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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_ 김두식/창비(창작과비평사),2010-07-09 00:00:00

최근 교회 모임에 나오지 않는 한 분을 찾아뵈었죠. 뜻밖에 놀랄 만한 사연을 들었어요. 자신은 동성애성이 있다는 고백. 자초지종을 들어봤지요.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아버지가 떼놓은 뒤부터 이성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죠. 그 은밀한 속사정은 예배당 안에서조차 가시지 않았고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거죠.


나는 오늘날의 교회가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교회여야 한다고 이야기해왔어요. 더욱이 사회적 소수자들도 언제나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교회여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그런데 뜻밖에 그런 분이 우리교회 교우였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곰곰이 생각해 봤죠. 만일 그 분이 교회 내에서 동성애자가 되기로 공개적으로 선포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교우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도 그 분과 이야기할 때 공감은 갔지만 마음까지 정리가 된 건 아니었지요. 예전에도 겪은 바가 있듯이 술중독자도 다들 괜찮다고는 했지만 불편해하던 일이 역력했었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서 관계 자체가 지니는 보편성과 개별관계의 특수성을 관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친구가 되고 나면, 친구 사이에서, 혹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두가 똑같이 죄인인 입장에서, 누가 누구를 받아들이고 관용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공포는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 공포 때문에 더 커진 적대감이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친구가 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지요.(81쪽)


이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를 부제로 달고 있는 법학자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한 대목이에요.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을 두고서 한 것인데 아주 정확한 부분을 꼬집는 것 같았지요. 교회나 일반조직에서 동성애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라는 거죠. 개인적으로 그들의 속사정까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괜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죠.


법학자지만 깊은 신앙심까지 소유한 그는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성경의 황금률까지 꺼내고 있지요.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가 프라이버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관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란 것이죠. 이성애자들이 보장받기를 원하는 그대로 동성애자들도 주장하고 누리도록 해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떤가요, 수긍이 가나요? 중요한 건 그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죠.


이 책은 그 밖에도 청소년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종차별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러 부분들을 꽤 볼만한 영화들과 함께 풀어나가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는 제가 한국에서 본 영화의 관람료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잘려나간 부분들은 기지 않았지만, 그걸 빼고 나면 이미 완전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양복을 팔면서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양복이 분명하니 그냥 입으라는 것과 같습니다.(241쪽)


이는 〈바디 히트〉〈나인 하프 위크〉〈투문 정션〉〈와일드 오키드〉들을 보고 난 뒤에 한 이야기이죠. 한국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캔자스주 로런스 대학도시에 머물면서 본 것들인데 한국의 것들과는 달리 완전 무삭제였다는 것이죠. 그랬으니 화딱지가 날법도 한 것 같네요.


놀라운 건 그것이죠. 영화의 등급과 검열에 관한 것. 그는 2006년의 커비 딕(Kirby Dick) 감독의〈이 영화는 아직 등급이 없다〉를 예로 들면서 대부분의 심사위원은 대형영화관의 사장, 영화 배급업자, 대형영화사의 판매담당 부사장, 영화관 소유자협회 지부장, 그리고 몇몇의 성직자들이 맡는다고 해요. 나름대로 자본과 종교가 합작하여 이익을 챙기고 있고, 당연히 소수자의 시선은 묵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요. 우리도 여태 그런 건 아닐까요?


아무튼 법학자가 영화를 소재로 인권을 이야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발한 것 같아요. 그의 지식습득이라는 것도 영화를 통해 더 빨리 가져올 수 있었고, 독해력이라는 것도 외국영화에서 많은 덕을 봤다고 하니, 일거양득이란 바로 그건 것이겠지요. 그가 보고 추천한 영화들을 통해 우리사회에 일그러진 인권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고, 여러 의미들을 건져 올리면 좋겠어요. 그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아니라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 written by littlech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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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10.20 22:01
인연
_ 피천득 지음/샘터,2002-08-24 00:00:00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30p-봄)


  봄이 오면 마음이 들뜬다. 옷차림도 날아갈듯 화사하고 가벼워지고 풍경이 다채로워진다. 기숙사에서 학교로 걸어가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개나리, 진달래 이름을 불러보고 이름 모를 연분홍빛 꽃을 보며 마음이 가득 찬다. 이들이 가고 나면 형형색색의 철쭉이 피어 늦봄의 마지막 무도회를 연다. 올해는 꼭 가겠다 한 벗꽃축제에 가지 못해 내년을 기약하며 그렇게 여름을 맞는다.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벗꽃 축제엔 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다. (58p-너무 많다)


  이 세상에는 책이 정말 많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책은 그 일부일 뿐이지만 여전히 많다. 읽고 싶은 책을 적어놓은 목록은 내가 읽어나가는 것에 비해 무서운 속도로 길어진다. 한없이 불어나는 책 목록을 나는 통제할 수가 없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의 제목을 노트에 적어나갈 때 느끼는 환희를 포기하지 못해서일까. 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책을 찾으러 간다. 너무 많다. 많아서 행복하다.


  나는 위대한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의 유사성이 너무나 없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166p-찰스 램)


 어릴 적 읽은 위인전은 참 재미있었다. 위인전 한 질을 2주만에 읽어 치울 정도로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읽고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내 미래 모습을 그려보며 즐거워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 유명한 사람이 되어 TV 프로그램에 나와 선생님 찾겠다고 했을까.
  스무살이 된 지금은 위인전, 전기는 커녕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릴적 그렸던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아직 젊지 않은가? 그치만 나는 안다.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의 길에 평범을 넘어선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어릴 적 꿈에 기대어 그 길을 선택하기에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있다. 위대한 사람들은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싫다지만 그건 변명이다. 모두가 그렇게 변명하고 있어서 암묵적인 동의가 된 것일 뿐. 누군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위인이 될 것이다. 스무 살 나는 누가 될 지 모르는 그 사람을 빛내줄 평민이 되어 줄 생각이다.


  그는 고희가 다 된 노학자이지만 때에 있어서는 젊은이보다 더 현대적이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김은 세대의 차가 아니라 늙기 전에 나를 잃음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176p-치옹)


  영원히청년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힘, 지금의 의욕, 지금의 호기심, 지금의 열정, 지금의 투지, 지금의 모든 것.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걸맞는 지혜가 생긴다지만 나는 아직 싫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두렵다. 나이가 들면 내가 나를 읽고 헤매일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섭다.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 죄 있는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칠색이 영롱한 무지개빛 거짓말일 것이다. (207p-이야기)


  아빠는 허풍이 심하다. 이야기에 풍을 얼마나 섞는지 거의 매일 아빠의 과장된 이야기를 듣는 우리집 세 여자 - 엄마, 나, 여동생 - 는 이제 적당히 걸러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아빠가 별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고 의야해 했지만 가족 모임 할 때마다 어른들끼리 뻔한 거짓말을 주고 받으셨던 것, 다른 가족들과 모였을 때 아빠들끼리 열을 올리며 거의 '누가 누가 허풍 잘치나' 대회를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무지개빛 거짓말을 즐기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보편적인 정서인걸까? 더 가까이서 살펴보면 주로 남자들이 풍을 많이 치고 과장된 자랑을 많이 하는 걸로 봐서 남자들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피천득씨도 남자였지 아마?


  미술품이나 역사적 유물은 오래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더욱 큰 문제다. 경주를 가 보고 마음 아파한 것이 어찌 나 뿐이랴. 정말 너무했다. (267p-문화재 보존)


  시멘트로 여기저기 발라놓은 석굴암이 빛의 속도로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 눈에도 그건 흉해보였다. 신라 천년 고도의 세월을 간직한 곳이라는 위용에 걸맞게 유적의 수는 많이 보존되어 있었지만 보존되어있던 상태는 어린 내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오래 남기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옛날의 숨결을 느끼러 온 곳에서 현대의 삭막하고 무자비한 시멘트 덩이를 봐야 한다니. 하려면 좀 제대로 하자. 그 시대의 건축을 공부하고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상하고 그 시대의 정신을 느끼고 복원공사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요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과거를 잊지 않고 느끼러 온사람들에게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저 김빠지는 정도를 넘어선다. 마음이 아프다.

- written by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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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10.18 18:41

명탐정의 규칙
_ 히가시노 게이고/재인,2010-04-16 00:00:00

TV보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더 많이 읽으려고 하다보니 드라마를 잘 안보는 편이었는데, 내가 책 읽느라 방에 들어와버리면 어머니 혼자 쓸쓸히 드라마를 보시다 주무시게 되어 어쩌다보니 거의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아침드라마부터 일일연속극, 월화수목, 주말 드라마까지.
그런데 웃긴건 그 뻔한 드라마의 흐름을 늙으신 어머니도 훤히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추임새는 기본이고 스토리상 비가 내려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살수차를 동원한거라 말해주지 않아도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네,라고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 또 날마다 다음회의 드라마를 기다리시고 재미있게 보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을 읽고나니 꼭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하루를 보내시는 어머니처럼, 단행본으로 나오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를 기다리고 극장판 코난 애니메이션을 해마다 기다리고 TV판은 물론 단행본 특별판도 재밌게 읽는 조카녀석들이 생각난다. 너무 많이 읽어서 다 비슷비슷해보이는 것들이 재미없을만도한데 꾸준히 읽고 있다. 아, 물론 나 역시 그 지경에 이르렀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행본은 내가 다 소장하고 있으니.
그래서일까, 명탐정의 규칙을 읽는동안 특히 명탐정 코난의 많은 장면이 떠올랐고 자꾸만 키득거리게 되는 것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나처럼 키득거리며 가볍게 읽거나 진지하지 않은 것 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장난에 화내거나, 혹은 이 어이없는 웃음속에 담겨있는 그만의 풍자와 비판에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거나 하겠지. 명탐정의 규칙은 그처럼 어느 한쪽면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책이다. '본격 추리의 자학이 재미의 영역에 도달했다'라는 기타무라 가오루 작가의 표현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의 본질을 짧은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해내다니.

언젠가 한번쯤은 읽어봤던 추리소설의 내용들과 추리소설, 특히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일인칭 주인공이, 그것도 경찰청의 경감이라거나 하는 인물이 '내가 범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까지 빠짐없이 패러디해서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패러디 정신과 블랙 유머로 가득한 초현실 자학 미스터리'라는 건 정말 과장 문구가 아니었어.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최근작품이 아니라 이미 십여년전에 쓰여진 것이라는 걸 알고 놀라버렸다. 본격 추리의 자학이 재미의 영역에 도달했을뿐만 아니라 블랙유머 안에 담겨있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 지금까지도 무뎌지지 않았기에.



- written by 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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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_ 후쿠타 세이지/비아북,2009-10-12 00:00:00

교육을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나라가 '핀란드'이다.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성공한 교육 사례의 대표격인 셈이다.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기에 그런 찬사를 받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후쿠타 세이지의 원작에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장의 해설이 덧붙여진 책이다. 이왕이면 한국인의 시각에서 핀란드의 교육을 세세하게 보고 듣고 경험한 책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여건이나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는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하고, 한국의 교육 상황과 비교하여 중점 있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에 대한 책도 여러 종류겠지만, 이 책은 핀란드 교실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서문을 통해 핀란드 교육을 정리해보자면, 핀란드에는 경쟁이 없으며 “공부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고, 교사는 학생을 돕고 정부는 지원하고 부모는 협력했다”(p.22)고 한다.

“핀란드의 핵심적인 교육과제는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 하지만 한국은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p.54) 이는 한국과 핀란드 교육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는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평가와 직결된다. 뿐만 아니라 평가결과에 따라 최상위권 학생은 더 이상의 학습동기를 부여받지 못하고, 하위권 학생은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을 갖기 쉽다. 분명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학력 편차로 인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수업의 난이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평가는 모두 힘을 합쳐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서열을 매겨 학부모가 학교를 고르게 하려는 의도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장에 힘을 실어준다. 학교를 평가하는 것은 더 좋은 학교를 목표로 학생, 교사,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하는 첫걸음.”(p.83)이라는 핀란드의 평가제도는 최근 일제고사로 논란이 많았던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공부란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사회전반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핀란드와 잘하는 학생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대학에 따라 취업에서 차별받는 한국 사회에서의 평가는 분명 그 의미가 달라진다.

교원평가는 어떨까? 핀란드에서는 교원 평가를 통한 인사고과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교사들의 노력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p.86)이란다. 이는 교사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에 가능하다. 핀란드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학부 3년), 대학원(석사) 2년을 마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2,3년간 자신의 장래를 고민한 후 대학에 진학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교사로서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래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다음 교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어떨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교사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교사로서의 인성과 적성이 갖추어진 좋은 교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사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교육관이나 전문성과 관계없이 안정된 직장인으로서 교사를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실시하고자 하는 교원평가 역시 신뢰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육관이나 교육철학이 변하지 않는 이상 교원평가 역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교육현장은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고,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핀란드의 교육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핀란드에게서 배울 것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가 아니라 학습 잠재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 느리지만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배워야한다.

 

- written by 하양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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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추천도서2010.10.10 15:33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_ 우타노 쇼고 (지은이) | 현정수 (옮긴이)/문학동네,2010-07-05 00:00:00

추리소설이 나온지도 수십년이 흘러서 갖가지 방법의 다양한 사건과 트릭,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수단도 여러가지가 나왔다. 이러다가는 정말 더이상 추리소설의 형식이 고갈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것은 괜한 걱정이라고 일깨우듯 또다른 모습의 추리소설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 그 강력한 증거가 될 작가가 있다.
바로 '우타노 쇼고'.

이미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책에서 보여준 그의 글쓰는 솜씨는 독특하면서도 치밀하고 도무지 그 끝을 짐작할수 없게 하는 깊은 내공의 힘을 보여준바가 있다.
추리소설을 그리 잘 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글솜씨를 보인 작가인데 사실 다른 일본 작가들에 비해서 우리나라에는 그리 많이 소개되지가 않아서 늘 안타까왔다.
그러던차에 이번에 그의 그 글맛을 맛볼수 있는 작품이 나왔는데 바로 이 책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이다.

결론적으로 바로 말하면 '앗', '억', '악', '와'이다.
기대했던 작가의 책이 소리소문 없이 나온 놀라움에 '앗',
그 내용의 이어짐이 상상을 못하는 방향으로 전개됨에 '억',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기발하면서도 허를 찌르기에 '악',
그리고 결말을 보면 역시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와'다.

역시 우타노 쇼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던 책이랄까.
사실 이 책은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길고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 분량의 소설 3편을 묶은 책이다.
전에 출간된 장편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짧다면 짧다고 느껴질수가 있겠지만 역시 이런 글쟁이의 글솜씨는 장편이 아니라 단편에서 그 진수를 알아챌수 있다고 생각한다.
긴 호흡의 장편에 비해서 기승전결을 짧은 분량안에 녹아내야하는 단편이나 중편은 그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생산해내기가 어려운 탓에 좋은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지은이의 특징을 유감없이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었다.

첫번째 작품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좋은 캐릭터를 만난듯한 느낌이다.
전형적인 탐정이라기 보다는 그냥 이웃집 불만많은(?) 백수 같은 사람이 탐정으로 등장하는데 유머스러운 순간도 잠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또다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인물'에서 보이는 재미남이 색다른 느낌을 주는 소설. 물론 탐정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탐정물로써의 재미도 보장되는 작품이었다.

두번째 작품인 '생존자, 1명'은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공간인 고립된 곳이 배경이다.
무인도라는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어찌보면 그동안 많이 봐왔던 상황에서의 사건을 그린 작품인데 이런 눈에 보이는 소재로도 지은이는 참 탁월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읽다가 보면 익히 아는 배경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게 한다. 테러를 저지른뒤에 무인도로 피신한 등장인물들이 그 안에서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장면을 오싹하면서도 긴장감있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의 수기와 신문기사가 교차되는 서술 방식은 내용을 독특하면서도 팽팽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 뒤에 이어진 반전은 정말 '억'소리가 날 정도였다.
우타노 쇼고가 아니면 어찌 이런 발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

마지막으로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도 역시 많이 보아온 배경이다.
바로 어떤 '주택'에 초대를 받고, 등장인물들이 그 주택에 '갇히고', 그래서 그 상태에서 어떤일이 '일어나고', 그래서 그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서양의 미스터리 고전물에서 많이 봤음직한 배경이 아니던가.그런데 지은이는 그 익숙한 배경에서 '느낌'을 불어넣었다.
바로 추리게임을 통해서 추리소설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것이다. 내용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팬들을 대신해서 게임에 빠져드는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진짜로 게임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것이다. 결론에 이르는 반전은 보너스고 게임의 형식을 통해서 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거 같아서 기분 좋게 읽었던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참 오랫만에 즐겁게 읽었던 추리소설이었다. 역시 '우타노 쇼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했던 책. 단편이지만 장편 못지 않게 추리소설적인 기술이 아주 고급스럽게 구사되고 있고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묘사도 치밀하고 정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힘이 좋다. 줄거리가 좋으니 다른 장치들도 같이 좋게 가는거 같다. 이 작가의 글솜씨를 기억한 독자들은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을 다시한번 가로새길 기회였을꺼고, 처음 접한 독자들은 앞으로 기억할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할만한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제 또 다른 결론, '어휴'.
국내에 이 작가의 책이 3권만 나왔기에 언제 또 나오나 하는 한숨.
다른 작품들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 written by 살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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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10.05 23:49

하루에 돌아보는 우리 궁궐
_ 손용해, 허균, 김효중, 김보영/주니어김영사,2010-06-10 00:00:00

어느덧 초등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는 딸아이는 체험학습이니 현장학습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진(?) 요즘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도 딸아이도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것같다. 현장학습체험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딸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조금이라도 많이 그리고 늦지않게 보여주어 나중에라도 '미리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예체능 관련한 다양한 놀이와 공연 관람을 비롯하여 미술관, 과학관은 물론 역사와 관련한 유적지며 궁궐, 박물관까지....돌이켜보면 참 두서없이 다녔던 것같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리니 눈으로 보고 듣는 감각적인 자극(?)에 의존하였던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져 미리 알고 가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체험을 떠나는 차 안에서 '에구, 미리 관련 책이라도 읽어보고 정보라도 좀 찾아보고 올 것을....'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고는 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앞선 의욕에 이끌려온 딸아이는 학습적인 체험보다는 엄마와 함께 온 나들이라고 생각하는지 해설사나 안내자의 설명에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뒤에서 쫓아가는 엄마들 틈에서 내 속은 얼마나 타들어가는지..... 간간이 정말 열성적으로 듣고 또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을 쏟아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이제야 솔직히 털어놓건대, 엄마의 의욕에 앞서 부지런함이 좀더 앞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체험해도 매번 아이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사전에 알고 가면 좀더 흥미로웠을텐데... 아이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무엇보다 체험학습을 위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해서 가보고픈 생각이 간절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하루에 돌아본다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 책이 반갑게 다가온다.

아이와 함께 이미 여러 차례 다녀온 경복궁과 덕수궁을 비롯해, 결혼 전에 몇 번 다녀온 추억만 갖고 있는 창경궁과 창덕궁, 가봐야지 마음만 먹고 여태껏 가보지 못한 운현궁까지 차근차근 읽다보니 그동안 체험학습 다니며 해설사로부터 들었던 알찬 정보들에 몰랐던 것까지 모조리 들어있다. 

조선의 궁궐이 서울의 4대문 안에 모여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때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비교적 직접적인 체험이 어렵지 않겠지만, 그보다 먼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그야말로 그림에 떡!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뿐만 아니라 직접 방문하여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알찬 정보가 담겨있는 체험학습도서들이 풍부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 역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궁궐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를 비롯하여 역사적인 이야기까지 알차게 들려주고 있어 그저 오래된 역사의 산물로만 여기던 궁궐을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시원한 그림이, 굳이 현장에 가는 수고도 덜어주는 듯하여 더욱 이쁜 책이다.


- written by 재윤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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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10.10.04 15:24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
_ 에릭 드루커 그림|김한청 옮김/다른,0000-00-00 00:00:00

소외. 

 책『대홍수』가 표현한 것은 소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대 도시 뉴욕은 인간 소외의 거대한 표본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나 힘과 권력이 없는 자들은 도시의 맨 아랫부분에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소외됐고, 집 밖 도시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작가 에릭 드루커의 그림은 현대 문명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표현한다. 거친 스크래치로 표현된 인간들, 뼈가 훤히 보이는 인간들, 눅눅하고 축축하고 어둡기 만한 얼굴들과 도시 풍경들.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타락한 군상. 드루커의 그림에서 인간과 도시는 소외라는 공통된 쓸쓸함 젖어 있었고 그는 이런 현실을 스크래치 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다.


 기술이 진보하여 다양한 미디어가 속출하고, 개인 휴대 단말기들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 하지만 그렇듯 발달된 현실에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과거 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술적 진보는 인간의 이성적 진보를 가로막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자체가 기술의 목적이 되어 인간의 순수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드루커의 그림에서 보이는 엑스레이 양식(뼈가 드러나 보이도록 사람들을 투명하게 그리는 양식)때문인지 몰라도 책을 보는 내내 그가 표현한 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고민해 보았다. 결국 인간의 본질이 파괴되면 문명도 파괴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대홍수로 인해 뉴욕이 잠기는 드루커의 그림은 의미심장하다.


 소외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영혼이 없는 인간들의 공간이 될 것이다. 드루커는 자신의 그림에서 문자를 배제시켰다. 소통과 대화가 사라진 현대인의 비인간적 공간 즉 도시. 드루커는 그림에서 글자와 소통이 사라진 대도시 뉴욕을 표현하고 있었다. 소외된 인간이 가득한 도시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도시를 파멸시킨다. 대홍수로 말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을 깨끗이 하기 위해 인간들에게 분명 거대한 홍수를 내리리라는 확신을 갖고 말이다.


 몇 달 전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도끼 살인자 라스꼴리니꼬프는 문명의 진보가 만들어낸 희생양이었다. 「죄와 벌」이 문자를 통해 말해주는 교훈은 드루커의 『대홍수』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교훈과 다르지 않다. 이성과 합리성을 통한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 낸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이 만든 인간 소외는 결국 파국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합리성이 만든 변증법의 세상을 뒤로 하고 우리는 진지한 인간 본연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드루커의 그림 곳곳에서 발견되는 과거 오래된 문명의 흔적들, 이누이트들, 다양한 고대 형상들은 문명이 만들어 내는 참혹한 소외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그림이라는 소통 장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하지만 짧디 짧은 나의 얇은 지식으로 드루커의 작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진보의 비인간성과 소외 그리고 파국이었다.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많은 문제들도 해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이야기 하고 싶다. 뼈로 상징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야 말로 소외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 written by jjolp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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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_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다른,2010-07-20 00:00:00

  중학교 1학년때인가 학원을 갔다가 11시쯤 귀가를 했습니다. 엄마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는데 TV에서는 커다란 빌딩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저는 신발을 벗으면서 엄마한테 아주 순진하게도 저 건물 왜 불타고 있는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TV에 시선을 집중하신 채 와서 직접 보라고 하시길래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소파에 앉아 함께 TV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지나니 replay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더군요. 비행기가 슝- 하고 날아오더니 쿠왕- 하고 빌딩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폭발이있었고 그 동영상을 찍은 사람도 도망가느라 바빴는지 이리저리 초점이 흔들리며 비명소리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불타는 빌딩과 흥분한 기자, 앵커의 목소리에 이어 이번엔 위태롭게 서 있던 그 건물이 폭삭, 정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읽고 쓰러지는 사람마냥 무너졌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있는 게 뉴스인지 블록버스터 영화인지 잘 구분이 안되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곧 TV를 끄셨고 저보고는 이제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서 자라시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날은 2001년 9월 1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 고등학생일 때에는 영어회화라는 과목이 있었고 우리 과를 맡았던 외국인 교사는 Mr. Rogers로 시사와 세계 정세에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두 번 들어있는 수업이었지만 매 시간 영자신문을 읽고 제 1면의 논점들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 내야 했으며 강의를 듣고 시험도 봐야했기 때문에 당장 내신과 수능이 급한 학생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죠. 물론 열심히 한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 지금보다 훨씬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꼬맹이였기 때문에 조지 부시 따위, WMD 따위, 북한 따위 알게 뭐람 하고는 신문도 읽지 않고 토론시간에 졸고 시험은 벼락치기로 공부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는 데에 언어 장벽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후회합니다. 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나는 가만히 있었을까. 왜 나는 금방 잊고 마치 전 세계가 지금 여기처럼 태평하다고 눈가림하려 했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에라도 후회하는 걸 다행으로 새악ㄱ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만화라고 하더라도 읽지 않았겠지요. 신문을 봐도, 책을 읽어도 이해가 안되고 너무 어려운 것 천지라서 그저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런걸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 어느새 20대 중반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와버렸네요.

  더 이상 제 무지를 묵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다짐은 이 책을 읽기 전에 한 것이지만 앞으로도 항상 새로 각오하겠다는 느낌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아직 이 책의 메시지를 실행에 옮겨 직접 저항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저항을 해야 하는지는 익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심이 1단계, 그리고 상황 파악이 2단계. 2단계까지 제가 성장하고 나면 3단계 의견 및 의지 표방, 그리고 4단계 실행으로 이어질 겁니다. 몇 년이 걸릴 지 몇 십년이 걸릴 지 모릅니다. 말이 4단계지 사실은 무수히 많은 중간 보스를 해치우고 자신을 추스려나가는 과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어릴 적 풀던 수학 문제집에 한 번호 아래에 수많은 새끼문제가 있는 -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 문제가 있죠. 마치 그것 처럼 지금 말하고 있는 제 무지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저를 괴롭힐겁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 지금 이렇게 남긴 글이 부끄러워서라도 그만 두지 못하게 되기를. 좀 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P.S. 이 글을 읽고 나면 지금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으시겠죠? 구체적인 길을 잡지 못해 아지곧 갈팡질팡하는 저에게 작은 충고 부탁드립니다. 쉬운 책 한권 추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큰 일,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배웠을테지만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 방법들. 모두 환영합니다. 도와주세요.


- written by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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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9.26 18:45
제리
_ 김혜나/민음사,2010-06-11 00:00:00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가능하면 찾아서 읽은 문학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이다. 책을 받아들고 표지 등을 보면서 처음 느낀 점은 얇다는 것과 소녀 취향의 그림이란 것이다. 바로 읽을 수도 있었는데 뒤쪽 심사평을 읽으면서‘치명적인 성애묘사’란 표현에 문학상 수상작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했겠는가 하고 내려 보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몇 쪽을 읽지 않아서 바뀌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한 편의 포르노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문학을 통해 이런 경험을 했다.

사실 이런 표현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마광수 교수나 장정일의 작품 속에서 이미 표현된 적이 있다. 이 작품들이 세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시절에 이런 묘사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정도는 아니었다. 몰래 보고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뒤섞어 표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아예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다. 대단한 변화다. 이런 변화가 인정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청춘들의 삶과 방황이 현실의 한 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리는 노래방 도우미로 온 남자의 이름이다. 그가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우연히 지명한 화자 나의 행동과 심리로 그려진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가 열심히 놀려고 할 때 오히려 즐겁기보다 어색하고 그 속에 몰입하지 못한다. 술로 시간을 때우고, 시간이 끝난 후 다른 파트너를 부르자는 동료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를 불러낸 것은 바로 이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들어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와의 시간 속에서 즐겁게 놀지 못하지만 그녀가 느낀 감정은 솔직한 성욕이었고, 이 감정은 꿈도 희망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현실의 그녀에게 하나의 도피처가 된다.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20대는 도덕적 시각에서 보면 음탕하고 반도덕적이다. 술과 섹스와 일탈을 즐기려는 마음만 가득하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다. 미주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많은 20대의 현실이다. 추상적인 꿈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이들을 보면서 대학 도서관과 영어회화학원을 오가면 스펙을 쌓고 있는 대학생을 생각하면 완전히 딴 세상 아이들 같다. 이런 양극화는 현실 속에서 이미 벌어질 만큼 벌어졌고,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화자가 자신과 선후배의 미래를 생각할 때 현실의 높은 벽과 넓은 틈새는 결코 낮아지거나 좁아지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한다.

현실 속 청년들은 이미 불공평한 경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외모 차이, 부모의 재력 차이, 학력 차이 등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의 이런 차이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그 때문에 제리가 “그런데 내가 진짜로 무서운 건, 죽어서도 이대로일까 봐, 죽어서까지도 늘 이따위 신세일까 봐, 또다시 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214쪽)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그들에게 술과 섹스에 대한 갈증과 탐욕은 일시적이면서도 충동적일 수밖에 없다.

화자의 삶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사회에서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학창시절엔 날라리란 이유 때문에 선생에게 성희롱 당하고, 이 사실을 믿어주기보단 그녀를 탓하는 현실을 만난다. 졸업 후 갈 대학이 없어 2년제 야간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이것은 단지 다른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외로움 때문에 술과 섹스를 제외하면 아무런 감정 교류도 없는 강을 만나고, 가족과의 단절은 타인과의 관계보다 못하다. 이런 그녀의 일탈과 방황 속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조그마한 깨달음과 감정은 이 시대 20대의 조그마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골적인 성교 묘사 너머에 있는 그들의 삶은 조용히 가슴 한 곳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 written by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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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방목 아이들
_ 리노어 스커네이지 지음 | 홍한별 옮김/양철북 ,2010-06-07 00:00:00

학창시절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내 자식은 이렇게 키우지 말아야지'라며 미래의 육아지침을 마음에 새기곤 했다. 당시 내가 당했던 통제를 자식 대에서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고 좀더 넓은 의미의 육아와 교육의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기존에 어설픈(?) 육아·교육에 대한 입장이 훨씬 업그레이드 되었다. 우선 내가 생각하던 육아방식이 ‘통제’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주변에 이야기하면 아직 애가 없어서 그래 키워보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그런 비아냥에도 자신 있었다. 이미 중심이 서 있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 떠올린 아이디어가 아니라 세월을 거쳐 형성된 철학이라는 믿음이었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가

아이가 나오고 나서 행동에 돌입했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작고 어설프게 생긴 아기를 보면 어쩐지 부모인 내가 전적으로 도와줘야 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솟는 것이었다. 위험에 대한 불안감도 늘어서 그런 것도 있다. 아이에겐 아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있음이 또 하나의 요인이다. 서로 애를 학대한다고 사사건건 충돌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감기 때 병원 가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 병원에 간적이 없었다. 물 많이 마시면서 쉬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으면 하루 만에 거의 나았고 심하면 ‘종합감기약’을 먹었다. 약이 듣는 것은 아니었다. 감기에는 약이 없으니까. 내 아들도 그러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딱 두 번 병원에 데리고 가봤다. 40도 가까이 이틀간 열이 지속되었을 때, 얼굴 전체에 두드러기가 솟았을 때. 결국 내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증명이 되고 말았다. 항생제를 거부하는 부모에게 타이레놀 처방이 전부였던 소아과 의사와 두드러기의 원인은 모르겠고 ‘접촉성피부염’이라는 광범위한 처방을 내리는 피부과 의사는 내가 원한 전문가가 아니었다.(나는 의사를 별로 믿지 않는다. 그들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앞으로는 병원 데리고 갈일이 더 없어질 것이다. 요즘은 처도 내 쪽으로 점점 돌아서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좋은 공부다. 엊그제 대학친구의 식구들이 놀러와서 이틀간 묵었다. 동네 개울에 물놀이를 갔는데 나는 물가에서 5미터쯤 떨어져서 자리를 깔고 그늘아래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솔솔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곧 잠이 들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첨벙첨벙 하는 소리. 가끔 큰 돌을 던져서 큰 물장구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첨벙첨벙. 연이어서 들리는 물장구, 좀 불규칙하게 들린다. 이거 허우적거리는 소리다! 눈을 떠서 바라보았다. 아이가, 없다. 맨발로 뛰어서 물로 들어갔다. 기껏 무릎정도 되는 물깊이다. 아이는 빠져서 곧 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엎어져서 허우적대는 아이를 건져내어 물가로 나왔다. 화장실에 간다고 애보라고 신신당부하던 엄마가 뛰어왔다. 아이의 충격보다 처의 나무라는 소리가 더 두려웠다.

그건 결국, 꿈이었다.

친구네 아이와 엄마는 우리아이와 함께 같이 있었다. 시종일간 아이 곁에 바싹 붙어서 돌 던지고 노는 아이를 감시했다. 하지마라, 너무 큰 돌을 잡지 마라, 미끄러질라 조심해라, 엄마 손잡고 걸어라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널 때부터 그랬다. 아예 안아서 건너갔다(위험하다). 나는 네 살 아들에게 혼자 건너기를 권했다. 아이는 무섭다고 했다. 물을 건너서 손짓을 했지만 징징거리며 아빠가 오기를 바랐다.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건너가서 아이의 손을 잡아서 건너게 했다. 가끔 돌이 흔들리는 것이 있어서 자세는 불안했다. 손을 놓고 스스로 건너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에서 감시하는(?) 애엄마 때문에 포기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동생과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 뿐 아니라 계곡의 큰 바위 위를 올라가는 것도 제지당한 적이 없다. 산 사이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나 밧줄로 묶인 위험해 보이는 외다리, 절벽을 오르는 철제계단을 오를 때도 스스로 했고 조심해라를 수십 번씩 외치는 지금의 부모들과는 달랐다. 너무 흥분한 순간에 적절하게 주의할 것을 주지시키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끔(사실 어린시절에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다) 무릎이 까지거나 손바닥이 까져도 놀다가 그런 것이라 다음번엔 좀더 주의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정도였다. 담을 넘다가 입가가 찢어져서 열두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은 때에도 나의 ‘부잡스러움’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놀지 않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좀 더 주의력이 생기고 위험함을 인지하게 된 정도랄까.

아이는 스스로 큰다
지금 아이들은 너무 과보호 속에 자라고 있다. 주체적 놀이라는 것을 경험할 틈도 없다. 시골 초등학교 6학년들에게 발피구(둥그런 원에서 공을 차다가 놓친 사람이 원안에 들어가서 공을 맞거나 잡는 게임)를 가르쳐주고 ‘사부님’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을 정도다. 내가 그 나이 때는 짬뽕, 오징어, 구슬놀이, 팽이, 비석치기, 딱지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 요즘 아이들은 기껏 공을 차거나 공을 던지거나 하는 프로스포츠 흉내 내기밖에 할 줄 모른다.

네 살 아들이 돌을 잡을 때마다 “이거” 하면서 검사를 받는다. 그럼 아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의 크기가 충분히 작다는 것을 인정해준다. 그런 돌을 던지면서 논다. 세상에 물에 돌을 던지면서 자신이 들 수 있고 없고를 엄마가 결정해준단 말인가.

모두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가 빠지는 꿈을 꾸는 것처럼 혹시 우리 아이가 하는 불안감이 행동을 제약한다. 아이의 행동뿐만 아니라 부모의 행동도 제약된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두블럭 (몇 백 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떨어진 곳에 심부를 다녀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차로 데려다 주거나 부모가 동행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는 것은 ‘아동학대’에 속한다. <뉴욕범죄수사대><크리미널마인드>등은 갖가지 기상천외한 범죄만을 생산해내고 있지 않은가. 실재하지 않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자유방목아이들>의 저자 리노어 스커네이지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이다. 아이를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키우기 위해 ‘자유’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지금 아이들은 행동 결정권이 전혀 없다. 핸드폰으로 우유를 먹어도 될지 옥수수 빵을 먹을지 컵케익을 먹을지를 결정해주는 부모의 명령을 기대할 정도다. 모두가 두려움 때문이다. 뉴스와 드라마는 범죄와 사고의 가능성을 크게 부각한다. 시청률을 위한 선택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내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반복적인 노출로 굳어지게 돕는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것을 어른인 자신이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발전시킨다.

통제는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까.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나을지 골프채를 잡게 하는 것이 미래에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학과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학원에 보내서 나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정도는 어느 부모나 다 하는 것이다. 차라리 학원을 보내지 않고 도제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가능성’면에서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부모는 드물다. ‘주류’에서 벗어날 경우의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다. 오로지 모두가 꿈꾸는 희망을, 소수가 잡게 될 그것을 바라고 있는 꼴이다.

초등학생 아이들 몇 명이 와서 당신에게 뗏목을 만들어 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위험해서 안돼”하겠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어떤 ‘쿨한’ 삼촌은 기꺼이 그러라고 하고 아이들이 만든 뗏목을 강가에 차로 실어다주기까지 했다. 조끼를 다 입히고 태워주고 물로 밀어주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뗏목을 타고 그것이 상상하던 모험과 다름을 느낀다. 강의 급류를 타고 흐르기라도 하면 두려움은 급속히 는다. 이때 그 삼촌은 미리 매어 놓은 줄을 당긴다. 강가에 도착한 아이들은 삼촌의 배려에 감사하고 진짜 모험의 설렘과 철저한 계획 없는 실행에 대한 두려움을 배운다.

‘만들어진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을 위해 자신이 자라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뉴스의 범죄를 내가 당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에 가깝다. 이런 확률의 사건에 대한 기대로 맘을 졸이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잘 되지 않는다고? 티브이와 신문을 끊어라. 그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단다.


- written by 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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