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ㅣ도모노 노리오ㅣ지형(2007)
                                                                                                                             -  김보일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손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아닐까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공익(共益)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결실도 얻게 된다.”라고 말하죠. ‘보이지 않는 손’을 다르게 부른다면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닌 게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는 ‘보이는’ 존재는 없습니다. 또 사지 말라고 권유하는 존재도 없고요. 가격이 적당하면 사고, 가격이 비싸면 사지 않는 것이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구매 시스템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매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보이지 않는 존재’, 바로 가격입니다.

시장의 가격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저절로 조절되고, 생산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논리가 아담 스미스와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핵심적 논리죠. 가만 놓아두어도 가격이 거래를 성사시키니, 정부는 범죄 예방을 위해 치안유지 차원에서 야경꾼들로 하여금 순찰이나 돌게 하고, 가급적이면 시장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야경국가론’입니다. 국가는 가급적이면 국민들의 생활에 시시콜콜하게 간섭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국민들의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알아서, 자신의 이익을 좇아서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니, 국가는 뒷짐 지고 있으라는 것이 아담 스미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일까요? 적어도 아담 스미스와 같은 학자들의 자유주의 경제학은 합리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전제로 합니다. 스위스의 물리학자 베르누이의 ‘기대 효용 이론’도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죠. 기대 효용 이론은 행동의 귀결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경제주체의 판단은 결과에 관한 효용의 기대치에 입각하여 이뤄진다는 이론이죠. 쉽게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결정한다는 이론이죠. 100만원의 봉급을 주는 회사보다는 120만원의 봉급을 주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기대 효용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인 다니엘 커너먼(심리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그러나 맞습니다.)은 효용을 부의 절대적인 수준으로 측정하는 것을 ‘베르누이의 착오’로 표현했죠.

예를 들어 K는 한 달 사이에 금융자산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줄었고, P는 1000만원에서 1100만원으로 증가했다고 가정해볼까요.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요? 베르누이 같으면 최종적인 부의 수준을 척도로 K가 더 행복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P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심리학 실험이 말해주는 진실입니다.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최종적인 부의 절대치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또 다른 예를 볼까요. 6년 간 급여 총액은 정해져 있고, 두 가지 봉급체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첫 번째 봉급체계는 처음에는 임금이 낮은 편이지만 점점 상승하는 패턴이고, 두 번째는 처음에는 봉급이 높지만 점점 더 하락하는 패턴입니다. 어떻습니까. 고민이 되죠? 그러나 아마도 점점 월급이 오르는 상승패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사실 이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어요. 합리적 관점에서는 초봉이 높고 그 후 조금씩 하강하는 패턴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입사 초기에 받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면 더 큰 돈을 벌 수도 있고, 회사를 다니다 도중에 퇴직하더라도 퇴직 시점까지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강 패턴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손실회피성향’입니다. 즉 지금의 높은 임금이 준거가 되면 다음 번 임금이 감소하는 만큼을 손실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이 패턴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커너먼의 실험에 따르면 1000원의 손실이 주는 불만족은 1000원의 이익이 주는 만족보다 2~2.5배 컸다고 합니다. ‘1000’원의 절대치를 효용적 가치로 볼 때는 1000원의 손실이나 1000원의 이익이 모두 같다고 할지모르지만 그것을 심리적 가치로 보자면 내 손에 굴러들어오는 ‘떡’보다 내 손을 빠져나가는 ‘떡’이 몇 배 커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가치는 절대치가 아니라, 기준이 되는 ‘준거점’에 의존되어 측정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준거점 의존성(reference dependence)’입니다. 동일한 붉은 색이 검정색을 배경으로 했을 때와 하얀색을 배경을 했을 때 다르게 지각되듯이, 동일한 변화에 대해서도 준거점이 다르면 다른 판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행동경제학

부의 절대치의 크기만을 보고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준거점 의존성(reference dependence)’과 함께 ‘민감도 체감성’과 ‘손실회피성’은 다니엘 커너먼의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민감도 체감성’은 같은 3도 차이지만, 기온이 1도에서 4도로 오를 때가 21도에서 24도로 상승할 때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설명하는 인간의 행동 특성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이 재화의 ‘효용적 가치’가 아니라 ‘심리적 가치’라는 것이 다니엘 커너먼의 ‘행동경제학’의 기본 전제라는 거예요. 아담 스미스와 같은 고전적인 경제학자들은 ‘효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을 합리적인 인간으로 보았다면 다니엘 커너먼과 같은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을 결코 완벽한 이성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짓지 않는다고 보았죠. 오히려 인간은 감정에 치우친 결점과 오류투성이일 수 있다는 거죠.

도모노 노리오가 쓴 행동경제학 해설서인 『행동경제학』에서는 커너먼이 창시한 ‘휴리스틱(heuristic)’과 ‘바이어스(bias)’ 개념을 소개합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불완전하지만 판단에 도움이 되는 주먹구구식 직감'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하죠. 휴리스틱은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이 내리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설명하는 데 아주 유효한 개념이죠.

가령 MP3를 구입한다고 할 때, 이 구매행위가 완전히 합리적이 되려면 시중에 나온 MP3를 모두 분석해야 하죠. 가격, 성능, 디자인, 애프터서비스 수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죠. 고려사항이 너무도 많고,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간도 부족하구요. 이 어려운 결정을 손쉽게 하는 것이 바로 ‘간편 추론법’, 즉 ‘휴리스틱’입니다. 좋은 회사, 인지도와 같은 것이 판단을 결정짓는 일종의 휴리스틱인 셈이죠.

그러나 좋은 회사, 인지도 같은 속성이 MP3의 질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오류인 ‘바이어스’를 만들어냅니다. 일류회사 제품이라는 것을 믿고 덜컥 MP3를 구입했더니 그 제품의 질이 형편없다면 그건 ‘휴리스틱으로 인한 바이스어스의 발생’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거예요. 구매행위에 비합리성이 발생한 것이죠.

이런 비합리성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을 학벌로 판단한다든가, 출신지역으로 판단하는 것도 일종의 휴리스틱이고,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로 그 사람의 미적 감각을 이해하는 것도 일종의 휴리스틱이죠. 이런 비합리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도 안 되겠고,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부터도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우린 정보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또 판단력과 상상력의 부족으로 곧잘 사고의 비합리성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잦죠.

수학적 확률이 인간의 행동을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책이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에게 자살과 타살 중 어느 쪽이 많은가 물어보면 대부분 타살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착각이 발생했을까요? 그 이유는 뉴스에는 자살보다 타살사건이 훨씬 많이 보도되기 때문에 이것이 휴리스틱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가 판단할 때 자주 활용하는 휴리스틱은 실제 사실이나 객관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요.

이와 관련하여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는 재밌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저자는 과학,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대중이 위험을 느끼는 원인을 설명하면서 불안은 확률이 불러오는 것이 아닌 본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커너먼과 같은 맥락이죠.)

책에 의하면 미국의 엔지니어인 C.스타는 1960년대부터 위험에 대해 연구해 왔다고 해요. 그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죽을 확률이 사냥을 하거나 스키를 타다 죽을 확률보다 훨씬 적은데도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훨씬 더 위험하게 느끼는 것을 발견했죠. 베트남 전쟁에서 죽을 확률이 오토바이를 타다 죽을 확률 정도밖에 안 됐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위험은 전쟁이 훨씬 크다는 이야기죠. C.스타는 사람이 느끼는 위험의 정도가 다른 것은 자발성과 비자발성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사람들이 스키와 사냥, 오토바이를 선택하는 것은 ‘자발적’인 욕구나 필요 때문이지만, 전쟁에 징집되거나 원자력 발전소가 집 근처에 들어오는 것은 ‘비자발적’이라는 것이죠.

이 흥미로운 과학에세이는 또 한 명의 심리학자 폴 슬로빅을 소개하죠. 그는 사람이 위험을 느끼는데 있어 자발성 변수 외에 위험의 원인, 피해의 정도, 노출된 사람에 따라 비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비행기사고나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위험에 노출된 사람도 소수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커너먼의 논리대로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이 확률과 같은 합리적 요소가 아니라 심리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커너먼은 인간이 비합리적 존재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2002년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우리가 한 일을 인간의 비합리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받아들이지 않겠다. 휴리스틱(heuristic)과 바이어스(bias)에 관한 연구는 합리성이란 비현실적인 개념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착각하기 잘하는 인간, 바로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지,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안심하지는 마세요. 또 어떤 실수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알지랑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