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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6.29 18:42

샐리의 따뜻한 아침식사
_ 리처드 르뮤/살림,2009-12-10 00:00:00


처음 책을 받아 들고는 볼까 말까로 망서렸다. 요약한 내용을 읽어 보니 잘 나가던 사장님이었다가 파산을 한 후 거리로 내 몰린 모양이던데, 그저 그렇고 그런 신파조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음에도 읽기 시작한 것은  왜였는지 모르겠다. 미련해서, 아니면 그럼에도 뭔가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서? 물론 책을 읽기 전에 좋은 책인지 아닌지 판별이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서도, 실은 그런 예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딱 느낌이 좋아 읽어보니 실제로 좋은 책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 책처럼 별로인게 보장 되는 듯한 포스를 풍겨대도 읽어보면 좋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즉 , 내가 말하려는 것은, 표지란 때론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으니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가는 읽어 보기전까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이 책처럼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쓴 책이라면 판단에 신중해야 한다. 생각할 거릴 던져주는 생생하고 강력한 이야기들에 눈을 돌리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육십을 넘긴 리처드 르뮤는 한때 정말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다니고, 애인과 함계 세계 여행도 다녔으며 기자에 사장도 해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순간의 파산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돈만 잃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지만 모두 떠나가 버린다. 친구도, 애인도, 그리고 가족들마저도... 남은 것은 오로지 그가 키우던 개 윌로우뿐,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충격과 자식들마저 등을 돌린 현실은 그를 우울증으로 내몬다. 자식과 손자들 이름마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니 그의 절망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고급 호텔에서 삶을 만끽하던 그가 차 가스비와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고말자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의 자살은 그러나 애완견 윌로우의 존재로 인해 미수에 그치고 만다. 

 

자살소동 이후 그는 이제 윌로우를 위해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너무 배가 고파 난생 처음 구걸에 나선 그는 무안만 당하고는 쫓겨 나고 만다. 마침 누군가 샐리네로 가면 아침을 줄거라는 말에 주춤대며 가본 그는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누가 봐도 신참 노숙자인 그가 우물쭈물 서성대자, C라는 사람이 다가와 토닥거린다. 이곳에 있는 사람도 너와 같은 사람이니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듯한 C 덕분에 리처드는 마음을 놓는다. 식사가 끝난 뒤 C는 리처드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노숙자가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알려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리처드는 평소라면 전혀 눈여겨 보지 않았을 노숙자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머리를 다친 뒤 버림받은 아줌마, 평생 알콜 중독자로 비틀대며 살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다는 앤디, 집을 가출한 뒤 숲에서 생활을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아줌마들, 명품들을 휘감은 채 샐리네로 오게 된 한 여성, 베트남 출전 병사였던 랜디...한때 자신과 전혀 동떨어진 사람일거라 생각했던 노숙자들이 그저 운이 나쁜 사람들이었다는것을 그는 알게 된다. 그는 점차적으로 그들에게 연민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가 노숙자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 것은 C의 도움이 컸다. 단지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평정을 가져 오게 한다는 그는 세상사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른 척 한다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다른 노숙자들을 섬세하게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리처드는 감화를 받게 된다. 더불어 그간 자신이 좁은 우물속에 살고 있던 개구리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C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지 알게 된 리처드는 1년 반동안의 노숙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론 도저히 못 쓸거라는 절망에 던져 버리기도 했으나, 같은 노숙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원고를 완성하게 됐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우선 이 책을 보면서 서구 사회의 냉정함에 놀라고 말았다. 파산을 했다지만 그래도 키워준 아버지인데, 가족들이 멀쩡히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노숙자로 내몰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저자 자신도 그 충격에 가족들 이름마저 잊어 버렸다니 비단 나만 충격을 받은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게 동물이건 인간이건 간에 감정이 있는 존재는 함부로 버리는게 아니다. 어쨌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린 그를 잡아준 것이 애완견 윌로우와 같은 처지의 노숙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던 자선 사업가 분들이었다니, 다행이긴 해도 씁쓸함이 밀려 오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들이 사라진 빈 자리를 같은 처지의 노숙자들이 다정하게 메꿔주는 과정들이 아마도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해도 속으로는 울먹이고 있는 그를 행해,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살아가기 마련이니 겁 먹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다독이는 사람들 덕분에 그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끊임없이 그를 지치게 하는 우울증과의 사투는 계속되야 했지만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에 우울해 하던 저자가 점차 다른 노숙자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에 눈을 뜨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던 작품이다.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내려 간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던데, 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이 어떻게 희망을 찾게 되었는지를 너무도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어 눈을 떼기 힘들다. 진부하지도 않고,신파조도 아니며, 세상을 행해 원망이나 늘어놓는 책이 아니라는게 좋았다. 그저 담담히 노숙자들도 인간이고, 그들에게도 귀 기울여 볼만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들려 주고 있었다. 물론 그도 자신이 노숙자가 되기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겠지만서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기 쉬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견지하던 그가 존경스러웠다. 인간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는걸 그는 직감적으로 아는 듯했다. 자신을 지켜 낸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을 읽기전까진 난 자선이라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은 못했었다. 내가 곤궁해보지 않았기에  힘든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한 끼의 식사가 주는 위안과 따스함, 아마도 그것의 위대함이 이 책의 제목을 <샐리의 따뜻한 아침식사>로 짓게 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의 노숙자 삶엔 애완견 윌로우도 있고, 시인 노숙자인 C도 있었으며, 그를 우울증에서 끌어준 의사와 간호사 목사도 있었지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샐리네 였을테니 말이다.

 

만약 세상을 보다 선한 눈으로 보게 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한다면 ,이 책은 단연코 좋은 책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분이나, 인생이 파탄나서 어찌해야 할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한번 들여다 보심도 좋을 듯. 험난한 고비를 성숙하게 넘긴 어른에게 한 수 배울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written by 아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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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지금 이 순간의 역사
_ 한홍구/한겨레출판,2010-03-08 00:00:00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전에 조금 길긴 하지만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야겠다. 더 많은 글들이 와 닿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역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특강의 제목이 '지금 이 순간의 역사'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겨우 60여 년 전에 식민지에서 해방되었고, 나라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그 반쪽으로 세계 10위권의 나라로 올라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한순간 한순간이 중요했습니다.
그 순간의 포인트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불과 20년 전 민주화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비정규직 문제가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면 또다시 20년 후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1980년 광주에서 총을 내려놓느냐, 그래도 도청에 남을 것이냐 하는 한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바꾸고 우리에게 거룩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냥 몇백 명이 죽어버린 사건으로, 불미스러운 폭도의 폭력 사건으로 끝나버릴 수 있었던 갈림길이 바로 그 작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몇 명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323-324)

다시 4.3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死.삶... 옛날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고 만세를 외치며 좋아하던 우리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찬탁과 반탁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기도 전에, 이유도 없이 죽어가야만 했다. 그때의 그 순간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역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한국현대사라에 들어갈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분단이 고착화 되었고 그 이후 남쪽에 이승만 정권이 친일세력을 소탕하기는 커녕 그들을 끌어안으며 권력을 잡았고 결국은 박정희의 기나긴 독재시절을 지내게 되었다. 그것은 역사의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는 것이겠지만 모두가 만들어낸 역사의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한홍구의 특강 두번째권인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광주이야기로 시작한다. 건너건너 소문으로도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섬지역에서, 더구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어린 나에게 당시의 기억은 TV화면뿐이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총을 들고 피폐해진 거리를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함성을 지르는.
나는 그들이 '폭도'임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TV화면 속 그 모습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모습이 갖는 진실은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우리의 그리 길지 않은 현대사가 그렇게 수없이 많은 왜곡과 감추임으로 진실이 어긋난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두 전직대통령, 노무현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의 서거에 왜 그리 많은 이들이 슬퍼하는지 잘 몰랐다. 한때의 민주화의 상징이고 투사였던 그들은 결국은 정치가였을뿐이라고만 생각을 했기때문이다. 그런 나를 뒤늦게 슬프게 만든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미 알고 있는 수많은 사실들을 더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서, 그것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술술 얘기하는 글에 빠져 광주 이후의 여러 사건들을 읽다보니 때로는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들과 겹치면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수많은 사건들의 의미를 더 잘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훑어보니 두분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지금도 민주와 평등, 평화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외롭고 힘겨운 삶의 여정이 얼마나 치열한지 느껴가고 있다.

지난 여름, 우연찮게 용산에 갈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하는 곳이라 내가 그곳에 가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는데 시커멓게 타버린 건물의 잔해와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전경버스와 경찰들. 순간 역사는 진일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되풀이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용산참사의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하려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속에서 희망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그러한 이들의 하루하루가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어느정도는 내가 지나온 세월도 포함되어 있고 다른 책이나 매체등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들이 많아서 좀 더 쉽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이제야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가는 20대에게 우리의 역사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 책을 나처럼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들이 전혀 겪어보지 못한 역사의 이야기들이 단지 화석화된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written by 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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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6.27 17:09
죽음의 수용소에서
_ 빅터 프랭클/청아출판사,2005-08-10 00:00:00


수용소에 대한 이미지들
유태인 수용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 가지 있다. 주로 영화 속 장면들인데, 단편적인 장면들이 얽혀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인류사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면서, 비인간적인 상황을 더욱 강조하고 동시에 살아남은 어린 아이를 통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아빠의 사랑과 천진한 소년의 미소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나치에 온갖 뇌물을 바치며 유태인을 이용하던 기회주의자 쉰들러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유태인들을 강제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아마도 많이 알려진 영화일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영화로는 <더 리더>가 있다. 한 남자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치 수용소에서 일했던 전력 때문에 감옥에 수용되었던 그 여인의 운명적 삶과 고통을 아프게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가슴을 졸이면서 보았던 <피아니스트>이다. 잔잔한 선율로 시작된 영화 속의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참혹한 폐허 속에 홀로 살아남아 은신처에서 전전한다. 그러다가 독일장교에게 발각되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유태인 수용소는 아니지만, 북한의 수용소가 등장하는 우리 영화 ‘크로싱’도 있다. 평양을 방문하고 난 직후에 보게 되어서 그런지, 관객도 거의 없는 극장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영화를 봤었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면서 고통과 슬픔과 잔혹함을 함께 느낀다고 해도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공포와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조건과 삶의 의미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갈림길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끝내 살아남아, 그 체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라는 정신분석방법을 창안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수기이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그의 주장은,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부모, 형제, 아내가 모두 강제수용소에서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어떻게 그 곳 강제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강제수용소에 들어가던 날, 그는 자신의 소지품 중에서 한 묶음의 원고를 보여주며 간절히 부탁했다.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원고이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고를 간직해야 한다고.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욕과 함께 목욕탕으로 가라는 지시뿐이었고, 물론 그의 원고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었다. 원고는커녕, 그날 수용소에 도착한 유태인중 90%는 독가스가 나오는 가짜 목욕탕에서 목숨을 잃고 시커먼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살아남은 10%가 되어 수용소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그는 결심하게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글로 남기겠다고.
그러나 수용소에서의 매 순간은 지옥과 같았다. 그러나 아내를 생각하면서 견디어냈다고 그는 회상한다. 다른 수용소로 끌려간 아내의 생사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꼭 살아남아서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러한 경험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요즘 너무나 만연해진 자살 현상을 보면 가족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어도, 또 자살하려는 순간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만 생각해도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프랭클은 이렇게 생각한다. ‘육체적 자유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 나의 의지는 분명히 내 것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의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삶의 의지를 불어 일으킬 수 있지만, 반대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극적인 실례로 들어 말한다. 어느 작곡가가 희망과 확신에 가득차서 속삭였다.
“의사 선생, 얼마 전 꿈을 꾸었는데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인지 말해 주더군요. 바로 다음달 3월 30일이랍니다.” 그러나 3월 30일이 되었는데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3월 31일에 죽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살아야 할 이유
니체는 말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도 없고,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은 곧 파멸한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생각하라고 프랭클은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의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으라고 권면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시련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에 대한 희망
이 시대에 희망은 있는가.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져서 청년실업률이 치솟고 있고, 정치경제적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교육계는 어떤가. 아이들은 날마다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교사들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교육계의 비리들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워낙 만연한 것이어서인지 새롭지도 않을 정도다. 세계 곳곳에서 재해와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폭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장 지글러는 그의 책에서 풍요와 비만이 넘치는 이 세계 반대쪽의 절반 이상이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는 현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승자독식의 현대사회에서 희망을 실현시킬 확률이 줄어드는데도 살아남기 위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 이 땅이 과연 희망적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갑자기 교육부의 정책이 뒤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내 속을 태우는 아이가 갑자기 순종적이 되어서 고분고분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는 힘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받을만한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랑받기 어려운 아이를, 정말 얄밉고 힘든 아이마저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이 조금 더 넓어지기를 나는 희망한다. 갈수록 아이를 경쟁으로 몰아넣고 교사들을 파편화시키는 시스템 속에서도 어떻게 교육의 본질을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며 또 그러한 선생님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희망은 값진 것이다.


- written by j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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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6.24 01:40
짝 잃은 실내화
_ 이완 지음 | 송교성 그림/현암사,2009-08-25 00:00:00


(환경생태동화-짝잃은 실내화)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야 하는 3월에 계속 되는 눈과 추위로 지구환경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을 하고 있다. 지구의 대기온도 상승으로 인해 빙하가 녹고있다는등 많은 뉴스로 지구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아 한편으로는 부덤덤했었는데, 많은 비와 눈이 내리니 불안해진다. 지구는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 걸까.


 

(짝 잃은 실내화)는 환경 생태 동화 2번째 책으로 아이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가 이번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들 물건에 하나하나 이름을 적어주면서 물건의 소중함을 일어주었는데, 아이는 잃어버리면 또 사면 되지 하는 말에 적지 않게 당황을 했다. 예전같으면 아마도 학용품 선물이 제일 반갑고 기쁜 일이었지만, 지금은 흔하디 흔해진 학용품을 선물받으면 절로 얼굴이 징그러지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 또한 그렇다.


 

짝 잃은 실내화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속 주인공은 주인을 잃어버린 아이들 물건들이다. 짝을 잃은 실내화, 부러진 연필, 금이 간 지우개, 먹다 버린 일회용 라면용기등 학교 소각장에서의 하룻밤이야기이다. 한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실내화 한짝의 슬픈 눈물로 소각장의 작은소란이 일어난다. 각자 자신만의 사연을 늘어놓는 소각장 쓰레기들, 재활용코너에 들어가지 못한 우유팩과 병, 주인에게 무참히 버려진 연필등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인을 잃어버린  문구용품들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자신의 운을 다하지만, 그것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다음날 새로운 문구용품으로 신나게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모들이 잘못하고 있는가를 새삼 반성하게 된다. 물질이 풍요롭고 여유로워지면서 아이들은 물건의 소중함보다는 오히려 새것에 대한 욕심만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고쳐주려하기는 커녕 아이들의 경쟁심만 유발하여 일부러 망가뜨리기 까지 하는 아이들마저 생기는 현상이 일어난다.


 


(짝 잃은 실내화)에서는 아이들에게 물건의 소중함을 일러주기도 하고, 재활용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 작고 얇은 한편의 동화를 통해 아이들은 지구의 환경과 경제를 생각하는 조금은 더 자라나는 것을 느낄 것 같다.

 


★ 책을 읽고 활용해 보기 - 초등1학년과 6세 ★

 


-. 제대로 책을 읽고 기억했는지 재활용과 소각용을 나누어 보기로 함.


    1. 라면용기, 종이우유팩, 플라스틱 우유통, 캔, 플라스틱 용기, 종이를 재활용과 소각용으로 구분.


 

-. 요즘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1회용 용기 사용으로 1회용과 다회용을 구분지어 보기로 함.


     수저, 그릇, 접시, 컵등을 1회용과 다회용으로 구분지어 보면서, 1회용 용기 사용을 자제해야하는 것을 익힘.  



 

★ 책을 읽고 활용해 보기 - 초등1학년 ★

 

늘 부모님이 대신해주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 요령을 익히도록 함.


재활용의 종류는 어떤것이 있는지,


어떤식으로 재활용 되고 있는지, 익힘.

 

유리병, 플라스틱, 고철, 종이, 형광등, 폐가구, 영농폐기물, 의류를 어떻게 분리 배출해야하는지 하나하나 그물을 그리면서 활용




 그물을 그리면서 익혔던 쓰레기 분리배출요령을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익혀,


실생활에 적용을 할 수 있도록 해봄.



 


가장 중요한 쓰레기 줄이기 10가지 방법을 적어봄.


자료는 인터넷 사이트(http://www.envico.or.kr/ 한국 환경자원공사)의 자료를 가지고 직접 적어보면서


실천하는 방법을 연구해봄.




언제나 쓰레기를 줄이고, 제대로 된 재활용을 해야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부터 아껴쓰고 나눠쓰고 다시 쓴다면 아파하던 지구가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래동안 살게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말이다.


- written by 건희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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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6.22 10:15

쥐포 반사
_ 김영주 지음, 김호민 그림/우리교육,2005-03-02 00:00:00

한때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놀이였던(요즘도 종종하는지 모르겠지만...) '반사'라는 놀이가 먼저 떠올라 '쥐포 반사'라는 제목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옴에도 쥐포를 반사하다니?? 하는 의아함도 함께 떠오른다. 책을 펼치면 <쥐포 반사> 말고도  <무말랭이>란 친근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으, 띵까띵까. 으, 띵디리리.하는 음악에 맞추어 온몸을 흔들며 종이 마이크를 쥐고 춤을 추는 정아의 모습에 웃음부터 쏟아지는데, 그런 정아를 보며 춤쟁이, 오늘 또 벌받겠지요? 당연하지요.라면 대화하는 민구와 정아도 예사롭지 않다. 역시 아이들은 장난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니까..... 

국어 책을 떠듬떠듬 읽는다고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놀림받는 선화가 꼭 안고 있는 까만 비닐봉지에는 쥐포가 들어있다. 난로에 구워 먹으려고 엄마를 졸라서 쥐포를 가져온 것인데.. 아이들은 바보 공주의 쥐포라며 안 먹겠다고 놀려댄다. 앞장서서 놀려대는 것은 다름아닌 민구.
민구의 선동에 아이들도 바보 공주의 쥐포를 안 먹겠다고 동조한다.  

함께 나눠 먹으려고 넉넉히 가지고 온 쥐포를 소중히 안고 있는 선화는 금새 울상이 되는데, 민구는 급기야 선화의 비닐봉지를 낚아채 아이들에게 내민다. 아이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반사, 반사, 쥐포 반사.다.
바보 쥐포를 먹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놀림에 까만 쥐포 봉지를 바라보는 선화의 표정이 왠지 가슴 아프다.  

드디어, 선생님이 난로를 피우고 쥐포를 굽자 교실 안에 가득 풍기는 쥐포의 맛난 냄새~
다행히 선생님은 아이들의 쥐포 반사에도 불구하고 선화랑 둘이서 맛나게 먹겠다고......
그러다 다시 한 번 쥐포 먹을 사람이 없냐는 물음에 제일 먼저 춤쟁이 정아가 달려나가자 우르르 줄을 서는 아이들..... 민구도 결국 쥐포의 고소한 냄새를 이겨내지 못하고 달려나간다.
늦게 나가는 바람에 쥐포를 받지 못한 민구에게 마음씨 좋게 자신의 쥐포를 나누어 주는 선화의 착한 마음씨에 민구도 머쓱해진다. 쥐포 안 반사. 미안, 미안. 

또 하나의 이야기 <무말랭이>는 머리카락에 하얗게 보이는 비듬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혜순이 이야기이다. 구구단도 못 외우고 수학문제도 잘 못 풀지만 '한솥밥'이란 시를 신나게 외워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즐거운 급식시간 무말랭이가 싫은 혜순이가 화장실에 간 틈을 이용해 혜순이의 급식판에 자신들의 무말랭이를 슬쩍 올려놓는 진호와 병호 그리고 아이들....다시 돌아온 혜순이가 자신의 급식판에 수북하게 쌓여진 무말랭이를 보며 울자 성직이가 조용히 위로 한다.  

그 일을 계기로 성직이가 좋아진 혜순이는 숨김없이 성직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놀려대고.... 정말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모자란 것인지.... 

문득,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져 온다. 초등생 딸아이는 가끔 디카를 가지고가 쉬는 시간에 반아이들의 모습을 찍어와 보여주기도 한다. 시끌시끌 와글와글 쉬는 시간의 아이들 모습은 보기에도 정신이 없다. 그래도 딸아이는 아이 하나하나 이름도 알려주고 그때의 상황도 들려주느라 여념이 없다. 

내 눈에는 정신없이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인데, 카메라에 담아온 반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딸아이를 보면 행복한 모습이다. 가끔은 자기를 놀렸다고 들었던 아이의 모습도 더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고보면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놀리고 쫓고 도망다니며 소란을 떨며 쉬는 시간을 보내며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화를 놀리는 민구나, 반아이들이야 어쨌든 자신의 춤에 열중하는 정아,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에도 스스럼 없이 발표하는 혜순이, 놀려대는 진화와 병호 무리들..... 아직은 자신들의 행동이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아픔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지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닐까.... 그런 까닭에 선화와 혜순이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자신들의 행동과 선화와 혜순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


- written by 재윤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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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2010.06.17 11:55
지성에서 영성으로
_ 이어령/열림원,2010-02-25 00:00:00

젊은 시절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있는 창세기를 자주 읽었던 무신론자가 있다. 하나님이 낯선 것에 제각기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것에 감탄하여 하나님을 시인으로 이해한 시인이다. 자신도 그 하나님을 닮아 창조적인 문학작품을 써 보고픈 마음에 가끔 기도를 올린 우리시대 최고 지성인이자 연금술사다. 


바로 이어령 교수가 그다. 어떻게 그가 상대자로 여기던 하나님을 절대 타자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딸이 아파하는 갑상선 암과 시력장애, 손자가 괴로워하는 정신질환이 하나님에게 다가서도록 한 것이다. 자식과 손자를 대신해 아파하거나 치료해 줄 수 없는 육신의 아버지 너머로 천상의 아버지가 치료해 준 게 그 계기였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 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123쪽)


이것이 하와이 원주민들이 모여든 작은 예배당에서 드린 기도였다. 이전에 교토에서 홀로 생활할 때 읊조린 무신론자의 기도와는 전혀 차원과 밀도가 달랐다. 그야말로 병이라는 고통 속에서 신이라는 광맥을 찾는 기도였다. 그것이야말로 미적단계에 머물러 있던 그가 종교적 문턱을 밟은 최초의 호소였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무신론자였던 그가 유신론자가 된 배경과 그 간격들을 단백하게 그려주고 있다. 작년에 나온 〈젊음의 탄생〉이나 몇 해 전에 읽은〈디지로그〉와는 사뭇 다른 시성과 감성들을 발견케 된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기호학적 연상을 뛰어넘어 신을 향한 구도자의 소박함이 묻어 있다.


물론 그는 딸로 인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지만, 기적 자체가 하나님을 찾는 목적일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그것은 기복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그가 믿는 기적이란 이 세상에 단 하나, 오직 부활과 영원한 생명뿐이다.


그렇다면 영성의 문지방을 넘어선 이후, 여태 갈구해 온 지성과 이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성과 이성을 부정하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단정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성과 이성은 영성을 보완해 주는 마중물 같은 것임을 밝힌다.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합니다.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성이 없어져야 영성이 맑아진다는 태도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152쪽)


지성과 이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 영성은 신비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몸이 영을 담는 그릇이듯이, 영성은 지성과 이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영성은 지성과 이성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떠난 것은 광신이 될 뿐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그가 영성의 문지방으로 올라서지 못한 것은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라 한다.


이른바 한국교회 내에 자리 잡고 있는 맹목적인 광신, 종교 우월주의적인 이기적 사랑, 채우고 쌓아 올리는 세속 욕망의 유형들이 그를 여태껏 무신론자로 주춤케 한 이유였으리라. 물론 교회를 통해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과 개별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현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를 영성의 문턱으로 이번에 끌어올린 것도 후자였던 것이다.


아무쪼록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며 세례까지 받은 그다. 그것이 주는 무거움을 몸소 느끼는 바일 것이다. 세례란 그 몸이 물에 잠기는 의식을 뛰어넘어 영성의 수맥이 그를 통해 흘러나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를 비울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 때에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관용이 충만하게 드러날 수 있으며, 그 때에만 참된 영성의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까닭이다.



- written by littlech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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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6.14 00:26

책에 미친 청춘: 천권의 책에 인생을 묻다
_ 김애리 저/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2010-02-25 00:00:00

같은 20대가, 그것도 책을 너무나 사랑한 20대가, 책에 청춘을 걸고 당장 심장을 두드릴 독서목록을 작성하라며 엄명을 내리길래 딱 지금 내 마음과 같아 펼쳐들 수 밖에 없던 책이다. 그리고 방금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이 책이 자기계발 분야가 아니라 인문/교양 분야에 등록되어 있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처음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책을 좋아하는 이가 쓴 독서감상문 내지는 독서서평 정도로 생각했었다. 책을 말하되, 20대의 청춘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절묘하게 매치시키는 능력의 글솜씨가 다소 평범하면서도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 편에 들기 때문에, 때로 책이 쌓인 탁자 위만 봐도, 그저 책을 들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책에 미친 청춘]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 같다. 조금만 짬이 나기 시작하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신간을 검색하고, 읽을 목록을 작성하는 나도 어쩌면 조금은 책에 미쳤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이 책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란 듯이 이제껏 자신이 읽었던, 자신을 거쳐온 많은 책들 중 청춘의 흔들림, 방황, 즐거움, 발랄함 등을 어떤 식으로든 담고 있는 작품들을 추려낸 다음 비슷한 주제끼리 한줄기씩 묶는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친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들이여, 지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책의 세계로 빠져보라! 정말 흥미진진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책을 직접 읽고 어떤 식으로든 감상문을 기록해보기도 하면서 사유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타인의 책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감상을 읽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의미있고 뿌듯한 경험이 된다. 누군가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해볼 수 있고, 그러면서 나를 좀 더 다듬어가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라면 책 또한 당연히 청춘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에 미친 청춘]의 저자가 보내는 목소리에 무조건 동의한다. 책 말고, 책만큼 단시간에 무언가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책과 사람. 단 두 가지만이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책을 읽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비난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아니, 왜 책을 읽을까? 그저 생각에 잠기게 하던 어떤 침묵이 물음을 요하는 의문으로 바뀌면서 나는 그 답은 누구나 스스로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책에서 경험하는 세상은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살아갈만한 기쁨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보다는 내가 읽은 책이 쌓여가는 높이를 실감하는 게 더 좋고, 읽고 싶은 독서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더 좋다. 책 옆에 놓인 커피나 주스 한 잔이 더 사랑스러운 것 같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이 내게도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한 것 같다. 이 정도면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나에게 미친 청춘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책에 인생을 물어왔다. 그리고 책이 해답을 알려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이 나를 위로하고, 내가 책을 통해 치유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비로소 나는 책 없이는 결코 못 살겠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책이 없어도 살긴 살 것이다.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책이 책이라서 너무 좋다. 책이 있어서 너무 좋다. 그래서 하루하루, 매일매일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고, 내가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스탕달의 [연애론]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몇 번이나 벼르던 차에 여태껏 읽지 못해 또 한번 독서목록의 상위권에 올려놓는 책이 되었다. 나는 과연 스스로를 책에 미쳤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이 아니라면 내 청춘을 설명할 다른 키워드는 또 무엇일까. 지금껏 책을 통해 이해했던 세상을 벗어나 이젠 나에게 미쳐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이 나를 이끌고, 나는 청춘을 이끌어 어서어서 이 혼란스런 시간들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길 바래본다.

 

- written by 깊은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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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2010.06.14 00:15

쉘 위 토크 Shall We Talk
_ 김미화 외 지음, 지승호 /시대의창,2010-02-18 00:00:00


이 책은 인터뷰어 모음집이다.
지승호라는 전문 인터뷰어가 김미화, 김어준, 김영희, 김혜남, 우석훈, 장하준, 조한 혜정, 진중권씨를 만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지승호라는 사람이 낯설었다. 내가 모든 사람을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패스.
인터뷰 대상자를 보면서는 고민에 빠졌다.
김미화, 코미디언이면서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
김어준, 이 사람은 딴지일보의 총수라는 사람.
김영희? 흔한 이름이지만 생소했다. 약력을 본 후 아, '무릎팍 도사'에 나왔던 그 PD. 양심냉장고......
김혜남..... 모르겠다.(나중에 그가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의 저자라는 것을 안다. 서점에서 책 표지는 보았다.
우석훈, 이 사람의 강의는 한 번 들었지. <88만원 세대>의 저자
장하준..... 모르는 사람인가? <나쁜 사마리안>의 저자라구?
조한혜정..... 여자 같은데.....' 하자 센터'의 센터장이라고..... 그럼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 연관 된 이야기겠군. 정치 이야기는 절대 아니겠고..... 그렇게 책과 첫 만남을 했다.




맨 처음 만날 인사는 내가 익히 안다고 자부했던 김미화씨다.
그녀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느낀 것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성실성이었다.
그녀는 코미디언이다. 가끔 특별 출연형식으로 코미디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춰지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가 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애정을 그의 말 하나하나에서 볼 수 있었다. 코미디언과 시사프로그램을 진행이라는 조합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그녀의 불안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진행을 맡겨준 사람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을 것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잘 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성실함으로 그것을 커버했다. 그녀는 내가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고 느끼면 저 죽을지 모르고 매달리고 보는 그녀의 근성을 인터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필요한 일을,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느낌이다. 그녀의 일상은 소박하다. 소박한 삶을 꿈꾸는 그녀는 그냥 평범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일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 김어준 씨는 기억 되어 있다. 그 삐딱한 시선라는 표현이 맘에 그닥 들지 않으면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란 표현으로 바꾸겠다. 그는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다. 감히 말로서 그를 이길 자가 누가 있을까 싶은 사람이다. 김어준씨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말과 '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라'는 말이었다. 인상 깊은 두 이야기에서 공통점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었다. 의견을 들을 필요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일 뿐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말이었다. 선택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에 '맞아!' 무릎을 친다.



김영희 피디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 사람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읽었다. 프로그램을 만들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 자신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가 한 말 중에서 인상이 깊었던 말은 '방송은 깊이가 없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복잡해지고 그러면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는다.'는 말이었다. 깊이 다룰 수 없는 방송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만드는 작품 속에 휴머니티를 집어 넣으려는 그를 보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은 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고 또 교육방송의 '지식e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무엇을 하든 인간성을 시험하고 드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이말,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때로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로 힘들어 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는데 나쁜 의도를 가지고(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포함)일을 하게 되면 그 의도가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김혜남씨는 현대 사회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는 욕망이었는데 요즈음은 불안에서 오는 공포다.'라는 말이 가슴에 확 꽂혔다. 불안은 단순히 옆에 있는 것을 못 보는 단계를 넘어 오로지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서바이벌 문제)이라는 지적에서 산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러면서 그가 현대 사회를 진단한 다른 한 가지는 '자기 확신이 부족 시대'라는 것이었는데 불안정서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우석훈, 장하준씨 이야기는 내 관심 분야에서 벗어나 있어 크게 공감이 오지 않았다. 조한 혜정 씨의 이야기에서는 '돌봄의 문화'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고 요즈음 시대에 내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서포터 해야 할까하는 숙제만 잔뜩 안겨준 글이었다. 공감은 하면서도 적용을 하자니 버겁다는 현실 앞에서 의기소침해졌다.



진중권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말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변화를 제대로 잃어내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말만하게 되고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일만 하게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진중권씨는 과거의 정치는 이념적인데 비하여 요즈음 정치는 자기의 삶과 밀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변화된 정치를 읽고 표출하는 방식을 읽어야하는 게 요즈음 정치라는 말을 한다. 그가 촛불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런 패러다임 속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중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가 보는 촛불은 대중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법으로 대중을 묶어봤자 그 매듭은 허술할 수밖에 없어 결국은 풀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보화 된 사회 속에서 대중은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 해 내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 그들의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 현대의 정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인터뷰어인 지승호라는 사람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좋은 인터뷰를 따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애씀 덕에 좋은 글을 볼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 written by 아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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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지도안2010.06.11 11:44

죽은 새의 비밀 - 삶의 순환과 죽음에 대한 안내
_ 얀 손힐 (지은이) | 이순미 (옮긴이) | 정갑수 (감수) /다른 ,2008-09-08 00:00:00

< 죽은 새의 비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우는 사람을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삶과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또다른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서로에게 필요한 양분을 제공하며 죽음을 통해 자연으로 회귀한다. 자연에서 이루어진 순환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삶이 유지되는데 포식자의 맨 위에 존재하는 사람을 비롯해 육식동물,초식동물, 청소동물, 미생물의 삶과 죽음을 알아보았다. 이는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삶의 순환이라 하고  <다른>출판사에서 아이들을 위해 이러한 과정을 선명한 사진과 자료를 통해 잘 알려주고 있다. 

닫혀진 유리창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벌새를 보며  어떠한 생명이든 죽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지은이 얀 손힐은 < 죽은 새의 비밀>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과정, 죽은 후 일어나는 일, 자연의 위대함을 비롯해 삶과 죽음 또한 중요한 삶의 순환 과정임 말해주고 싶었나보다. 

아이와 함께 <죽은 새의 비밀>을 본 후 도화지 양면을 이용한 병풍 책자를 만들어보았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을 다시한번 되새기고 생명과 자연의 위대함을 새로이 마음에 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 스케치북 두장을 4번 접고 이어붙인 후 앞면에는 삶과 죽음의  테마를 정한다.
* 알맞게 자른 색도화지 위에 글과 작은 그림을 이용해 각 페이지를 만들어둔다.  
* 스케치북 뒷면에는 삶의 순환을 테마로 정한다.
* 풀밭을 만들기 위해 색칠도 하고, 색종이를 오려붙여 페이지 바탕을 마련한다.
* 초식동물,육식동물,청소동물로 분류한 뒤  사진을 붙여 완성하므로서 그림책을 보는듯한 시각효과를 내었다.
 
 

병풍 책자 완성된 사진. 1 . 땅에서 땅으로.. 삶의 순환 , 우리집 출판. ㅎㅎ

  

  
  

*사진에서 보여지듯 테마의 주제를 윗부분에 크게 적은 뒤 아랫부분은 기억하고 싶은 내용과  사진을 찾아 꾸민 후 
기본틀이 되는 하얀 도화지에 붙인다. 

* 마인드 맵을 이용한 먹이 사슬의 동그라미는 오백원짜리 동전을 이용했으며  

* 삶과 죽음의 내용을 번갈아 완성하므로써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삶의 순환이라는 큰 주제에 걸맞게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각 장을 배치했다. 

* 또한 알록달록 색도화지의 찢겨진 부분이 보이는데  이제는 다 커서 보지않는 책의 속지를 색도화지 대용품으로 사용.ㅎㅎ
 
 

병풍 책자 완성된 사진 2. 삶의 순환, 우리집 출판사.ㅋㅋ
 
  

  

우리 아이들은 가끔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은  자기만의 미니북을 만들기도 했지만  앞뒤면을 이용한 병풍 책자는 처음이었기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보면 이런 내용~ 뒤로 보면 저런 내용~  옆에서 풀칠은 엄마가 돕고, 사진을 찾아내는 일은 큰아이가 도움을 주었지만  거의 모든  부분을 작은아이가  만들었는데  자기가 만들어놓고 스스로 감탄을 한다. 잘~~ 만들었다고~ㅎㅎㅎ   


 

- written by 세상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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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베스트서평2010.06.09 18:42

쉘 위 토크 Shall We Talk
_ 김미화 외 지음, 지승호 /시대의창,2010-02-18 00:00:00

인터뷰어로 유명한 지승호 씨가 또 하나의 책을 냈다. 아마도 그가 낸 책중 가장 최근의 책은 아닐까 싶다. 참 부지런도 하다. 이번엔 특별히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이란 부제를 달고, 김미화, 김어준, 김혜남, 김영희, 우성훈, 진중권, 조한혜정, 장하준 등 8명의 각계 각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 실었다.  


내가 이 책을 잘못 보긴 잘못 보았다. 난 이렇게 쟁쟁한 인터뷰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해서 그들의 삶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하나 같이 나라 걱정하는 소리들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라 걱정하는 거야,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용도 좀 뻔해 솔직히 읽으면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저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이란 부제를 조금 일찍 발견했더라면 나의 책읽기가 조금은 즐겁지 않았을까? 어쩌 자고 난 이걸 나중에 발견해서 '책읽기의 괴로움'을 가중 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전혀 유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몇 인터뷰이들의 인터뷰는 상당히 유익했다고 본다. 특히 김미화씨나 김영희씨 또는 김어준씨의 인터뷰는 확실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해도 좋을 만한 김미화씨. 난 그녀가 점점 보면 볼수록 좋아진다. 그렇지 않았도 자신의 특징 중 하나를 뽑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안 좋아하면 못 견디는 성격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럴까? 확실히 그녀를 보면 사람 좋은 냄새가 난다. 그녀가 자신의 성격을 그렇게 말했을 땐 그만큼 본인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사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기란 요즘 같은 세상에 흔한 성격은 아닌 성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의 소탈한 성격이 인터뷰 중에도 그래도 베어 있어 흐뭇하다. 그녀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또한 김영희 씨도 남 다르단 생각을 해 본다. 그에 관해서는 이미 '무릎팍 도사'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방송에 대한 소신이나 방송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한편,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대목은 아무래도 김어준 씨가 아닌가 싶다. 특별히 저자와는 막역한 사이라서 그런지, 격이 없이 대화하는 게 인상적이다. 말하는 것도 독설에 가깝고. 그러면서도 어느 부분에선 정말 맞는 이야기를 한다. 특히 그의 '사랑론'(?)이나 '상담'에 관한 철학은 가히 새겨들을만도 한다. 또한 조한혜정씨의 말도 새겨볼만 하고. 나머지 우석훈이나, 장하준, 진중권이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솔직히 난 이 세 사람은 건너 뛰었다. 그것은 내가 그다지 경제에 관심없는 탓일 것이다.ㅜ) 


그런데 내가 이 책을 통털어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김혜남씨의 인터뷰 부분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거의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지만, 확실히 이 분야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은 솔깃하다. 인터뷰 중, 그녀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불안'과 '공포'라고 했는데 갑자기 급관심이 생겼다. 특히 정치가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경계하고 있는데 이건 확실히 새겨볼만 한다. 
실은 다음에 준비하는 책이 공포에 관한 것이거든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가 공포기 때문이에요. 정치도 공포를 통해서 사람들을 통치하고, 사실은 경제도 불안을 자극해서 물건을 팔고, 교육도 공포를 통해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전반적으로 지배당하고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면서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정서 같습니다.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죽자 살자 노력하거든요. 행복이라든지 인간적이라든지 이런 것에 눈을 돌릴 수도 없고, 오직 자기밖에 안 보이거든요. 욕망은 승화시킬 수도 있고, 퍼져나갈 수도 있고요. 욕망이 날들 보기에 좋지 않으면 다른 멋진 욕망으로 바꿀 수도 있고, 척이라도 할 수 있는데, 불안은 옆에 있는 사람을 못 봐요. 자기밖에 못 보고, 오로지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 서바이벌이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성공이 문제가 아니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절박한 거고요. (178p) 

정말 그렇지 않은가? 더 정확히는 정치가 그렇다기 보다 공포가 사람을 다스리는 통제 수단이 된 것이다. 이건 확실히 위험한 것인데, 그가 언제 이것에 관한 저작물을 낼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조한혜정씨의 인터뷰도 주목하여 볼만 하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으로 안다. 아무리 권세가 하늘을 찔러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것에서 이긴적이 과연 이 말이 현실성 있는 말인가? 그냥 구호성에 지나지 않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한 건데 아무튼 믿음이 가지 않는다. 


사실 변명 하나를 하자면, 내가 우석훈이나 장하준이나, 진중권에 관한 부분을 주마간산씩으로 대충 훑고만 것은 그들이 좌파 지식인의 선봉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욕을 먹고 있는 것과 관련이 없지 않다. 솔직히 너무 많은 욕을 먹으니 내가 다 민망할 정도다. 마치 내가 욕을 먹는 것 같다(그렇게 따지자면 난 김어준씨의 인터뷰도 읽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양반은 워낙에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는 존재라 나라도 그 궁금증을 피해갈 수가 없다). 욕을 먹는 쪽이 있으면 욕을 하는 쪽이 있기 때문인데, 하도 욕을 먹으니 욕을 하는 쪽도 왜 욕을 하나 듣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오늘 날의 한국의 현주소를 읽으려면 좌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처럼 논리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파는 과대망상에 메시아 컴플렉스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나라의 앞으로를 볼 때 일정 부분 우파를 의지해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비해 좌파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좌파나 우파나 둘 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나름의 진단과 전망을 내놓기는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이렇다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설혹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기엔 강력하지도 못하다. 그러다 보니 좌우가 갈라져서 서로 너 잘 났니, 나 잘났니 하며 싸움만 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난 김혜남씨가 어떤 저작물을 내놓을 것인지 궁금할 다름이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 국민은 이만큼 관심이 없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토록이나 관심이 많은 것일까? 그만큼 정치가 불안해서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집단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난 솔직히 그들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정치에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위에 계시는 분들이 좌우간 알아 잘 해서 말이다.(이렇게 말하면 너무 속 보이는 일일까?) 아무튼 우린 (아직) 그렇게 되기엔 너무 음흉한 구석도 많고, 투명하지가 못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좀 들었으면 좋겠다. '고언'을 한다고 하지 않은가? 서로 말하려고만 하고 듣지는 않으려고 하니 읽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 갔다. 언제쯤이면 말하는 시대에서 듣는 시대가 될까?                              


- written by stella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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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더스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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