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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10.20 22:01
인연
_ 피천득 지음/샘터,2002-08-24 00:00:00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30p-봄)


  봄이 오면 마음이 들뜬다. 옷차림도 날아갈듯 화사하고 가벼워지고 풍경이 다채로워진다. 기숙사에서 학교로 걸어가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개나리, 진달래 이름을 불러보고 이름 모를 연분홍빛 꽃을 보며 마음이 가득 찬다. 이들이 가고 나면 형형색색의 철쭉이 피어 늦봄의 마지막 무도회를 연다. 올해는 꼭 가겠다 한 벗꽃축제에 가지 못해 내년을 기약하며 그렇게 여름을 맞는다.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벗꽃 축제엔 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다. (58p-너무 많다)


  이 세상에는 책이 정말 많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책은 그 일부일 뿐이지만 여전히 많다. 읽고 싶은 책을 적어놓은 목록은 내가 읽어나가는 것에 비해 무서운 속도로 길어진다. 한없이 불어나는 책 목록을 나는 통제할 수가 없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의 제목을 노트에 적어나갈 때 느끼는 환희를 포기하지 못해서일까. 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책을 찾으러 간다. 너무 많다. 많아서 행복하다.


  나는 위대한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의 유사성이 너무나 없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166p-찰스 램)


 어릴 적 읽은 위인전은 참 재미있었다. 위인전 한 질을 2주만에 읽어 치울 정도로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읽고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내 미래 모습을 그려보며 즐거워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 유명한 사람이 되어 TV 프로그램에 나와 선생님 찾겠다고 했을까.
  스무살이 된 지금은 위인전, 전기는 커녕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릴적 그렸던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아직 젊지 않은가? 그치만 나는 안다.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의 길에 평범을 넘어선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어릴 적 꿈에 기대어 그 길을 선택하기에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있다. 위대한 사람들은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싫다지만 그건 변명이다. 모두가 그렇게 변명하고 있어서 암묵적인 동의가 된 것일 뿐. 누군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위인이 될 것이다. 스무 살 나는 누가 될 지 모르는 그 사람을 빛내줄 평민이 되어 줄 생각이다.


  그는 고희가 다 된 노학자이지만 때에 있어서는 젊은이보다 더 현대적이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김은 세대의 차가 아니라 늙기 전에 나를 잃음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176p-치옹)


  영원히청년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힘, 지금의 의욕, 지금의 호기심, 지금의 열정, 지금의 투지, 지금의 모든 것.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걸맞는 지혜가 생긴다지만 나는 아직 싫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두렵다. 나이가 들면 내가 나를 읽고 헤매일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섭다.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 죄 있는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칠색이 영롱한 무지개빛 거짓말일 것이다. (207p-이야기)


  아빠는 허풍이 심하다. 이야기에 풍을 얼마나 섞는지 거의 매일 아빠의 과장된 이야기를 듣는 우리집 세 여자 - 엄마, 나, 여동생 - 는 이제 적당히 걸러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아빠가 별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고 의야해 했지만 가족 모임 할 때마다 어른들끼리 뻔한 거짓말을 주고 받으셨던 것, 다른 가족들과 모였을 때 아빠들끼리 열을 올리며 거의 '누가 누가 허풍 잘치나' 대회를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무지개빛 거짓말을 즐기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보편적인 정서인걸까? 더 가까이서 살펴보면 주로 남자들이 풍을 많이 치고 과장된 자랑을 많이 하는 걸로 봐서 남자들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피천득씨도 남자였지 아마?


  미술품이나 역사적 유물은 오래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더욱 큰 문제다. 경주를 가 보고 마음 아파한 것이 어찌 나 뿐이랴. 정말 너무했다. (267p-문화재 보존)


  시멘트로 여기저기 발라놓은 석굴암이 빛의 속도로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 눈에도 그건 흉해보였다. 신라 천년 고도의 세월을 간직한 곳이라는 위용에 걸맞게 유적의 수는 많이 보존되어 있었지만 보존되어있던 상태는 어린 내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오래 남기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옛날의 숨결을 느끼러 온 곳에서 현대의 삭막하고 무자비한 시멘트 덩이를 봐야 한다니. 하려면 좀 제대로 하자. 그 시대의 건축을 공부하고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상하고 그 시대의 정신을 느끼고 복원공사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요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과거를 잊지 않고 느끼러 온사람들에게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저 김빠지는 정도를 넘어선다. 마음이 아프다.

- written by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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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10.18 18:41

명탐정의 규칙
_ 히가시노 게이고/재인,2010-04-16 00:00:00

TV보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더 많이 읽으려고 하다보니 드라마를 잘 안보는 편이었는데, 내가 책 읽느라 방에 들어와버리면 어머니 혼자 쓸쓸히 드라마를 보시다 주무시게 되어 어쩌다보니 거의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아침드라마부터 일일연속극, 월화수목, 주말 드라마까지.
그런데 웃긴건 그 뻔한 드라마의 흐름을 늙으신 어머니도 훤히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추임새는 기본이고 스토리상 비가 내려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살수차를 동원한거라 말해주지 않아도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네,라고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 또 날마다 다음회의 드라마를 기다리시고 재미있게 보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을 읽고나니 꼭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하루를 보내시는 어머니처럼, 단행본으로 나오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를 기다리고 극장판 코난 애니메이션을 해마다 기다리고 TV판은 물론 단행본 특별판도 재밌게 읽는 조카녀석들이 생각난다. 너무 많이 읽어서 다 비슷비슷해보이는 것들이 재미없을만도한데 꾸준히 읽고 있다. 아, 물론 나 역시 그 지경에 이르렀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행본은 내가 다 소장하고 있으니.
그래서일까, 명탐정의 규칙을 읽는동안 특히 명탐정 코난의 많은 장면이 떠올랐고 자꾸만 키득거리게 되는 것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나처럼 키득거리며 가볍게 읽거나 진지하지 않은 것 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장난에 화내거나, 혹은 이 어이없는 웃음속에 담겨있는 그만의 풍자와 비판에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거나 하겠지. 명탐정의 규칙은 그처럼 어느 한쪽면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책이다. '본격 추리의 자학이 재미의 영역에 도달했다'라는 기타무라 가오루 작가의 표현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의 본질을 짧은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해내다니.

언젠가 한번쯤은 읽어봤던 추리소설의 내용들과 추리소설, 특히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일인칭 주인공이, 그것도 경찰청의 경감이라거나 하는 인물이 '내가 범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까지 빠짐없이 패러디해서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패러디 정신과 블랙 유머로 가득한 초현실 자학 미스터리'라는 건 정말 과장 문구가 아니었어.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최근작품이 아니라 이미 십여년전에 쓰여진 것이라는 걸 알고 놀라버렸다. 본격 추리의 자학이 재미의 영역에 도달했을뿐만 아니라 블랙유머 안에 담겨있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 지금까지도 무뎌지지 않았기에.



- written by 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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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10.05 23:49

하루에 돌아보는 우리 궁궐
_ 손용해, 허균, 김효중, 김보영/주니어김영사,2010-06-10 00:00:00

어느덧 초등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는 딸아이는 체험학습이니 현장학습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진(?) 요즘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도 딸아이도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것같다. 현장학습체험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딸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조금이라도 많이 그리고 늦지않게 보여주어 나중에라도 '미리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예체능 관련한 다양한 놀이와 공연 관람을 비롯하여 미술관, 과학관은 물론 역사와 관련한 유적지며 궁궐, 박물관까지....돌이켜보면 참 두서없이 다녔던 것같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리니 눈으로 보고 듣는 감각적인 자극(?)에 의존하였던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져 미리 알고 가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체험을 떠나는 차 안에서 '에구, 미리 관련 책이라도 읽어보고 정보라도 좀 찾아보고 올 것을....'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고는 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앞선 의욕에 이끌려온 딸아이는 학습적인 체험보다는 엄마와 함께 온 나들이라고 생각하는지 해설사나 안내자의 설명에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뒤에서 쫓아가는 엄마들 틈에서 내 속은 얼마나 타들어가는지..... 간간이 정말 열성적으로 듣고 또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을 쏟아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이제야 솔직히 털어놓건대, 엄마의 의욕에 앞서 부지런함이 좀더 앞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체험해도 매번 아이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사전에 알고 가면 좀더 흥미로웠을텐데... 아이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무엇보다 체험학습을 위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해서 가보고픈 생각이 간절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하루에 돌아본다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 책이 반갑게 다가온다.

아이와 함께 이미 여러 차례 다녀온 경복궁과 덕수궁을 비롯해, 결혼 전에 몇 번 다녀온 추억만 갖고 있는 창경궁과 창덕궁, 가봐야지 마음만 먹고 여태껏 가보지 못한 운현궁까지 차근차근 읽다보니 그동안 체험학습 다니며 해설사로부터 들었던 알찬 정보들에 몰랐던 것까지 모조리 들어있다. 

조선의 궁궐이 서울의 4대문 안에 모여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때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비교적 직접적인 체험이 어렵지 않겠지만, 그보다 먼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그야말로 그림에 떡!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뿐만 아니라 직접 방문하여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알찬 정보가 담겨있는 체험학습도서들이 풍부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 역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궁궐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를 비롯하여 역사적인 이야기까지 알차게 들려주고 있어 그저 오래된 역사의 산물로만 여기던 궁궐을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시원한 그림이, 굳이 현장에 가는 수고도 덜어주는 듯하여 더욱 이쁜 책이다.


- written by 재윤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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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9.26 18:45
제리
_ 김혜나/민음사,2010-06-11 00:00:00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가능하면 찾아서 읽은 문학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이다. 책을 받아들고 표지 등을 보면서 처음 느낀 점은 얇다는 것과 소녀 취향의 그림이란 것이다. 바로 읽을 수도 있었는데 뒤쪽 심사평을 읽으면서‘치명적인 성애묘사’란 표현에 문학상 수상작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했겠는가 하고 내려 보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몇 쪽을 읽지 않아서 바뀌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한 편의 포르노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문학을 통해 이런 경험을 했다.

사실 이런 표현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마광수 교수나 장정일의 작품 속에서 이미 표현된 적이 있다. 이 작품들이 세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시절에 이런 묘사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정도는 아니었다. 몰래 보고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뒤섞어 표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아예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다. 대단한 변화다. 이런 변화가 인정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청춘들의 삶과 방황이 현실의 한 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리는 노래방 도우미로 온 남자의 이름이다. 그가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우연히 지명한 화자 나의 행동과 심리로 그려진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가 열심히 놀려고 할 때 오히려 즐겁기보다 어색하고 그 속에 몰입하지 못한다. 술로 시간을 때우고, 시간이 끝난 후 다른 파트너를 부르자는 동료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를 불러낸 것은 바로 이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들어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와의 시간 속에서 즐겁게 놀지 못하지만 그녀가 느낀 감정은 솔직한 성욕이었고, 이 감정은 꿈도 희망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현실의 그녀에게 하나의 도피처가 된다.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20대는 도덕적 시각에서 보면 음탕하고 반도덕적이다. 술과 섹스와 일탈을 즐기려는 마음만 가득하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다. 미주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많은 20대의 현실이다. 추상적인 꿈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이들을 보면서 대학 도서관과 영어회화학원을 오가면 스펙을 쌓고 있는 대학생을 생각하면 완전히 딴 세상 아이들 같다. 이런 양극화는 현실 속에서 이미 벌어질 만큼 벌어졌고,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화자가 자신과 선후배의 미래를 생각할 때 현실의 높은 벽과 넓은 틈새는 결코 낮아지거나 좁아지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한다.

현실 속 청년들은 이미 불공평한 경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외모 차이, 부모의 재력 차이, 학력 차이 등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의 이런 차이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그 때문에 제리가 “그런데 내가 진짜로 무서운 건, 죽어서도 이대로일까 봐, 죽어서까지도 늘 이따위 신세일까 봐, 또다시 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214쪽)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그들에게 술과 섹스에 대한 갈증과 탐욕은 일시적이면서도 충동적일 수밖에 없다.

화자의 삶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사회에서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학창시절엔 날라리란 이유 때문에 선생에게 성희롱 당하고, 이 사실을 믿어주기보단 그녀를 탓하는 현실을 만난다. 졸업 후 갈 대학이 없어 2년제 야간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이것은 단지 다른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외로움 때문에 술과 섹스를 제외하면 아무런 감정 교류도 없는 강을 만나고, 가족과의 단절은 타인과의 관계보다 못하다. 이런 그녀의 일탈과 방황 속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조그마한 깨달음과 감정은 이 시대 20대의 조그마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골적인 성교 묘사 너머에 있는 그들의 삶은 조용히 가슴 한 곳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 written by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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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9.20 03:39

 

 

현대사의 질곡을 거칠게나마 훑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깊은 울림 같은 그런 것, 책을 덮고 나서 멍해지는 그런 느낌이 없다. 뭔지 모르겠지만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소설을 지식으로 접근한 느낌이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책을 덮고 났을 때 혹은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강남이 만들어질 때 이랬구나 내지는 사람이 약삭빠르게 움직여야 잘 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보슬비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간 조그만 이 땅에서 약자는 더욱 약하게 강자는 더욱 강하게 만든 자본의 힘이 권력과 맞물려 급기야는 부동산으로 알을 낳듯 부를 낳아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고자 경쟁사회로 만들어져버린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소설의 배경이라고 하기에 꿈처럼 허망하다. - 릴리

 

황석영 선생은, 자유당 때부터 있어 온 정치 깡패 김진의 이야기를,  꽃뱀이자 복부인의 박선녀의 이야기를, 기회주의자 심남수의 이야기를, 또한 빠질 수 없는 조폭 홍양태의 이야기를, 그리고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임수정의 이야기를 깍아지른 듯 배치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대성 백화점'이란 성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stella09

 

당시 강남 개발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병폐로 오늘날까지도 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의 바람의 근본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 근대사의 정치적, 시대적 흐름을 함께 알 수 있는 굵직한 이야기이다.  - 재윤맘

 

'욕망'이란 것이 어찌 붙들려만 있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다른 먹이감을 향해 내달리려는 것이 아닐런지. 그래서 그들은 한낱 꿈속에 파묻혀버리게 된다. 어이없이 허물어진 백화점 안에 깔린 박선녀처럼, 혹은 간신히 백화점에서 탈출해서 무너져버린 백화점을 바라보기만했던 박진 회장처럼 욕망이 도망쳐버린 그곳은 허무한 공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 poison

 

대단하다고 연신 감탄을 함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좀 어렵고 지루하게 읽혔다. 이야기 자체는 '지루함'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지 않았을까? 긴박감과 속도감이 있는 전개였는데, 자본주의니 근현대사니 이런 것에 눈이 어두운 무지몽매한 독자인 까닭에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지 못 했던 것 같다. - 막내동생

 

황석영은 단순한 사건 이상의 의미를 담은 삼풍백화점 붕괴를 비유하여 그 사건의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마담 박선녀의 삶을 통해 부동산 투기와 주먹세계의 권력의 흐름이 어떻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과 유착이 되고 그 각각의 권력이 어떻게 맞물리며 우리의 현대사를 짓뭉개버렸는지, 현재 자본의 축적과 강남의 소수특권계급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숨가쁘게 진행되면서도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 치카

 

책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설속에 나열된 부동산 투기자들에게 분노의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일게다. - 술패랭이

 

박선녀와 같이 붕괴된 현장에 매몰된 임정아는 사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희망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매몰된 현장의 생존자라는 의미에서 희망의 빛을 본 것이다. 현실과 미래엔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지만 박선녀의 호의를 거절하는 당찬 모습에선 굳센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그녀 집안의 과거를 통해 드러나는 일반 민중의 삶은 위정자들의 거짓과 위선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 부모를 통해 드러나는 도시빈민의 삶은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 행인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강남의 역사를 보는 듯했고 한국의 역사를 새로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 황석영님의 역시나 대단하신 것 같다. 지루할 것 같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할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 루사

 

개발 시대의 욕망과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과 인물들이 맺는 관계를 보면서 씁쓸했고 ‘돈의 냄새는 구리다’는 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럼에도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 마음은 뭘까? - 아폴론

 

사실 그동안 스쳐지나가듯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자세히 드러나면서 솔직히 그저 소설이라고 말하기에 우리의 근대사가 참 아프더군요. 그냥 정말 이것은 꿈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 보슬비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그들 모두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허탈함을 느낀다. 구운몽과 같은 환몽설화는 그리 낯선 구조는 아니지만, 강남으로 상징되는 개발신화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이야기라는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새로운 감흥을 준다. - 노란가방

 

정부수립 때부터 삼풍백화점 붕괴 때까지 남한의 개발주의가 가져 온 인간의 온갖 욕망과 그 파멸을 파헤쳐 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에 부역하던 권력층들이 해방 뒤 새로운 변신을 꾀하여 고위 공무원 출신과 화류계 여성과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땅값을 조장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모습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 littlechri

 

결코 모든 것들이 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백화점을 보면서 그저 꿈이기를 바라지만 이것은 누구든 뼈져리게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꾸었을 부와 명예를 가지는 꿈들, 역사와 함께 쌓여온 보통 사람들의 삶들,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삶도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네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상처까지 볼 수 있다. - 학진사랑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강남 땅투기꾼과 친일파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다. 과거 청산 문제가 제기 될 때마다 친일파들의 논리는 그 시대에는 어쩔수 없었다, 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한 것이다라는 것이 그들의 주된 항변이다. 게다가 부정·부패로 이룬 그들의 부동산 투기역시 그것도 능력이다라며 교묘히 물타기를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전체적으로 풍긴다. 어찌보면 현 수구기득권의 성공기를 다룬듯하다고나 할까? - 호의은행

 

이책을 읽고 나서는 웬지 격변기 70,80년대 역사소설을 한편 만난 기분이다. 각자 그네들의 삶을 통해 역사소설을 읽고 우리시대의 아팠던 파란만장한 삶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기분이었다. 단지, 너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을 하나하나 파헤치다보니, 어느 누구의 삶도 아닌 어중간한 글이 되지 않았나 싶은 기분이 든다. 물론, 의도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나는 좀 불편했다. - 빨강앙마

 

작가는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그저 객관적 서술로 인물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할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소설은 더 현실적이다. 티를 내지 않지만 대부분 돈에 대한, 부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부동산, 펀드, 주식, 투자에 골몰하는 현실 속 우리의 모습.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은 특별할 것도 없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자화상이었다. - jjolpcc

 

제목마냥, 이런 지저분한 우리들의 과거사들이 다 꿈이었다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삼풍 백화점 자리에 화려하게 서 있는 새 건물을, 그 근방에 장성마냥 늘어선 부촌 아파트들을 생각하면, 우리네는 아직도 그 꿈에서 못 깨어나고 계속 허우적 대는 게 아닌가 싶다 -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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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9.06 18:31

진화신화
_ 김보영 /행복한책읽기,2010-06-05 00:00:00

김보영을 처음 만난 것은 <누군가를 만났어>란 작품집을 통해서였다. 당시 한국 sf문학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던 나에게 이 작품집은 큰 충격을 주었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수준 높은 구성과 전개를 펼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작품집에 이름을 올린 세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거나 앤솔로지 중심의 단편만 나오면서 아쉬움을 주었다. 그러다가 특히 많은 관심을 두었던 배명훈의 장편이 나왔고, 이번엔 김보영의 단편들이 두 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두 권으로 묶인 책 중에서 첫 권은 앞의 몇 편을 제외하면 이미 <누군가를 만났어>에 실린 작품이다. 아직 읽지 못한 초기작 몇 편이 나를 유혹하는데 차후 읽을 예정이다. 이번 중단편선은 sf와 판타지의 교차점에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중에서 하드sf가 준 재미가 무척 강렬했던 것을 생각하면 좀 의외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녀만의 특성들이 묻어나고,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게 그 상황과 설정에 집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들은 앞의 세 작품이다. <진화신화>는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 제6대 태조대왕 실록에서 발췌한 사실 몇 개에서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은 작가의 상상력을 거치면서 진화한다. 이 진화는 종의 진화로 이어지면서 가속화되고, 민초의 아픔과 지배자의 탐욕이 맞물리면서 역사는 새로운 길로 들어간다. <땅 밑에>는 하강자라는 존재를 통해 지하 탐험이 이어지고, 그 깊고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도전과 탐험은 긴장감을 불러온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작가는 하강자를 산악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데 개인적으로 이 단편을 읽으면서 동굴탐험가들이 연상되었다.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는 이전에 읽은 해외걸작 sf단편선 중 한 편이 연상된다. 그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에선 제목인 문장을 통해 상상력이 펼쳐지고, 한 특수기면증 환자의 편지를 통해 그 세계를 그려낸다. 밤도 없고, 잠도 없는 세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병인 그 행성에서 2만 5천 광년을 넘어온 문장이 자신의 병을 새롭게 돌아보고, 다른 문화와 환경이 빚어내는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몽중몽>은 <스크립터>와 더불어 가장 어렵게 읽었다. 이 두 작품은 인간, 존재, 추상적 관념 등이 뒤섞여 있는데 충분히 집중하지 못해서인지 그 재미를 완전하게 누리지 못했다. 꿈이 이어지고, 깨고,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나 게임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존재를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어려움을 겪었다.

<거울애>는 거울의 이미지를 사람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한 소녀 소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섬뜩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나의 감정이 만약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0과 1사이>는 누구나 겪게 되는 학창시절을 둘러싼 이야기인데 현실에 대한 풍자적 모습이 강하게 담겨 있다. 양자역학과 시간여행기를 통해 그려지는 미래 속의 현실은 현실의 그림자이자 가능성이 사라진 동시에 열린 시간이다. 하지만 어릴 때 경험했던 일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마지막 늑대>는 먼 미래 이야기다. 용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을 애완동물처럼 키운다. 이 애완동물 중 한 명이 늑대로 불리는 저항세력을 찾아오는 과정과 이유를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 소녀의 성장을 다루면서 미래의 변화를 담은 장편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노인과 소년>은 한편의 우화를 읽는 느낌을 준다. 자기 확신과 강력한 의지와 뚜렷한 목적의식이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 written by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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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8.05 11:21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 오리엔트 특급 살인
_ 애거서 크리스티 (지은이) | 신영희 (옮긴이) /황금가지,2002-05-15 00:00:00

  책에 꽂혀서 산지 어언 반년이 된 저는 학교 선택과목 수강신청을 하는데 문학과 관련된 수업이 있길래 덜컥 신청했습니다. 저는 몰랐었지만 꽤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하더군요. (그럴 거 같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운이 좋게도 저는 무난하게 수강신청을 마쳤고 이번 3분기에는 과제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가 네 번정도 있게 되었습니다. 서평 쓴다는 생각으로 과제를 해치울 수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다른 책들도 많이 언급을 하셔서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진다는 것도 엄청난 메리트라고 할 수 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었습니다. 셜록홈즈 시리즈는 다 읽어보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에 냉큼 집어들었죠. 마침 추석 연휴겠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역시 반전이죠. 반전이 없는 추리소설은 좀 맹맹하잖아요. 이 소설은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주 신선한 반전이 들어있었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있었던 반전도 정말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 소설이랑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르네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범인이 외부인일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사람이 범인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 죽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죽은 것 처럼 보이던 사람이 범인이었죠.(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범인이 12명 중 누구라고는 얘기 안했으니까 한번 추측해가면서 읽어보세요ㅋㅋㅋ)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절대 범인이 외부인일 수 없는 상황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중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진거에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패배를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


  제가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이것밖에 없어서 자꾸 언급하게 되는데요. 두 작품 모두 법이 처리하지 못한 범법자를 일반인이 단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게 유사점의 출발인 것 같네요. 조금 다른 점을 들자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섬뜩한 느낌을 주죠. 아이들이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오싹하게 다가올 수 있을 줄이야.... 그에 반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슬프고 안타까운 분위기가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짙어집니다. 너무너무 슬퍼서 눈물을 펑펑 흘릴만큼 자극적인 감정이 아니라 가슴에서 몽글몽글하게 뭔가가  조금씩 솟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가아끔 '아니, 어떻게 이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이런 명제를 이끌어낼 수 있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푸아로의 명석한 두뇌덕이라고 하죠!(ㅎㅎ) 이 책을 소개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어요. 역시 고전은 고전인가 봅니다.실제 살인사건을 기초로 한 소설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완벽하게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감정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건가 했지만 알고보니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만 깔고 또 다른 살인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더군요. 단순히 있었던 일을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건을 꾸며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이야기가 흡인력이 워낙 강해서 제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감각적으로 극단을 달리는 추리소설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이럴 때 일수록 흑백영화같은 고전 추리소설을 맛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시리즈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



- written by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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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7.19 21:01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_ 마종기/비채,2010-05-11 00:00:00

시인 마종기는 나에게 낯설다. 학창시절 자주 만난 몇몇 시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인들이 낯설기에 이상한 것은 아니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그의 시집을 몇 번 마주했을지 모르지만 한 번도 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것은 그의 시가 나쁘거나 지명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시에 대한 나의 앎이 부족하고, 한참 시집에 관심을 두었을 당시 미국에 거주했기에 대중적인 지면을 통해 만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작 에세이란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를 짓는 것과 에세이가 연결된 단어인데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을 펴고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책의 구성과 관계있다. 바로 자신의 시 50편을 먼저 보여주고, 그 시와 관련된 사연이나 의도를 에세이처럼 쓴 것이다. 이 구성을 처음 마주할 때 시보다 에세이에 먼저 눈길이 갔다. 쉽게 이해하지도 가슴으로 파고들지도 못한 시들이 그의 해설로 분명해진 것이다. 거기에 시와 관련된 수많은 사연들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여섯 꼭지로 나누고, 시간의 흐름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시를 읽다보면 그의 삶의 굴곡을 만나게 된다. 잘 다듬어진 시어 속에 숨겨진 삶은 결코 밝지만도 않고, 어둠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어느 곳에선 희망과 즐거움이 넘쳐난다. 현실을 담아낸 것도 보이고, 사연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한다. 시를 읽고,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시를 읽으면서 시에 젖어든다. 이렇게 젖은 마음은 날선 이성으로 가를 수 없다. 그런데 자꾸만 이성으로 시를 풀려고 하니 시의 재미와 즐거움이 묻혀버린다. 아쉽고 불쌍하고 아둔하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은 가슴 깊은 곳이 아려오거나 벅찬 감성이 밀려왔다. 특히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들에 대한 사연은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의 삶과 깊은 관찰과 애정이 만들어낸 시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캄보디아 여행에서 만난 무뚝뚝한 남자의 행동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앞에서 시인이 노래한 사랑이 남과 어울리지 못했던 남자의 행동 속에 그대로 옮겨지고 있었다. 비록 그 모양이나 방법이 조금 다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시를 읽을 때면 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소화할 것인지 늘 고민한다. 이런 고민이 이번엔 거의 없다. 시인이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감상과 시인의 설명이 다른 경우가 빈번하다. 나의 내공이 얕고,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처음보다 뒤로 가면서 좀더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의 다양한 실험과 시어들이 주변 친구들도 쉽고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변한 탓이다. 시에 대해 잘 몰라 어떤 것이 좋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미 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쉽게 읽히고 드러나는 의미들이 그 자유를 품어내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50편의 시도 좋지만 시집 한 권을 읽고 싶어진다. 주례사 평 같은 많은 시인들의 극찬은 이런 마음을 더욱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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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7.19 20:57
파랑이 진다
_ 미야모토 테루 (지은이) | 서혜영 (옮긴이)/작가정신,2010-01-28 00:00:00

1982년, 일본에서 발간된 미야모토 테루의 청춘소설 <파랑이 진다>는 마치 빛바랜 사진 같은 소설이다. 누렇게 변한 사진 속에서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종종 아려한 향수와 미약하나마 가슴 저린 통증을 수반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나는 청춘일까?’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답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이른 봄날, 주인공 료헤이는 오사카 교외의 신설 사립대학교의 입학 접수창구 앞에서 입학신청을 놓고 망설인다. 그때 빨간색 코트를 입고 나타난 미모의 나쓰코를 만난다. 나쓰코에게 첫눈에 반한 료헤이는 그녀가 입학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입학을 결정한다. 이렇게 시작된 료헤이의 대학 4년간의 생활은 사랑, 이별, 우정, 죽음으로 무료한 듯 촘촘하게 이어진다.




주인공의 4년간의 대학생활을 우울한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낸 <파랑이 진다>는 2가지의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68년 일본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인 전공투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시대적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대학 테니스부 활동을 소설의 주요 스토리 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시절, 이처럼 주인공은 동시대에 살짝 비껴간 대학 생활을 보낸다. 료헤이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가네코는 테니스부 주장으로서 테니스부의 발전에만 매달리고, 부유한 집안의 딸인 나쓰코는 오직 대학생활을 즐기는 일에만 매달린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테니스에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은 안자이는 집안 내력으로 이어져 온 정신병을 이기지 못해 자살, 곧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왕도가 아닌 패도의 방법을 써서라도 테니스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구다니와의 우정. 싱어송라이터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야쿠자 여자와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걸리버의 겁 없는 사랑과 무모한 용기. 이렇듯 등장인물 모두 전공투 시절의 그 치열함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나쓰코를 향한 길고 긴 대학 4년간의 짝사랑과 테니스부 친구들과의 우정은 료헤이의 청춘을 우리의 청춘과 포개어지게 만든다. 나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류헤이와 그의 친구들은 꿈과 희망을 쫓기보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래를 애써 회피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류헤이의 말처럼 대학 4년간의 생활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 내던져지기 전에,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휴가 기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의 청춘은 소설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지 않는다.


엇갈리는 시선 속에서 빚어지는 사랑의 아픔과 이별, 그리고 친구의 자살 등은 미래의 꿈과 희망마저 빛바래게 만들 뿐이다. 이념을 중요시하는 40년 전의 그때든, 경제 불황 속에서 취업만이 대학생활의 목표가 되는 지금이든 간에, 어떤 시대고 갓 20살을 넘은 이 유약한 청춘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 때문에 청춘은 언제나 ‘실패’를 담보로 하고 있다. 실상 그들의 청춘은 인생의 휴가기간이 아닌, 실패에 덤덤해지는 법을 배우는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것이다.


무승부가 없는 테니스 경기처럼 이 사회는 오직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만을 가린다. 그 냉정하고 잔혹한 잣대를 극렬하게 부정하고 싶어도,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처럼 우리는 참고 견디는 길을 선택한다. 사실 우리는 안다. 그 인내의 끝에 성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써 그 잔혹한 삶의 진실을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류헤이를 통해 지나간 청춘을 뒤돌아보았다.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도 이리 가슴 저리게 떠오르는 것은 잔혹하리만치 거듭된 실패의 기억이 선명해서다. 언제나 열에 들떠있던 청춘을 오래전에 떠나보냈것만, 지금의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실패하거나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설사 아직 마음만은 청춘이라며 꿈을 좇아가고 있더라도 그것 역시 실패라는 한 챕터로 막을 내릴 것이다. 대신 우리가 꼭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실패와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에 다시 서는 것뿐이다.


<파랑이 진다>는 청춘의 우울한 실패의 기억을 적어내린 사적 리얼리즘 소설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이 소설을 통해 청춘은 현실에 치여 청춘의 그 푸른색을 잃어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30년 전에 써진 작가의 생각에 이만치 공감하는 것은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의 영향도 크겠지만 한편으론, 잔혹한 청춘의 시기를 지금도 보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에서 기인한다. 아직 나는 지나간 것이 청춘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나보다.


낡고 좁은 중국식당의 다락방에서 류헤이의 친구 걸리버는 꿈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를 부유하듯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인간낙타’로 상징해 노래한다. 걸리버의 노래가 진짜 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지금의 내 모습이 제발 인간낙타가 아니길, 그 짙고 푸른 색깔은 바래지었을지언정 청춘의 유예기간을 다 소진한 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청춘이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것임을. 자조 섞인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번져갔다. 


희미해진 파랑색 위에 이제 나는 무슨 색깔을 덧칠해야 할까. 파랑처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삶의 빛깔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 있으면서도 발을 내딛기가 망설여진다.



- written by 빨강머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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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7.19 02:06
은교
_ 박범신 (지은이)/문학동네,2010-04-06 00:00:00

네가 <은교>를 알아? 

종이로 만든 책이 아직도 건재한가 보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작가 박범신 선생께서 언제부턴가 당신의 불로그에 '살인 당나귀'란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신 것을. 나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을 뿐 이게 뭐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한다한다는 작가들이 그렇듯 일단 자기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그것을 책으로 내는 것이 보편화되어가고 있으니 이 작품도 곧 책으로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꼭 봐야한다면 책으로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연재물을 꼼꼼히 챙겨 볼만큼 부지런 하지도 않으며 컴퓨터 모니터로 글을 읽는 것도 그다지 편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나 같은 독자를 위해서라도 종이로 만든 책은 언제나 건재해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원래의 제목 '살인 당나귀'가 아닌 <은교>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난 예전의 제목 보다 지금의 제목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게 되었다.  


솔직히 박범신 작가는(더 정확히 말하면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나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적잖이 많이 들어왔던 이름이지만 여간해서 선생의 작품은 나의 손에 들려지기를 한사코 거부해 왔었다. 왜 그랬을까? 건방지게도 사춘기 그 어린 마음에 선생은 그냥 사랑 이야기나 쓰는 통속 작가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 시절 문학 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나도 한때는 글 써서 돈 버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지망생이라면 문학을 대하는 편견없이 진지하게 남의 작품을 대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은가? 난 그래서 지금까지 그 죄를 속하느라 작가가 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한때 동문수학했던 사람들을 모처럼 만났다. 그때는 내가 <은교>를 읽고 있었던 중이라 입이 간질거려 도저히 이것을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야, 늬들 <은교> 꼭 읽어라. 그거 읽으면 우리 싸부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오욕칠정을 어떻게 확장 발전시켜 나가는지 알 수 있다. 그러자 같이 동문 중의 하나가 거 내용이 뭡니까? 한다. 노인이 소녀를 사랑하는 내용이다. 그러자 그는 콧방귀끼듯 그런 사람 파고다 공원가면 많습니다. 그러면서 냉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무식한 넘. 탑골 공원이지 파고다 공원이 뭐냐? 그래. 넌 그러고 살다가 죽어라. 니가 <은교>를 알아?' 좀 아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세상을 달관한 건지 아니면 열등감과 우월감을 교차시키는 건지 매사 아는 척,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하는 주의라 만나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모름지기 작가가 될 사람이라면 사회 현상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말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진지하게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문학에 대해 말했으니 말이다. 그래놓고 작가가 되겠다니 혀가 절로 차졌다.(참고로 그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단다.)  


그런데 돌아켜 보면 그나 나나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도 <은교>를 몰랐을 때 그 보다 나은 태도를 보였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솔직히 이 작품의 프롤로그를 읽을 때까지도 탑골 공원의 어느 변태 노인에 관한 연상을 쉬 지워버리지 못했으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것 보단 인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자세가 더 안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사랑 그 야성과 이성에 관하여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 작가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거였다. 즉 이적요 시인의 또 다른 분신이 결국 서지우 작가라는 것이다. 이적요 시인에게도 서지우 같은 동물적 본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지우를 향한 불타는 증오는 기실 자신을 향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커져갔고 결국 파멸로 까지 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적요 시인이 은교에게 보이는 태도나 행동은 이성적이고 문화적인 측면(페미니즘적인 측면까지도 포함한)까지 포용하고 있는 반면, 서지우가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동물적이며 권위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사람 하나에 다 들어있을진대 그것을 인정하고 융합하고 화해시키기 보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두 개의 측면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이렇게 대립하고 융화하면서 발전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적요는 왜 자신 안의 동물적 본능을 죽여 가면서까지 은교를 사랑했던 걸까?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가 인용했던 대로, 사랑은 나이를 먹지 않으며(파스칼) 분별없는 광기(셰익스피어)일 뿐인가?


이적요 VS 서지우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사랑의 방식이 서지우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서지우가 이적요의 적대자로서 이적요와 대립하면 대립할수록 더 옳게 증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서지우는 이적요를 힘도 없으면서 음욕으로만 가득찬 노인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자신의 당위를 위해 은교에게 설득하려 하려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은교의 눈엔 오히려 이적요가 더 옳고 건강하며 그에 비해 서지우가 오히려 변태적이며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남자에 대한 평가는 같은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하는 것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지우는 은교의 평가를 무효화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다 덫에 걸리고 만다. 또한 서지우가 결정적인 잘못은 인간의 정욕과 사랑을 한 가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육체가 노화되면 정력도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사랑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깨닫기엔 서지우는 아직도 미숙했다.  노인에게 정욕이 없을 거라는 건 이 이야기의 방식으로 보자면 덮어 씌우기의 원죄일 뿐이다. 서지우도 그렇게 죽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이적요처럼 노인이 될 것인데 그땐 자신을 어떤 식으로 증명할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랑에 대한 황금률 중 하나는 내 이웃을 내 몸고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거기엔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 전제가 되지 않으면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은 도통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이적요 노인은 피그말리온의 원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고 그 조각상과 실제 사랑을 나누다가 죽어버리고만 피그말리온. 그것이 오늘 날 교육 이론이나 정신분석학 이론에 적용이 되곤 하지만 그 보단 이 사랑의 공식을 정의할 때 쓰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은교는 모든 사람이 다 사랑할 수 있는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그늘진 평범한 아이로 보인다. 다만 그녀가 가진 특수한 무엇이 이적요의 뇌관을 건드렸을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 사랑한 건 은교 자신이라기 보단 은교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더 사랑한 것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지 않은가? 과학적으로 보자면 짧게는 3개월에서 길어야 6개월을 넘지 못한다는데(이런 정의는 또 얼마나 삭막한가?) 그것의 유무는 대상 그 자체에 있기 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콩깍지에 있고 보면 말이다. 또한 콩깍지 하나의 무게는 과학적으로 얼마나 나갈까?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무한대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얼마나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고 얼마나 큰 사람으로 만드는가?  


그런데 그런 말도 있다. 정말 너무 사랑하면 대상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 즉 말하자면 이적요가 은교를 갖지 않은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랬을 때 은교는 비로소 여자가 되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보호해 줬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내고 끌어 당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서지우에 의해 짓밟혔다. 내가 가진 꽃이 꺾여지고 짓밟혔다면 누군들 분노하지 않고 복수하고 싶지 않을까? 더구나 이적요도 남자일진데 말이다. 여자 하나로 인해 어제까지 아군이 오늘은 적군이 되어 싸우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은교가 없었더라면 이적요와 서지우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알 속에서 잘 살았겠지? 결국 인간의 평화는 어떤 상황 또 누군가에 의해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메멘토 모리, 소멸 또는 불멸            


가끔은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다. 보통은 사랑 때문에 살 생각을 하지 죽을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사랑하면서 티격태격하는 것도 다 살아있는 증거고 사랑하며 살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죽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불행한 일이지만 드물게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말이다. 이적요가 서지우를 죽일려고 작심했을 때 그는 저 말을 기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서지우를 죽이고 자신이 어떻게 될지? 은교는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실행했고 서지우는 죽었다. 물론 나중에 드러난 건 꼭 이적요가 서지우를 죽인 건 아니지만 결국 그의 증오가 서지우를 죽게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자신도 죽어갔다. 결국 죽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자신의 뜻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서지우의 죽음은 이적요의 육체성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육체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소멸되지만 그의 사랑과 원죄는 불멸로 남은 것이다. 때로 사랑은 사람의 영혼으로 하여금 생기를 주지만 죄책감이 그를 사로잡으면 사랑이 옆에 있어도 그것이 구원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하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적요는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했다는 것일 것이다. 예술가로서 그만한 사랑을 했다면 글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끝내 울어버린 소설 '은교'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책을 읽다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내내 작가가 인간의 오욕칠정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그것만을 내심 열심히 쫓다 결국 한방  맞았다. 서지우는 자기 눈에 서린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사고로 죽었지만, 나는 죽어가는 이적요가 은교를 그리워 하는 그 장면에서 시야가 흐려져 계속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건 나에겐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나의 독서란 무지한 지성을 깨우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읽어왔을 뿐인데 그래서 책이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것에 쉬 동의하지 못했는데 그런 생각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던 책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선생의 자작시로 보이는 '빈들'이란 시를 대했을 때다. 


사랑을 믿지 않으면 누가 아침 이슬에게 경배하겠는가


고꾸라지고 베이고 허물어져도 청노루 눈빛


그 아침빛이 너를 통과해와 세계의 구석방


내 안에 꽃초롱으로 둥지를 튼다 새는 날마다


저녁으로 떠나가고 나는 아직 모른다


저기 자갈투성이 해안선 끝나는 곳에


어떤 아우성들이 또 물레를 돌리고 앉아 있는지


-시집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중에서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난 갑자기 오늘 날 왜 변태 노인이 그렇게도 문제가 되는 걸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몸은 늙어가는데 그에 따라 정신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은 불균형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사랑의 능력을 섹스의 능력과 동일시에서 비록 몸은 늙었지만 정력은 조금도 소진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 하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거라고. 그렇다면 이 세상에 재대로된 사랑은 없거나 사랑은 다 변태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고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고 성숙한 사랑인지 그것을 말하려 했던 적이 있었는가? 플라토닉. 사랑은 성교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적요는 말해주는 듯도 하다. 문제는 사랑을 허리 아랫쪽으로만 몰고 갔던 이 사회가 더 변태적인 것이 아닌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 은교       


책의 말미를 향할수록 내가 만약 Q 변호사였다면 과연 은교에게 이적요의 노트를 읽어 보라고 허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첫번 째 드는 생각은 나는 은교가 그 노트를 읽지 않게되길 바랬다. 왜냐하면 은교가 이적요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다른 사랑을 못하고 평생 갇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지만 우리 시대 사랑이란 다 고만고만한 물물교환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발화시킨 사랑이 어디 흔하냐 말이다. 나를 위해 그가 그렇게 해 줬다면 어찌 다른 상대와의 사랑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은교는 그 한 사랑만 보기엔 너무 젊다. 필시 그 노트는 은교에겐 판도라의 상자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 나중에 드는 생각은 우리의 세대가 사랑을 믿을 수 있는 세대라고 보는가? 하지만 은교만큼은 진짜 사랑이 있었다는 걸 알지 않겠는가? 사랑도 받아 본 사람만이 할 줄 안다고, 그렇다면 그것으로 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은교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그녀 몫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적요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학대했다기 보단 육체에 갇히는 것이 싫어 그 나름의 발화 의식으로 자신을 혹사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이 시대의 사랑을 통렬히 비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적요와 박범신       

소설은 어느 만큼의 진실과 허구를 잘 융합시킨 문화상품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정말 17세의 소녀와 사랑을 하고 이 작품을 썼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선생의 첫 작품을 읽은 것에 불과하지만 많은 부분 이적요에게서 선생의 데자뷰를 느꼈다. 특히 이적요를 빌어 우리나라 문단을 비판한 것과 그리고 이적요를 시인으로 등장시킬 만큼 시를 좋아하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적요의 대쪽 같은 캐릭터도 어느만큼은 선생의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또한
그만큼 문체는 시적이면서도 탐미적이다.  


사족으로 조금 과장을 해서 말한다면,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이제까지 읽었던 몇 안 되는 소설들이 하찮게 느껴졌고 그나마 썼던 나의 글들이 허접하다 못해 쓰레기 같이 느껴져 한숨만 더욱 깊어졌다.   

  - written by stella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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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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