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추천도서2010.05.06 18:45
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
_ 송승훈 /양철북,2010-01-12 00:00:00

 나는 책을 즐겨 읽는다. 책읽기는 외로움을 덜어주며 나를 몰두하게 만들어서 다른 온갖 잡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책읽기의 장점은 경험해본 이들만 공유할 수 있다. 그 행복한 경험을 누구에게나 아무런 사심 없이(?) 추천하고 싶어진다. 성격, 품성 등의 선천적인 면이 글 읽기를 가로막는 경우에도 우연한 후천적인 경험으로도 독서에 푹 빠지는 일은 흔하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길고긴 학생시절, 교과서와 참고서만으로도 지긋지긋했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책을 깊이 있게 읽는 일은 드물었다. 세상에 나가 인생의 고난과 방황, 역경의 시기에서 만난 몇 권의 책이 나에게 보이지 않던 길을 보여주어 인도하는 역할을 했고 나는 기꺼이 그 길로 따르리라고 마음먹었다. 읽으면서 자주 만나는 저자의 삶이 궁금했고 그의 지식세계에 감탄하고 때론 질투가 났다.


욕심을 가지면 책의 저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 일년에 책 한권보지 않는 이들이라도 유명한 책의 저자를 만나는 일은 설렌다. 티브이를 통해서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을 만나는 일처럼. “나 누구 만났어.”라고 시작해서 듣는 이의 궁금함을 한방에 사그라지게 만드는“그냥 만났다구”로 끝나더라도 본인은 그 만남 자체에 깊은 감흥을 간직하게 된다. 어른보다는 어린이가, 어린이 보다는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이 더 깊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명인에 그렇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인생을 던지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죽었다. 뉴스와 인터넷을 누비는 옷 벗은 중학생, 케첩과 달걀범벅의 찢어진 교복차림의 학생들이 담긴 동영상은 거꾸로 그들이 속한 학교와 그들의 존재가 단지 ‘억압’속에 있었다는 증거다. 선생과 제자는 악수하거나 포옹하고 부모는 눈물 흘리는 졸업식을 볼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음을 말한다. 돈이라는 신이 지배하는 망가진 세상, 그 안에서 특히 약자인 학생이라는 신분은 정신을 놓지 않으면(군대든 학교든 정신 줄을 놓으면 무척 편해진다) 견디기 힘든 경쟁의 큰 틀 속에 자신의 위치가 성인이 되기도 정해지는 계급사회의 표본이다. 학교에서 소모되고 꿈 없이(좋은 대학 가는 것은 꿈이 될 수 없다) 학원에서 써버리고 남는 것 없는 껍데기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아직, 교육은 살아있다. 일부지역의 교육감, 몇 학교의 교장과 선생, 학부모들이 손을 잡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흔히 ‘대안’이라고 불리는 교육의 틀 속에서 아이들은 감성을 회복하고 자아, 자존감을 쌓는다. 책의 저자인 송승훈 선생도 그 중 하나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미래를 꿈꿀까. 자신을 찾고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될까 하는 고민에 충실한 선생 본연의 자세를 위해 본인을 가다듬는다.


애들아, 독서와 서평쓰기는 시작이다. 이제 저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시간이다. 두 달간의 프로젝트는 5명의 모둠이 한 책을 선정하고 그 책의 서평을 쓰고 저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서 글로 남기는 것이다. 기본은 이렇다. 책을 선정하고 (서평이 쉬울 것 같은 책에 몰리므로 각 모둠의 대표가 나와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지는 쪽이 책을 고른다)그 책을 조원이 모두 읽고 서평을 각자 쓴다. 서평을 모아서 저자에게 전달하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면 모두 모여서 약속장소로 이동하고 만나는 분께 고마움을 표시할 만한 선물을 준비한다. 이야기 꺼리는 미리 준비하고 부담이 될만한 내용은 피한다. 대화의 과정과 진행과정을 사진 촬영한다.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서를 쓴다.


각 역할은 분담하는데 모둠의 모두의 고른 참여를 위한 것이다. 기획, 외교, 사진, 질문, 보고서의 각 역할을 한명씩 맡아서 진행한다.


이 책을 읽으며 행복해진다. 아이들의 보고서는 서투르다. 선택하기에 길들어진,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툰 시골(?) 고등학교 학생들의 글이다. 반면, 그 간 읽어온 딱딱하고 잘 짜여진 문장들을 보다가 조금 엉성하고 순박하게 느껴지는 학생들의 솔직한 글을 읽으니 익숙하게 짜여진 구조와 단어를 조합해서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솔직함보다 겉멋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반성의 시간이었다. 깊지 않은 반성이 좋은 글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행평가’만 아니면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도전(대부분의 아이들이 보고서 서두에 밝히고 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은 아이들이 기꺼이 해내었다. 만화가 박재동, 건축가, 이일훈, 여성학자 이총각, 페미니스트 정희진, 역사학자 최상천 등의 저자와 만나고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거나 먼 거리여서 학생들이 만나기 힘들 경우엔 관련운동단체, NGO등을 연락해서 가능한 ‘선배’를 만나는 데에 성공했다. 기껏 한번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통방법(메일 쓰기, 전화통화 하기)의 경험을 쌓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홍보도 하게 된다.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내용을 곱씹게 되며 삶과 지식의 연관성에 대한 경험은 그 나이 입시생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일이 될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색다른 경험인가. ‘저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구나. 그래 내가 풀지 못한 해답이 저것이겠구나.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해. 나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저렇게 사람을 크게 만드는 구나.’ 등의 감상이 주어진 ‘문제풀이’에만 몰두하는 대학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인생을 좌우하게 될 자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 교육에 관한 고민을 안고 사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written by 소일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_ 이범,이남수,이수광,신을진,조기숙,허아람,송인수 공저/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시사IN북(시사인북),2010-01-05 00:00:00

에세이도 아니고 서평을 쓰면서 내 자녀관을 열거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책을 말하자면 그 얘기부터 해야 될 것 같다. 내 나이 스물 여덟. 나는 6년째 사귀는 애인이 있지만 아직 미혼이고 결혼 계획은 더군다나 없고 세상 모든 여자가 생의 안정적 선택과 행복을 위해 결혼을 꿈꾼다면 나는 좀 다르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결혼보다 유학이 더 고픈, 안정된 삶보다 도전적인 삶을 꿈꾼다. 그렇다고 결혼을 안하겠다거나 결혼이 나쁘다거나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저 가정이란 테두리에서 여자가 해야 하는 아내와 엄마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겁이 나는 것 뿐. 그치만 나도 언젠가 내게 생길 아이를 꿈꿔 보기는 한다. 순전히 내 욕심과 상상, 즐거움으로 기능할 뿐이지만. 예쁜 딸을 낳아서 무용이나 피아노, 그림을 시켜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저 예쁘고 창의적으로 자라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로지 내 기대만으로 이루어진 꿈이지만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품었다. 하지만 내가 낳았다고 해서 자녀의 인생이 어디 내 것인가.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 했던 철없는 생각은 어느새 접히고, 문득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그 아이의 모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세상은 태어나 먹고 자는 걸로 다가 아니니까. 나는 내 능력과 힘과 지혜를 더 기르고 싶어졌다. 


[굿바이 사교육]은 어느 한 사람이 본 사교육 세상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교육에 일가견 있는 7명의 글을 한데 모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서 기획한 모음집이다.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라는 부제가 달려있기도 하다. 처음에 나는 당황했다. 사교육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주인을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알아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 관심 반, 무관심 반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너무 재밌는 거다. 학부모에게는 정말 구세주와도 같은 책이다. 교육의 제도, 구조, 시기, 방향, 정책, 방법까지 넘나들며 학부모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 더불어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적인 매커니즘을 훑어주니 이건 절대로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가뭄에 단비 내리는 느낌이다. 물론 교육은 정책이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 그리고 한 번 잘못된 방향을 타버리면 되돌리는 방법을 알아도 쉽게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나 인생에 한 번 뿐인 아이들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실패라는 게 허용되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시범으로 이리저리 정책을 바꾸면 애꿎은 아이들만 피해를 본단 말이다. 물론 그 아이들의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육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욱 확고한 기준과 올바른 지도가 필요한 영역이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파악할 수 있지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 그건 고질병 말고는 다른 단어로 설명 불가능하다.  


지금 이 책에서 설명하는 정책과 구조, 사회전반의 분위기는 내가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을 쯤엔 전혀 다르게 변해있을 수도 있다. 이건 좀 희망사항이긴 한 문제지만 그만큼 교육정책과 방향이 갈팡질팡 두서가 없단 말이다. 높으신 분들은 일단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또 저렇게 해본다. 그 와중에 사교육만 드세지고 엄한 사교육비에 가정이 휘청거리고 소통과 빈곤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뿐만 아니다.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만 호황이다. 그런데 학원은 또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이렇게 열거하기 시작하면 교육의 문제점은 끝도 없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문제는 결국 정책과 구조, 공교육의 문제가 된다. 공교육이 똑바로 자리잡지 못하니까 사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국가 정책이 갈대 같다보니 학부모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게 된다. 돈이 줄줄 새어 나갈 수 밖에 없다. 영어 조기교육은 정말 아쉬운 점 중에 하나다. 국제화 시대에 너도나도 영어를 배우는 건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로도 표현력이 어색한 미취학 아동을 영어캠프에 보내고, 그보다 좀 더 자란 초등학생을 남들이 다 간다는 이유로 영어연수를 시킨다. 부모가 그 정도 과용 능력이 있으면 또 어느 정도 괜찮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않다. 문제는 순환된다. 사교육, 사교육, 사교육이 문제라는 말은 여기서 생겨난다. 


학창시절을 10년 정도 지나보니 이제 알겠다. 공부란 게 일단 머리나 실력보단 끈기와 집념이 먼저 필요한 영역이라서 처음부터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겐 학원이나 연수보다 공부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학고, 외고 하더니 이젠 중학교도 시험 봐서 들어간단다. 공부를 잘하고 좋아해서 성적이 뛰어난 아이라면 뒷바라지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세상에 획일적인 공부 말고 다른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학창시절이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게 없다.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 가고, 결혼도 잘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보상받을 일이 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나는 공부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고 잘하지도 않았다. 후회되는 부분이 있긴 해도 공부에 대해 아쉽진 않다. 공부도 못하고 다른 것도 못하는 아이였단 게 좀 후회스러울 뿐. 나도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처럼 학교를 때려칠 용기라도 있는 아이였음 좋았을 걸 싶을 뿐. 이 책을 보다보니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의 교육제도를 비교하는 도표가 인상적이었다. 파리에 갔을 때 아는 분이 타국생활은 외롭고 힘들지만 언젠가 자녀를 프랑스에서 학교 다니게 하고 싶다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공부는 하려는 사람에게 시키고, 그것도 좋아하는 공부를 하게 하고, 나머지는 또 나머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교육은 어디 없을까? 교육을 말하는 건 끝이 없을 것 같다. 좀 엄한 구석으로 튀는 듯한 발언이지만 능력을 길러 돈을 왕창 모은 다음 프랑스로 이주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건 모르지만 유럽 몇몇 국가의, 특히 요즘 유행하는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진짜 솜사탕 같은 달콤함이다. 너무 부럽다. 제발, 이 땅의 학부모들이여, 정부 정책에, 사교육 방식에, 옆집 아이 영어연수에 기죽지 말고 나만의 반듯한 기준으로 자녀를 길러보자. 하나 둘씩 실천하다보면 정부도, 사교육 시장도, 옆집 부모도 핀란드식으로 바뀔지 어떻게 아나. 하여튼 먹을거리도 돈, 교육도 돈, 무조건 돈돈돈 하는 이익에 급급한 세상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 같다.



- written by 깊은슬픔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11.30 15:37
한국의 책쟁이들
_ 임종업/청림출판,2009-09-17 00:00:00

2009년 8월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독서광으로도 유명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종점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기차 레일처럼 찬반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를 평가하는 이들의 이념과 지역이 그를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세웠지만 그래도 이념과 지역을 떠나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최초의 고졸 대통령, IMF 위기극복, 최초로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등 그를 대표하는 이런 단어들 뒤에는 끊임없는 책읽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만권의 책이 쌓여있던 동교동 지하서재를 아직도 비자금 창고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의 책쟁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말처럼 텔레비전이 왕왕대고 인터넷으로 무한정 정보가 흘러도 잉크·종이의 향이 고인 우물에 엎드린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왜 책의 무게로 바닥이 내려앉을까 두려워 편하디 편한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책을 모으고 책을 읽는 것일까? 너무 거창한 답은 피하고자 한다. 그냥 책이 좋은 사람들이니까.분명한 것은 그들이 성공했냐의 여부를 떠나 그들이 현재 서 있는 자리를 책이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쟁이들을 보면서 따라쟁이가 되면 될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란한 비주얼이 판치는 세상에 보잘 것 없는 짬을 내어 허름한 동네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서핑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다만 미련퉁이 책쟁이들을 통해 책읽기에 대한 부담만 잠시 내려놓으면 된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최근에는 조금 덜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유교적 권위주의는 우리의 책읽기를 무거운 짐처럼 느끼게 한다. 그림 하나 삽입되지 않고 깨알같은 글씨만 가득한 책만을 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출장차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 국민. 내가 본 그들의 독서는 만화였다. 어릴 적 만화가게라도 가면 마치 불량학생 취급당했던 기억이 났다. 만화 마니아 박지수씨는 다섯 살 무렵 만화잡지 《보물섬》을 보면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이래도 만화가 모범학생과 불량학생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지구상에서 활자화 된 책 중에서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없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면 된다.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적지 않은 아니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수능을 위해 책을 읽는다. 블로그 매니아들은 내 글을 뽐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어떤 이는 미디어에서 1년 동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전 국민의 30%가 넘는다는 소식에 혹시 나도 그 집단에 속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서점을 찾는다. 자연스럽게 책읽기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읽고 싶을 때 읽어라.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매워주는 것이 책이다. 직업의 종류만 수십만이니 경험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화천 상서 우체국장 조희봉씨는 책을 많이 사지만 요즘 책읽기는 거의 못한다고 한다.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옥수수, 가을이면 추석 상품 등 제철 농산품을 판매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단다. 스스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없앴단다.

책을 읽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읽지 않는 게 좋다. 책읽기의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책읽기의 즐거움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성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윤태규 선생님은 직업상 책읽기에 빠졌다. 아이들에게 재밌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즐거운 책읽기를 통해 진리가 보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 일원으로서 작은 역할이나마 하게 될 것이다.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고 황진이의 유혹을 사제관계로 승화시킨 화담 서경덕은 ‘독서란 사색하면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이며, 어떻게 읽을 것이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보다 중요한 것은 읽은 책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즐겁게 읽어야 되고 체험을 통해 행간을 읽을 수 있으면 된다.


- written by 아뜨만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이럴땐 이런책2009.11.04 15:17

대학교 입학한 신입생이 학교에서 정해준 원서로 공부하겠다는 의욕은 좋겠지만, 그래서는 영어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성적도 다른 친구들에게 엉망일 수밖에 없다. 『번역은 반역인가』(푸른역사)에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어느 날 자택을 방문한 영국인에게 독일어의 탁월함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귀국의 젊은이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독일어를 배우는 것은 잘하는 일이오. (중략) 그리스어와 라틴어, 이탈리어어와 에스파냐어 등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 민족의 대표작들은 매끄러운 독일어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지요. 그래서 아주 특수한 목적이 아닌 한 그들 언어를 힘들게 배우느라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지요. .. 또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좋은 번역본이 있으면 대단히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오.

 

괴테의 이야기처럼 번역은 한국어의 위상과 인문학의 발전을 높일 것이다. 번역에서 00년을 앞선 일본이 지금도 열심히 하는 반면에 우리에게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많다. 영어 사전 하면 존슨박사의 사전을 의미했던 때도 있었던 셰무엘 존슨은 셰익스피어 이후로 영국문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다.  그에 대해 보즈웰이 쓴 전기는 전기 문학의 최고봉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직 이 책은 우리말로 옮겨지지 않았다. 심리학의 대가인 알플레드 아들러의 책은 오랫동안 번역되어오지 않다가 한 독문과 교수가 번역했다. 10년 전 독일 유학시절 지독히도 괴롭히는 교수에 대한 고통을 잊게 해 준 아들러의 책 『인간이해』(일빛)가 번역되어,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인문학텍스트를 선사한 셈이다. 이런 우연에 기대기에는 독자의 목마름이 많다.

 

숀 코네리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장미의 이름>를 본 사람이라면 중세 시대에 지식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지

식을 통해 세계관이 바뀔 수 있고 또 종교에 대한 관점도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숀 코네리의 연기에만 빠지지 않고 꼼꼼히 본 사람이라면 수도사들이 지식을 독점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발견(!)해낼 수 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높아가는 르네상스 시기에 수도원은 학문의 중심에 있었다. 수도사들은 그리스어뿐 만 아니라 아랍어 문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며 고대 학문을 배워나갔다. 고전문서를 접할 수 있고, 이를 라틴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을 통해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고전 저작들이 라틴어로 유럽인들에게 번역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2세기다. 번역작업을 통해 서양 사상의 뿌리중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재발견되었다. 『번역은 반역인가』의 저자 박상익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 활짝 피어난 그리스 과학과 철학이 그리스의 쇠퇴와 함께 로마에 수용될 때, 로마 지식층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따라서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그리스 과학과 철학은 서유럽 라틴 문명에 곧바로 계승되지 못했다. 한편, 아랍 세계는 8,9세기에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을 출발점으로 하여 자신들의 과학과 철학을 발달시켰다.

 

번역이 현대 유럽 문명의 발전을 일으킨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이야기다.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번역은 새로운 문명이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교, 도교도 있었지만 번역을 통해 들어온 불교경전은 중국뿐 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의 나라들의 사상, 종교, 가치관 등을 크게 변화시켰다. 동 아시아 3국 중에서 제일 발 빠르게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은 정부에 번역 담당 기관을 둘 정도로 번역에 역점을 두었다. 서양사상의 용어가 없는 동양에서 일본어로 번역되면서 새로운 개념어들이 만들어졌다. 개념어 뿐만 아니라, 번역도 일본 번역물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어를 우리말보다 더 잘 쓰는 지식인들의 영향이 크다.   

번역을 문화적 해석과정이라고 한다면, 일본문화의 필터를 거친 것을 번역하는 것은 원전을 왜곡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최근 들어서며 원어 번역이 늘어나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일본 중영본만 존재하다가 민음사에서 영한완역으로 2009년에서야 출간되었다. 중역본을 보던 독자들이 원어 완역본을 보는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번역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좋은 번역자가 많아야 한다. 발 없는 양말처럼 번역자 없는 번역을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출판사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번역가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책이 있어 번역을 맡겨놨더니, 엉망으로 해왔더라. 그래서 편집장이 일부러 사전을 펼치고 심혈을 기울여 거의 다시 번역하는 노력을 기울여 책을 내놨더니, 그 해에 번역자가 번역부분 대상을 수상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편집과 번역은 과정이 결합되어 있다. 좋은 편집자는 사전을 펴놓고 오역이나 왜곡은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오탈자를 번역의 문제로 보기도 힘들고, 번역의 오류를 편집자에게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안 되는 번역 결과물을 좋게 만드는 다수의 편집자의 노고가 번역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귀결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박상익은

좋은 번역자의 자격 요건을 외국어 이해력과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 그리고 우리말 구사 능력으로 꼽는다. 우리 말 구사 능력이 중요한 것은 국내 최고 수준의 번역가로 꼽히는 이윤기, 안정효, 김석희 등이 번역가인 동시에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유명 번역자의 경우에도 실수는 있을 수 있다. 이윤기가 번역한『장미의 이름』에서 부적절한 번역, 빠져 있는 부분 및 삭제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진짜?’라고 묻고 싶어진다. 철학박사 강유원이 이 책에 담긴 철학적의미를 강의하면서 작성한 메모에는 300여군데를 지적하고 있다. 이윤기는 이를 받아들여 260군데를 바로잡았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문제제기를 받았지만 늦장 대응으로 사회적 이슈로 키운 경우도 있다. 1999년 <르네상스 이탈리아 문화>가 오역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는 와중에 번역대상을 수상해 논란을 빗기도 했으며,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은 오역에 대한 정정이 늦어져 독자들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는 오역이라기보다는 창작에 가까운 내용 변경으로 문제가 되어 출판사가 전문번역가에게 맡긴다는 해명을 해야 했다.

 

많이 알려진 출판사들도 이런 오역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왜일까? 각각의 사건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최근 번역된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 그 단초를 한 가지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수 백 만 부가 팔리며 인기를 끌고, 국내에서는 높은 선인세로 이미 기사화되어 있는 책이라면 빠른 번역을 요구하게 된다. 하루키 팬들의 열화와 같은 독촉도 한 몫을 해서 무라까미 하루끼의 『1Q84』는 순산을 했다. 다행스럽게 번역자가 그 책을 보고 있던 중이라 빨리 번역될 수 있었고, 출판사는 오탈자 찾기 이벤트를 걸만큼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른 이유는 번역자가 받을 낮은 기대이익도 한 몫을 한다. 번역을 연구 성과로 취급하지 않는 대학의 풍토와 몇 명의 알려진 번역자 외에는 낮은 보수도 이유가 된다. 김용옥은 그의 책 『대화』에서 책을 쓰는 일이 교수 봉급보다 못한 것을 육두문자를 섞어 토로한 적이 있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낮은 보수와 높은 노동 강도는 분야를 막론하고 평균적인 상황이니 번역을 둘러싼 환경만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독자가 눈이 밝아 좋은 번역자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주고 사주기만 한다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좋은 번역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전문가 같지는 않겠지만, 아마추어인 독자들도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 표현,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오역, 거꾸로 번역한 반역 등을 알아볼 수 있는 눈 밝은 분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번역물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적 차이를 잘 해석하여 한국인의 문화적 감성으로도 잘 읽히는 책을 좋은 번역서로 보고 싶다. 직역과 의역을 두고 어떤 것이 맞는 가를 논쟁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의 독자들에게 맞는 표현을 찾아낸 번역물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김정환이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아침이슬)은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된 책이다.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연극연출가인 김정환이 번역한 이 책은 어줍잖은 번역으로 산문이 되어버린 원문을 되살렸다. 우리는 안쓰는 ;(세미콜론)만 ,(쉼표)로 바꾸고 나머지는 원전에 맞게 충실히 작업을 했다. 줄 바꿈까지도. 셰익시피어를 다른 번역으로 읽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기도 할 수 있지만, 시어와 연극대사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마치 앞에 연극무대가 펼쳐져 있고, 내가 그 연극을 본다는 상상으로 읽게 만들고 또 그렇게 읽는다면 제대로 맛을 볼 수 있다.

 

또, 유머가 살아있는 책도 좋은 번역서로 꼽고 싶다. 유머는 문화적 차이가 첨명하게 드러나 쉽게 공감을 내지 못하는데, 살아있는 번역은 그 차이도 넘어선다. 『미국에 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책과함께)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역사나 과학의 교양서를 읽으며 유머를 느낄 수 있다면 두꺼운 책이 주는 중압감이 눈 녹 듯 사라진다.

 

뉴턴에게 어떻게 그런 놀라운 발견들을 많이 할 수 있었는냐고 묻자, “그것들을 그냥 생각하면서 해냈습니다.”라고 아무 참고도 되지 않을 답을 했다고 한다. (코스모스 p.156)

 

이 문장을 읽은 사람들은 ‘그러는 니가 더 웃긴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앞문장이 뉴턴이 미적분학을 발명한 내용에서 이어지는 것이라 대가에 대한 칭찬을 예상했는데 이런 표현이 나오니 긴장이 풀리고 굉장히 즐거워진다. 과학이 주는 딱딱함에 이런 유머를 구사한 칼 세이건 뿐만 아니라 번역한 홍승수 교수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좋은 번역서의 한 요소로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도 꼽고 싶다. 어려운 책임에도 술술 읽힌다면 번역의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좋은 결과를 내놓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은 번역가의 몫이다. 뤼팽 시리즈의 번역가 성기수는 책을 내는 내내 독자와 대화하면서 글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한다. 독자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되면 수용하기도 한다. 혹자들은 그래서 이 시리즈를 세계 최고의 뤼팽전집 번역물이란 찬사를 안기기도 한다. 권일영도 역자후기에 자신의 메일을 넣고 오역부분이 있으면 연락바란다는 글을 남겨 독자들에게 믿음을 준다.

 

사실 그런데 독자들에게는 좋은 번역물보다 나쁜 번역서가 더 기억이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쩌랴. 급조되어 엉망인 책을 보는 독자들의 마음도 탄다. 마이클 잭슨 사후에 나온 『문워커』는 문장뿐 만 아니라 사진자체도 조야해서 기쁜 마음에 선택한 손을 탓해야 했다. 누가봐도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번역을 탓하기는 힘들다.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 류시화의 번역물을 두고 길담서원의 박성준 대표에게는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많은 번역물을 낸 번역자라면 독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을 기회가 더 많다. 다음은 한 도자의 이야기다.

 

번역이 총체적 난국이다. 완전히 프리스타일 번역으로 내용은 원전과 비슷하나 문장은 원본과 전혀 딴판이다. 오로지 내용만 읽을 셈이라면 술술 잘 읽히겠지만 책은 내용만으로 읽는 게 아니다. 원문에서 서너 줄로 된 문장을 번역가가 읽고 딱 한 줄로 요약해서 번역해 버리는 퀄리티. 게다가 주인공 이름, 작중 등장하는 자잘한 단어 등을 멋대로 번역한다. 『배터리』에서는 '세이하' 혹은 '세-하'라고 번역해야 할 이름을 뚝 잘라 '세하'로 번역(세-하와 세하는 엄연히 다른 이름). 『인 더 풀』에서 '미스치루'라는 단어를 '미스틸'로 번역(옳은 번역은 '미스터 칠드런' 혹은 'Mr.Children'-일본의 유명 밴드 이름)하고, ‘짐꾼’이라고 번역해야 할 단어를 일본어 그대로 읽어 ‘가방모치’라는 의미 불명의 단어로 해놓았다.

 

구글 한번 안 돌려보고 대충 번역한 다음 오타만 고쳐서 그대로 출판한다는 느낌이다. 미스치루 같은 건 그 단어 그대로 구글에 한번만 치면 첫 페이지에 미스터 칠드런 공식 홈페이지가 뜨는데....

 

 

동일한 독자가 김난주에 관해 쓴 글이다.

 

주인공 이름에서 혁명적인 오역을 범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오역이 일부러 였다는 것. 그걸 일부러 오역한 이유는 한층 더 충격적이다. 김난주씨가 일본어로 책을 읽었는데, 실수로 주인공의 이름을 잘못 읽었다. 읽다보니 자기가 잘못 읽은 그 이름이 더 마음에 들어 잘못읽은 그대로 번역했다. 졸지에 주인공의 이름이 개명되었다. (『낙하하는 저녁』)

 

또한 조금 애매하다 싶은 단어는 멋대로 번역한다. 『go』에서 ‘펀치드렁크’라는 단어를 ‘주정뱅이 아버지’로 번역하였으나 사실 펀치드렁크는 ‘복싱선수와 같이 뇌에 많은 손상을 입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증’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박상익은 그의 책에서 ‘역주’가 없거나 ‘옮긴이의 글’이 없는 경우 성의 없는 날림 번역서인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잘 못 번역된 책 찾기가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돈을 내고 책을 산 독자의 기대가 잘못된 번역으로 원작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을 생각해보면 독자의 아픈 매가 오히려 약이 아닐까 싶다.

 

한국 출판에서 번역물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베스트셀러에 외국번역물이 반을 넘는 경우도 흔하다. 그만큼 번역은 이제 중요한 일이다. 독자가 전문영역인 번역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이 독자자신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좋은 책을 만나고 싶은 열정으로 이해할 일이다. 눈 밝은 독자들이 번역을 언급한 서평은 다른 독자의 선택에 중요한 잣대가 된다. 까탈스런 독자들 덕분에 번역자에 대하여 제대로 보상이 이루어지고, 전공지식과 번역 능력, 문장 표현력을 갖춘 번역자가 많아지는 상황을 기대해본다.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09.06.23 19:33
 

책귀신 세종대왕
_ 이상배(글), 백명식(그림)/처음주니어,2009-04-

 


세종대왕, 참으로 훌륭한 조선의 왕입니다. 그리고 온달장군은 '평강공주'라는 베필의 내조를 얻어 장군이 된 고구려의 평민입니다.  그 두 사람은 살 던 시대가 다르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만납니다. 어떻게 만났을까요? 바로, 책을 통하여 만나게 됩니다.^^ 
우리아이들도 현시대에 살면서 과거에 살았던 유명한 과학자, 장군, 예술가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남긴 저서를 통해서 만날 수도 있고, 후시대 사람들이 그들에 관해 적은 책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불문하고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고 알려줍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 책은 태종의 셋째아들 막둥이 도로 불리는 때부터 시작됩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어린 왕자 도, 어느 날 맏형(양평대군)이 건네 준 책 한 권을 통해 책읽기의 맛을 들이게 됩니다. '평강일기'라는 제목의 평강공주가 남긴 책, 그 책 속에 쓰여진 바보 온달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저자의 상상으로 쓰여지긴 했지만, 양평대군이야기, 세종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세종이 왕이 된 후의 이야기, 고구려 평원왕때의 이야기도 함께 맛볼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어린 세종이 평강일기를 읽어가면서 책읽는 맛에 한발짝 한발짝 들어 가는 단계를, 이야기에 녹여서 자연스럽게 들려주고 있는 이 책은... 책맛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세종에게 더욱 친근함을, 책맛을 아직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세종처럼, 그렇게 책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알게 해줍니다.
어린 세종이 책 속 온달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가며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 보는 점, 읽다가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그 뜻을 찾아 익히고 내용을 적어 놓듯이 의미를 깨우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반복해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책읽기의 반복 또한 필요하다는 점, 읽고 난 후에는 자기 생각을 옮겨 독후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평강일기를 통해 그려지는 평강공주와 온달의 이야기에서는, 온달이 글조차 몰라 배움 자체를 어려워 할 때, 자신의 재능을 깨닫게 하고, 그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꿈을 갖게 하고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함을 알려주므로써, 책읽기는 모든 일에 기본이 됨을 알려줍니다. 또, 책맛을 들인 후에는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면 글만 알지 글을 제대로 쓸줄 모르는 글벙어리라는 말이 와닿기도 했네요. 


이 책을 읽고나면 책을 막 읽고 싶어집니다. 어떤 책이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편안한 자세로 포옥~ 빠져서 읽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모두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 책에서 만날수 있는 세종대왕과 온달장군은 책읽는 재미가 안겨주는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 written by lippie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추천도서2009.06.16 13:37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_ 닉 혼비 (지은이), 이나경 (옮긴이)/청어람미디어


그동안 닉 혼비의 책을 한번 읽어보겠다고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읽지 못하고 있던 바,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남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책에 공감을 하며, 어떤 책을 읽다가 집어던지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기에 당연히 관심이 갔는데, 더구나 그는 소설가이며, 소설가치고 위트와 재미있는 문체를 추구하는 작가로 소문이 났는데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은 내 관심 분야인 소설이라 망설이지 않고 읽게 되었다.(헉헉!)  


이 책은 <빌리버>라는 미국의 문화서평지에 2003년 9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연재한 칼럼을 엮은 책이다. 서평집이라고는 하나 읽은 책들을 통해 자신의 견해와 관점, 단상을 밝히는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어 기존의 서평집들에 비해 그 재미를 훨씬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사실! 


닉 혼비는 책머리에서부터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는데 지루한 책은 제발! 읽지 말라거나, 분명히 두껍고 지루한 책 읽으면서 잘난 척하려고 눈물나도록 들고 있는 바보짓은 하지마라고 하고, 남이 읽고 좋았다는 책을 본인이 재미없었다고 잘난 척하며 '그깟 책이 무슨, 수준이 낮구만' 따위의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고 충고 한다. 독자는 그 나름대로 공감하는 책이 따로 있다는 거다. 그 책이 자기계발서니 칙릿이니 추리소설이니 고전이니 간에.  


사실 그의 충고는 책을 읽으면서 늘 생각했던 바였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일이었다. 누군가 읽고 추천하면 무조건 읽어봐야 했다. 읽으면서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쉽게 던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또 장식을 위해 사둔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점은 작가나 독자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특히 그가 매달 주문하고 읽지 못하는 책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일일테니 말이다.(장담하건대, 그 습관을(마음에 드는 책은 일단 사고 보는) 고치면 출판사는 망해버릴 것이다!) 


책은 닉 혼비가 매달 구입하는 책과 읽은 책으로 나누어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읽은 책에 관한 본인의 단상이나 이 책을 읽으니 다른 어떤 책이 생각난다며 그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어느 작가, 책에 대해선 무한한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또 매달 구입한 책을 읽지 못하게 된 이유나 혹평을 한 책(읽다가 집어 던진)에 대해 글을 썼다가  <빌리버>편집위원들에게 소환(!) 당한 일을 쓰기도 한다. 웃기는 것은 그가 <빌리버>와 비슷한 책에 대한 언급을 하자 <빌리버> 편집자들이 편집자주로 올린 글이었다. 우리는 닉 혼비에게 매달 칼럼을 쓰도록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긴 하지만,<맥스위니>13호를 언급하라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두는 바다. 닉 혼비로선 책이 나온 후에야 편집자들의 글을 읽었을 테니 그 상황만 생각해도 재밌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닉 혼비가 『폼페이』를 쓴 로버트 해리스와 가족이며(매제란다) 그의 아들이 자폐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디킨슨을 좋아하고, 전기 소설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이언 뱅크스의 책을 읽고 울고 싶어하는 심정이나(그는 책 뒷표지의 책소개에서부터 두려움(!)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그 심정 나도 알겠다.ㅋ) 가끔은 읽지 않겠다고 멀리 꽂아둔 책장에서 우연히 떨어진(아들이 빼내어 놀다가 나둔) 책을 보며 이런 책을! 하며 새롭게 그 책을 발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이것 역시 우리도 가끔 하는 행동!^^) 또 그는 희한하게도 거의 아시아의 번역서를 읽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영문으로 펴내는 책들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샀음에도 읽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아시아의 독자로서!) 


그가 소개하는 모든 책들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책이나 눈독 들인 책들이 소개되면 은근 반가워진다. 또 그가 강추하는 책들은 얼른 읽어보고 싶어지고 그동안 망설이던 책들은 구입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독특한 형식으로 써내려간 그의 칼럼을 보니 나도 어느 달에 한번 닉 혼비처럼 구입한 책과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그의 형식대로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를 유쾌하게 해주었다.^^  곁에 두고 있다가 그가 추천한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상황을 기다려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만다 에어 워드의 『실종』기대함!^^


 


 주의:문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분들은(작가나 소설을 잘 모르거나) 썩 재미를 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신고
Posted by 리더스가이드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