겨진 유상현의 옛 연인이자 인기스타 지은서가 돌아온 것이다. 지은서를 물리치기 위한 백이현의 덜렁대지만 사랑스러운 행동들은 여자가 봐도 흐뭇함 그 자체다. 얄밉긴 해도 나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은 동질감 같은 것.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지은서의 필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자님 유상현의 마음을 얻은 백이현은, 환과 유상현 두 남자의 사랑 안에서 마침내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셀러브리티가 되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하지만 셀러브리티는 겉으로 보는 것만큼 만만하거나 뿌듯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피곤하고, 때로는 모두 포기하고 싶은 그런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에서 막을 내린다. 유상현과 백이현 그리고 환이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이 이 동화가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세상의 모든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 해피엔딩이라고 믿는 것. 여자들의 로망.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믿음.


여자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적어도 자신을 공주처럼 대해줄 남자가 언젠가는 나타날꺼라는 환상과 희망 속에서 산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그건 단지 로망에 그치지 않는다. 여자들의 핑크빛 미래도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세상에는 반드시 왕자와 공주가 있어야 하며, 그들의 사랑을 막을 방해자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이런 동화속 이야기에 자신을 대입한다. 꿈꾸는 것은 꿈꾸는 자의 자유다. 그것이 현실이든 환상이든 판단은 필요없다. 그래서 자신이 셀러브리티가 되는 상상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이뤄지지 않아서 꿈이다. 꿈이 이뤄지면 그건 더이상 꿈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리고 꿈이 여자만의 것은 아니다. 세상도, 남자도, 강아지도 모두 꿈을 꾼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사랑스러운 여자, 지혜로운 여자, 왕자님을 기다리는 여자, 성숙한 여자. 어떤 여자가 되고 싶은지 나에게 묻는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모든 것을 갖춘 공주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나를 공주로 만들어주는 왕자도 좋지만, 내가 공주가 되어 왕자를 기다리는 것도 좋겠다. 그냥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지금은 21세기니까. 

- written by 깊은슬픔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추천도서2009.10.12 16:26

세계의 끝 여자친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연수 (문학동네, 2009년)
상세보기


세상이 바삐 돌아간다, 역사도 돌아간다, 그리고 사라져간다.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는 속에서 숨 쉴 구멍을 찾아 여기 저기 고개를 내민다. 나의 산소는 사랑이다. 돈, 돈, 돈… 해고, 실업, 생존, 자살 이 모든 것들을 현란한 춤을 추며 유혹하는 순간마다 막혀오는 숨통을 틔우기 위해 심장에 빨대라도 넣고 싶다. 그 답답함에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고, 전화를 열었다 닫았다 해도 결국 공허한 숨 막힘만 남아있다. 판타지처럼 또 다른 공간에, 또 다른 시간에 있고 싶다. 식어버린 혁명대신에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할 그 무엇은. 사랑이다.

여자 친구를 만나면 좋겠다. 일부는 애인이 되고, 아내가 되고, 잠깐 만나 아는 사람이 된다. 혹은 떠나버린 님이 되기도 한다. 그들 모두는 만남의 순간만큼은 나의 동반자들이다. 내 눈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던 ‘밤뫼’를 찾는다. 그곳은 없었거나 변하여 찾을 수 없지만, 그녀 곁에 있던 그 순간의 나만큼 어린 시절 시체수영을 하던 그 곳이 꼭 보고 싶었으리라. 그것이 그녀의 낙이니까.(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누군가 나의 메신저가 되어 그녀에게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녀와 내가 거닐고 잠시 머물렀던 호수의 끝은 나에게는 ‘세계의 끝’이었다고. 내 마음 변하기않게 내가 죽은 뒤에. 나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가족은 일상이다. 일상처럼 가족은 내 현실의 중압감속에서 묻혀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만난다. 사람이 죽는 순간 지난 과거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듯, 나의 부모의 죽음은 나를 깊은 슬픔 속으로 몰아간다. 나 자신의 죽음이 남긴 부재감보다 더 큰 공허함을 남기며. 어머니가 죽을 때 보았던 그 노을은 나에게 삶의 회한을 알려주는 ‘메타포’이다. 어느 사진 작가가 찍은 놀은 내가 ‘본’ 것이다. 그래서 깊은 공감이 간다. 한 침대에서 누워있는 남편보다 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독재자를 높이 칭송하고 음담패설로 시끄럽게 하던 아버지는 넘어졌다. 웃기지 않은 코미디는 거기서 끝났지만, 아버지는 자기의 코미디를 실현하러 떠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눈이 멀어져가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돈을 훔쳐 도망치려고 가는 길이 사막으로 향하던 것이 달을 향해서 가려던 거라고. (달로 간 코미디언)

또, 어느 날 술 한 잔을 나누며 만난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의 죽음은 나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만난 그는 그렇게 내 고통을 배가하거나, 위안을 주어 자그마한 나의 숨통을 열어주었기에 또 하나의 ‘사랑’으로 남는다. 비록 그가 대학생을 고문하다 죽였을지라도 나에게는 현재의 그는 그일 뿐이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 기득권층이 되어 이미 정해진 남자친구 가족과 떠난 ‘나’는 어느 날 누군가의 죽음을 방관한다. 어차피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니. 창을 통해 나를 본 그는 나에게 이야기 한다. 뭐하냐고? 그로부터 세계를 본다. 그래서 좋다. 그와의 첫 날 밤이, 그가 던진 한마디가. 결국 나는 있던 자리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나 외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사랑을 추억하고 추억할 때마다 사랑은 다른 모습이다. 때로 잔인하고 때로 상처가 되던 그 모습, 그리고 아련한 아픔이 될 사랑을 생각하거나 적어보거나 말하면서 우리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사랑에 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 현재의 기록은 어떨까. 외국인 노동자와 ‘말하자면 친구’인 내 아내. 은근히 질투가 난다. 그에게. 그와 내 아내의 관계가. 그렇지만, 둘은 사실 말그대로 서로 언어를 가르쳐주는 ‘말하자면 친구’일 뿐이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집착일 수도 있다. 사용하지 않는 피아노가 음을 못 내듯이 서로 사랑을 행하지 않고 놔두면 사그라드는 감정처럼 사랑은 녹슨다. 그래 그렇게 자꾸 사랑해야지. (모두에게 복된 새해) 삶의 숨통과도 같은 만남과 헤어짐은 불쑥 불쑥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다가올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든, 얼마나 바쁘든.

호수 한쪽에 다다라 세상의 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뻔뻔한 상상력, 죽은 시인을 빗대 자신의 사랑을 들추어내며 독자의 소통을 자극하는 삐끼적 상상력, 이제 한 가슴을 수술 메스로 도려내야 하는 늙은 여인과 젊은 총각이 함께 사랑을 공감하며 남-녀-노-소의 짝짓기의 한계를 넘는 도발적 상상력 등을 갖춘 김연수의 글은 ‘좋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쉽게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의 소설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서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속세의 이별 공식

우리는 사랑일까ㅣ알랭 드 보통ㅣ은행나무(2005)
 
                                                                                                                     -  김보일


낭만적 연애, 그거 별거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소설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우리는 사랑일까』가 그것. 주인공 앨리스는 광고회사를 다니는 스물네 살의 커리어우먼이다. 그녀가 꿈꾸는 것이 바로 낭만적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이란 쉽게 말해서 ‘꿀과 같이 달콤하고 꿈과 같이 몽상적인 사랑’이다.

꿈이 달콤한 것은 현실이 씁쓸하기 때문이다. 꿈은 해방의 세계이지만 현실은 의무와 책임과 노동의 세계다. 그래서 현실은 버겁고 무겁고, 피곤하다. 신세계를 건설하려는 창조의 욕망은 현실에 대한 환멸의 깊이에 비례함을 기억하자. 환멸은 환멸에서 그치지 않는다. 반드시 새로운 세계를 그리워하고 꿈꾸기 마련이다. 삶이 피곤하고 누추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발붙인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희망을 품는다. 떠나고자 하는 탈출의 충동, 다른 세계에 살고 싶은 소망, 그것이 다름 아닌 낭만적 욕망이다. 여행은 그 낭만적 욕망의 아주 구체적인 실현인 셈이다.

‘지금 여기’의 생활에 만족한다면 다른 세계에 대한 욕망도 없을 것이다. 떠남과 탈출에 대한 욕망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온다. ‘서자’ 홍길동이 율도국을 꿈꾸듯, 모든 유토피아는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꾸는 꿈이다. 세속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일지라도 현실이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다. 그에게도 결핍의 느낌은 있을 수 있다. 왠지 허전하다는 느낌, 왠지 삶이 스산하고 아릿하다는 느낌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그는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느낌,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얻을 수 있는 푸근한 안정감, 앨리스의 연애의 목표는 바로 그런 느낌을 얻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앨리스에게 남자가 나타났다! 그냥 남자가 아니라 아주 느낌이 좋은 남자다. 사랑의 느낌이 온 것이다.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다. 사랑 이전과 사랑 이후는 확연히 다르다. 보이는 세상이 다르고, 느끼는 감각이 다르다. 대체 이런 사람이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을까. 모든 게 신비롭기만 하다. 그의 이름은 에릭, 그는 한때는 의사였지만 현재는 금융회사에 다닌다. 누가 봐도 번지르르한 인물이다. 세련된 외모와 옷차림, 잘 나가는 직업, 뭐하나 빠질 것이 없다.

이런 남친을 자신의 친구들 앞에 소개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친구들 앞에서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는 그녀의 미소 속에 숨어 있을 그녀의 흐뭇한 자존심을 상기해보라.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너희들이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이 남자가 바로 내 남친이야.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한데지 뭐니. 어때, 이런 남자에게 사랑받고 있는 나도 꽤 괜찮은 여자 아니겠니.

이럴 때 우정이란 “오우”라는 감탄사를 마구 연발해주어서 너의 남친 정말 멋지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자꾸 확인시켜주는 친구로서의 도리를 일컫는다. 주위의 감탄사는 그녀의 자존심을 한껏 앙양시켜주고 그녀의 미소를 최대한으로 볼륨업시켜줄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때 그녀의 자존심은 약간의 냉정과 겸손을 되찾는다. “이 사람 보기보다 성격이 좀 까칠한 데가 있어.”라는 멘트가 그것이다. 너희들 너무 부러워하지 마. 사실 이 친구에게도 약간의 인간적인 결격사유가 있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이런 말이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지 않는다. 인간은 칭찬의 동물이기에 앞서 질투의 동물이지 않은가. 더구나 학창시절에 그녀가 나보다 학업이나 외모면에서 한참 뒤떨어진 친구라고 생각되었던 친구라면 질투심은 복통 수준을 넘어선다. 대체 왜 나에게 이토록 모진 시련을 주시는지, 신마저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친구들이야 배가 아프든 말든 앨리스는 행복하다. 꿈에도 그리던 멋진 남친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근사하고 훌륭한 옷을 입었다는 그 확실한 착용감, 사랑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착용감은 변하기 마련이다. 최신식 핸드폰도 세월 앞에서는 이내 중고품이 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썩지 않는 불후(不朽)의 사랑은 없다. 그런데 왜, 어째서 앨리스의 존재감을 한껏 앙양시켜주던 사랑의 감정이 변하게 된 것일까.

앨리스가 사랑하는 것이 ‘에릭’인지, ‘에릭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호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말할 것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 사람보다 그 사람의 조건을 사랑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학벌, 그 사람의 외모, 그 사람의 경제적 여건, 그 사람의 집안 등이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사랑한다고 하면 왠지 속물처럼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착각하지 마. 당신들 눈에는 내가 그 사람의 조건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는 줄 모르겠는데, 착각하지 마셔.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이지 그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랑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사람 성격이 좋아서도 마찬가지다. 성격, 그것은 소유했다가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돈도, 권력도, 미모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성, 외모, 권력, 이런 조건을 따지지 말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라는 말인가. No!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아니고서야 이런 사랑은 불가능하다. 모든 세속적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해타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나는 너의 외모 때문에, 나는 너의 돈 때문에, 나는 너의 학력 때문에, 너를 선택했다는 것은, 따질 것 없이 아웃이다.

앨리스는 그렇다면 에릭의 무엇을 사랑했다는 것인가. 소설의 한 장면을 보자.

앨리스는 ‘멜템’이라는 근사한 식당에 가게 된다. 이 식당은 아주 근사한 식당이다. 그러나 그냥 근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옳다. 소설의 표현을 빌자. 이 식당은 ‘그 주에만 영화․패션․음악계의 유명인사들 수십 명이 다녀갔으며 장안이 떠들썩하게 인구에 회자되는 레스토랑이다.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평점도 좋다.

알랭 드 보통은 여기에서 욕망의 두 가지 형식을 이끌어 낸다. 하나는 ‘음식이 내 입맛에 꼭 맞으니 레스토랑이 마음에 드네.’라는 자율적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다들 그렇다니까 여긴 훌륭한 레스토랑이야.’라는 모방심리다.

앨리스는 두 가지 형식 중 언제나 후자 쪽을 따르는 여자였다. 자율적 욕망보다는 모방을 선호했다는 이야기다. 갖고 싶은 옷, 구두, 레스토랑, 애인에 대한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인상에 맞춰졌다는 이야기다.

과연 “나는 앨리스와는 달라, 나는 남의 눈치 보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옷을 고를 때도 그렇고, 식당을 고를 때도 그렇고, 사람을 고를 때도 그렇다. 내 자율적 욕망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내 욕망보다는 타인의 평가를 더 중시하는 욕망이 바로 모방의 욕망이다.

‘멜템’이라는 근사한 식당이 바로 모방의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영화․패션․음악계의 유명 인사들이 가고 싶어 하는 욕망의 공간이다. 왠지 그곳에 있으면 내 삶이 에스컬레이팅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멜템’이다. 근사한 회원제 식당이나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 말이다. 감미로운 재즈가 흐르고, 은근한 와인향이 흐르고, 옆 테이블을 힐끗거리면 잘 차려 입은, 왠지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서는 왠지 나의 삶도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일 것이다. 앨리스가 사랑한 것이 바로 그 ‘나의 삶이 업그레이드 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에릭과 함께라면 나의 삶이 업그레이드되겠지. 왜 그는 잘 나가는 남자고, 세련된 남자고, 그는 훌륭한 레스토랑에 드나드는 남자고, 그 레스토랑은 교양인들이 넘쳐나는 공간이기 때문에.

앨리스가 쇼핑을 좋아하는 여자라는 사실은 그녀의 욕망이 자율적 욕망이라기보다는 모방의 욕망이었음을 암시해준다. 그녀의 쇼핑 스타일은 현대인의 쇼핑 스타일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현대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열심히 눈치를 본다. 혹시 이 가방을 매면 누군가가 나를 취향이 구린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이 신발은 대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내심 걱정하며, 남들의 눈에 비칠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구매를 결정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남이 원하는 것을 구입하게 된 적은 없는가. 옷을 살 때는 이 정도는 입어줘야지, 차를 탈 때는 이 정도의 차는 타줘야지 하는 식의 심리가 발동되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애인을 고를 때도 이런 모방의 심리가 발동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을 내 친구 앞에 소개했을 때, 과연 나는 내 친구들 앞에서 자부심 어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 애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왠지 내 모습이 초라할 것 같다고 생각되면 이 사람을 사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번민한다. 사람은 참 좋은데, 왠지 이 사람은 타인들 앞에서 나를 초라하게 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히 이별을 선언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선언을 위해서는 관계의 끈을 한칼로 잘라내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이런 단호함이 없다면 사랑은 덜거덕거리는 소음을 내기 쉽다. 끊어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맺지도 못하는 아주 우유부단한, 그리고 고통스런 시간이 지나간다. 그 동안의 정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지만 거기에 사랑의 기쁨은 없다. 처음에 느꼈던 설램도 없다. 이렇게 시간만을 죽일 수는 없다고 어느 날 느닷없이 이별을 통보한다. 핸드폰에 문자 하나 날아오지 않는 삭막한 현실… 원망감. 쓸쓸함… 바로 이런 게 속세의 이별 공식이다. 이런 속세의 이별 공식에서 사랑은 고귀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아무리 드라마가 사랑을 미화하더라도 이런 식의 이별 공식엔 닳고 닳은 계산만이 있을 뿐이다. 첫맛은 달콤하지만 뒷맛은 씁쓰레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알지랑
베스트서평2009.08.02 15:27
웨하스 의자
_ 에쿠니 가오리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소담출판사,2004-12-15 00:00:00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저는 그녀가 쓴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쉽고 편안하거든요.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진 일본 작가로 흔히 그녀를 소개하는 글에는 ‘감성작가’라는 말이 붙어있어요. 아마도 그녀가 쓴 글 속에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 보다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감성적으로 (또는 감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편안하고 쉽게 쓰인 문체에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본소설을 깔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꼭 소설이 어려워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감성작가면 어떻고 칙릿이면 어떻고 장르소설이면 어떻습니까.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작업 아닌가요? 꼭 그렇게 무거운 책을 쓰는 작가만 고집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야 이 책을 추천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이 책은 1장부터 51장까지 자잘하게 나뉘어있습니다. 240페이지 가량 되는 책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장이 나오려면 한 장에는 몇 페이지 할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시겠지요? 처음에는 저도 꼭 소설의 흐름이 장을 바꿔가면서 뚝뚝 끊기는 것 같아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방법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불쑥 불쑥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생각에 잠겨있다가도 누군가 그녀의 방을 방문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의 구성이에요. 원래 사람이라는게 항상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생물은 아니잖아요? 이리 건너뛰고 저리 건너뛰고,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을 하다가 문득 지금과 관련도 없는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사람을 참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신없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 다듬어진 느낌? 하지만 본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답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는 언제나 절망과 외로움, 슬픔, 죽음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이런 어두운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와요. 

슬픔.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슬픔에 대해, 빈틈없이 생각하고 밝히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진귀한 식물이나 무엇인 것처럼 여겨지고, 전혀 슬프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만 눈앞에 엄연히 있을 뿐. 나는 이 집에서 그 진귀한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 웬만큼 잘 맞는지, 그것은 놀랍도록 쑥쑥 자라고 있다. 그것 앞에서 나는 감정적이 되기가 힘들다. 슬픔은 나와 따로 떨어져있어서, 나는 나의 슬픔을 남 일처럼 바라본다. (130p)

  그녀는 이런 어두운 단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읽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아요. 단지 우리들에게만 말해줍니다. 마치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그녀 마음속에 있는, 그녀만 아는 또다른 존재인 양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버겁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죠. 그녀는 삶이라는 것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사랑을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그이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신에 갇혀있는 거라고. 애인이 없는 삶은 그래서 삶이 없는 것이고 즉 죽음과 연계됩니다. 애가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에 매달려 이렇게 저렇게 삶에 끌려 다닙니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나 생각해오던 죽음을 꿈꾸지요. 애인이 없는 삶을 그려보지만 애인을 사랑하기에 그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은 ‘웨하스 의자’로 나타납니다.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웨하스였다. (71p)
나는 그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앞에 있지만, 그리고 의자는 의자인데, 절대 앉을 수 없다. (71p)

  그녀는 살고 싶은 걸까요, 죽고 싶은 걸까요? 그녀의 내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도 모릅니다. 그녀는 죽고 싶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시겠죠?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아, 정말 세상 살 맛 안 난다고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있음에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그녀 안에서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목욕하면서 하얀 몸뚱이를 보고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애인과의 헤어짐을 생각하며 죽음을 그리기도 합니다.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이런 역설적인 마음이 꼭 제 마음 같다고 느끼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애인과 헤어지고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접해오던 터라 죽음은 그저 어떤 시점에 누군가에게 찾아오는 것일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찾아오지 않고 애인이 그녀를 다시 찾아오죠. 굶어서 거의 죽어가던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다시 삶이라는 곳으로 가두어 놓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싫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함께 휴가 계획을 세우며 책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 뒤로 그녀는 삶을 긍정하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어느 날 찾아온 죽음에 그렇게 가버렸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네요.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는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그녀는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까, 죽음은 곧 자유라고 생각하니까 그편이 그녀에게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요?

“잘 들어. 나는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니야. 다만 죽어가고 있었지. 병원에 가서도, 당신을 만나서도, 이렇게 식사를 하면서도, 그것은 변함이 없어.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어. 그건 슬픈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슬퍼하지마, 믿어.” (242p)



- written by agnes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6.13 21:06

탱고 - 구혜선 일러스트 픽션
_ 구혜선 (지은이)/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우리가 첫 사랑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찾는 말은 무엇일까?
후회? 아쉬움? 추억?
나에게 첫 사랑은 ‘사랑’에 대한 단상을 찾기보다는 ‘처음’이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추는게 맞는 것 같다. 내 생애 첫 사랑, 처음 한 키스, 처음 본 영화 등등...함께 하면서 온통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 투성이였으니까.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을 하는 동안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식당에 가고, 같이 놀러가도 처음만큼 강렬한 인상이 남지는 않았다. 각각의 추억과 색은 다르게 남았을지라도.


이 책의 주인공 ‘연’은 지금 자신의 연인 ‘종운’과 헤어지는 중이다.
그 헤어짐이 ‘종운’의 일방적인 통보로 시작되었고, 여전히 ‘연’으로서는 헤어지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이별이라는 종착지는 점점 뚜렷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떠나는 사람도 다가오는 사람도 아무런 예고 없었던 것처럼.
출판사 대표 민영이 연에게 불쑥 다가오지만 연은 아직 그럴 마음이 없다. 종운과의 이별을 실감하기도 전이였고, 아니 실감했다고 해도 애써 부정하는 중이였으니까.


그러나 마침내 둘 사이의 사랑에 점을 찍어야 하는 순간이 오자 펑펑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만다. 지독한 이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렇게 현실 속에 뎅그러니 놓여진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라는 흔한 말이 아니었어도 그들은 또 다시 사랑을 할 것이다.혼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들이기에.
그 고독을 알아챈 듯 어느 새 소리 없이 다가온 시후를 연은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를 할 때는 ‘꿈’만 같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덧없어지거나 무참히 짓밟혀 아파하면 이것이 또 ‘꿈’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깨어나길 바라는 그 꿈. 사실은 현실의 다른 말이다.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만큼 무겁고 고통스러운 때가 또 있을까?
악이 나쁘다는 것은 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알 수 있듯이 사랑도 이별의 아픔이 있기에 더욱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작가 구혜선은 ‘탱고’라는 이 작품에서 ‘연’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인간본연의 감정을 참으로 담담하고 나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너무 서정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그녀만의 시선으로...
비록 아프고 쓰리고 씁쓸하기만한 시간일지라도 이제 그녀는 그 과정마저도 조용히 견뎌낼 줄 아는 성숙함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픈 통과의례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또 다시 싱그럽고 알싸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젊고 씩씩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written by 영원한청춘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추천도서2009.03.11 11:09


내 주위에는 화이트데이 때문에 고민하는 남자들이 많다. 어떤 선물을 줄 것이냐, 도 고민스럽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보니 길거리에서 파는 화려한 사탕바구니나 액세서리사서 그냥 건네주기만 한다. 물론 이런 경우 여성들은 십중팔구 실망한다. 선물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남자들도 흥이 깨지기 마련. 이것이 몇 년이나 반복되다보니 남자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다.

나는 이런 친구들에게 을 함께 선물해보라고 권한다. 첫 장에 예쁜 글씨로 마음을 적어 건네주는 책만큼 마음을 전해주는 선물도 없다. 책의 주인공들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책이나 선물하면 안 된다. 역효과난다. 그래서 나는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랑을 그린 책들을 권한다. 첫 장에 마음을 담아 다른 선물과 함께 준다면 화이트데이가 더 달콤해질 거라 믿고 선물하기 좋은 책 LIST를 포스팅 해본다.




1.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주노 디아스

평생을 살면서 사랑한번 못해본 오스카 와오. 그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지만 여자들은 거부했다. 그가 너무 못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여성이 그의 마음을 알아준다. 그녀의 이름은 이본. 이본은 오스카 와오에게 웃어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준다.

하지만 시국이 심상치 않았다. 독재정권에서 경찰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이본을 원한다. 이본은 오스카 와오가 다칠까 걱정되어 억지로 이별하고 먼 곳으로 떠난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 것이었다.

오스카 와오는 이대로 그녀를 보내야 하는 걸까? 평생 바보 취급당하던 남자, 사랑이라고는 이제 겨우 한번 해본 오스카 와오, 눈물을 닦고 간다. 죽을 각오로 이본을 찾아 떠난 것이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강렬하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무모한 남자의 순애보를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단지 강렬하기만 한가? 애틋하다. 죽더라도 그녀의 얼굴 한번 보겠다는 그 마음이, 고문당하더라도 그녀의 미소 한번 보면 족하다는 그 마음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 책이라면 마음을 전하는데 부족할 것이 없을 것이다.


2. 심장의 시계장치 - 마티아스 말지외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날에 태어난 잭은 심장이 꽝꽝 얼어붙어있다. 마녀는 그를 살리기 위해 심장에 시계를 이식한다. 시계는 심장처럼 일정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잭은 살아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흥분하면 안 된다. 특히 사랑은 더 안 된다. 시계는 심장처럼 빠르게 두근거리는 걸 견딜 수 없다. 일정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잭은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우연히 보게 된 소녀에 잭은 첫사랑에 빠지고 시계는 그 두근거림을 감당하지 못한다. 심장발작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잭은 그 소녀를 포기할 수 없다. 그녀에게 가기 위해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만다. 사랑 때문이었다.

이 책의 작가는 '사랑이란 위험을 무릅쓰는 것, 불가능한 것을 믿게 되는 마법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잭의 사랑은 이 말에서 태어난 것이다. 잭은 과연 그녀에게 갈 수 있을까? 심장의 시계장치는 두근거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동화 같으면서도 판타지스러운, 한편으로는 우화 같은 『심장의 시계장치』, 그 내용이나 애틋한 여운을 보건데 이 책 또한 마음을 전해주는 책으로 손꼽을 만하다.


3. D에게 보낸 편지 - 앙드레 고르

2007년 세계는 놀랐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 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죽기 1년 전에 아내에게 쓴 편지의 내용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사랑에 대한 시였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혼자 두지 않으려는 남편의 극진한 사랑이 있었다. 그러니 세계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게다.

D에게 보낸 편지』는 그 편지들을 모은 책이다.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을 약속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혼자 보내지 않았던 남자의 마음이 담긴 에세이다. 이 책 또한 마음을 전해주는데 부족할 것이 없다. 거의 완벽하다.


4. 조제와 물고기와 호랑이들 - 다나베 세이코

조금 날카로운 그녀와 조금 눈치 없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큼 이야기에 힘이 있다. 조제는 남들과 좀 다르다. 신체적인 어떤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날카롭다. 성격이 모났다. 그런데 그녀에게 반한 남자는 우둔하다. 그래서 아무 거리낌없이 사랑을 하고 만다. 세상의 잇속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이다. 하지만 쉬운 사랑은 아니다.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될 것인가? 『조제와 물고기와 호랑이들』은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깔끔하면서도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기에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특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하려는 남자의 순애보는 마음을 애틋하게 파고든다. 마음을 전하는 선물로 부족할 것이 없다.


5. 오 자히르 - 파울로 코엘료

아내가 떠났다. 남편에게 실망했기에, 그 마음을 믿을 수 없어 떠났다. 남자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까? 그녀를 찾아 나선다. 먼 길이다. 고난도 많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뒤늦게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사랑을 위해 그토록 먼 길을 가는 것이다.

코엘료의 『오 자히르』처럼 마음을 전해주는 책도 드물다. 다른 책들은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두근거림을 그리는데 반해 이 책은 사랑에 실망해 헤어지려는 연인에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음을 전하면서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책이기도 한 『오 자히르』, 그 내용을 보건데 이 책 또한 마음을 전해주는 힘이 충분하다.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사랑에 도움이 될까? 마음에 맞는 책을 골라서 마음을 담아 주면 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은 그런 힘이 있다. 화이트 데이다. 이 좋은 날에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가? 당신의 마음을 책의 첫 장에 소중하게 적어서 선물해보면 어떨까? 그녀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책에 진심 어린 마음을 담는다면, 충분히 그렇게 될 것이다.

Posted by 정군






정군님께서 화이트데이에 받고 싶은 책으로 몇 권의 책을 선정하셨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저도 오랜만에 책 추천을 해봅니다. 정군님은 남자 입장에서 이런 책을 사주면 좋아하겠지? 하고 선정했을 테니, 여자인 나라면 이런 책이 받고 싶어! 라는 기준으로 올려보겠습니다. 정군님이 선정한 책들은 저 역시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라(특히 심장의 시계장치!) 그 어떤 여자라도 책을 좋아한다면 분명 '그대'의 센스에 감동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잡설은 그만하고 제가 고른 그녀에게 선물하면 좋을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1. 그대는 폴라리스 - 미우라 시온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 미우라 시온의 소설집입니다. 『그대는 폴라리스』열한 편의 이야기가 열한 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펼쳐지는데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러브레터, 신앙, 삼각관계, 첫사랑 등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랑에 대해 풀어놓은 셈이죠. 일본 소설을 저는 잘 안 읽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간혹 보면 담백해서 마음에 드는 소설들이 있는데 이 소설집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요.^^ 쿨하고 기발한 상상력, 독특하면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그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미우라 시온은 아주 독특하게 이야기 합니다.


2.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아지즈 네신

또 다른 사랑에 관한 소설집. 바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 아지즈 네신은 터키에서 풍자소설가로 유명한 작가이죠. 그런 그가 그려내는 '사랑'은 풍자 소설가답게 우화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SF같은 환상적이기도 하답니다. 이 책에서 아지즈 네신은 여섯 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탁월한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동식물에 비유하여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으로 아지즈 네신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의 매력에 푹 빠져 아지즈 네신이란 이름만 들으면 무조건 그의 책을 읽고 본답니다.^^


3.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이도우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추천부터 하고 보는 책인데 읽어보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베스트셀러의 대열엔 오르지 않았지만 꾸준히 나가고 있는 스테디셀러죠. 진정! 책을 좋아하고 사랑에 관한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빼놓지 않고 추천할 테니 말예요. 바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입니다. 보통 '사랑'에 관한 소설들을 읽으면 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많이 나오는 칙릿 소설들이 대부분 그러하죠. 하지만 이 책은 만만찮은 문장력으로 사랑에 실패한 남녀 주인공들에 대한 감정 처리를 매우 훌륭하게 보여준답니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분명 '당신의 그녀'가 아주 좋아라 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4.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이번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은 아니에요. 소설도 아니랍니다. 산문집이고 사랑하곤 상관이 없지만 서문에 작가가 적어 놓은 글처럼 “내가 사랑한 시절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내게서 빠져 있는 것들”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청춘의 문장들』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유난히 아름다운 문장들과 공감 가는 글들에 '당신의 그녀'가 폭 빠져들고도 남을 것 같아서랍니다.^^ 조금 사적인 글들이 들어 있긴 하지만 '청춘세대'들이 읽어보면 분명 공감하는 글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또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젊은 그대들'에게 하나쯤 고민거리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5.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 원태연

이 책은 사실 올릴까말까 망설였어요. 책으론 솔직히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오늘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을 바꿨답니다. 그래요. 전 오늘 시사회에 다녀왔는데 내일 이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네요. 바로 시인인 원태연의 원작 소설『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랍니다. 이거야말로 '사랑'에 빠진 젊은 청춘 남녀들이 한번 읽어봄직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싫어하는 그녀도 아주 잘(!^^) 읽을 수 있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 또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구요. 오늘 같이 간 친구는 눈물이 많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는데 책만 읽어도 사실은 조금 짠~해진답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읽고 나면 내 곁에 있는 그이가 훨씬 더 사랑스러워질지 몰라요. 아니, 고마워질려나??



발렌타인데이에 남친에게 책 선물을 하면 아마도 그다지 좋은 소리 못 듣겠지만 화이트데이날 여친에게 책 선물하면 분명! 멋진 남자~! 라는 소릴 들을 거예요. 세상에서 보석보다, 명품보다 훨씬 멋진 선물이 바로 선물 이거든요. 올해 화이트데이 선물하시고 사랑하는 그녀에게 칭찬 받으세요!^^*

Posted by 롤러코스터

신고
Posted by 알지랑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