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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자유화를 향한 문학적 저항
열일곱 살의 털ㅣ김해원ㅣ사계절(2008년)
 
 
                                                                                                                                  -김보일


대한민국에서 머리를 깎아야 하는 집단은 넷이다. 먼저 승려, 다음은 죄수, 그리고 군인, 마지막으로 학생이다. 승려는 자발적으로 머리를 깎는다. 삭발은 속세와의 절연을 의미한다. 욕망에 이끌리는 속세와의 삶을 단호히 청산하겠다는 의미다. 군대와 교도소에서 군인과 죄수의 머리를 일제히 짧게 자르는 것은 효과적인 억압과 지배를 위해서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할까. 『감시와 처벌』의 저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에 의하면 귀밑머리를 3센티로 깎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규율을 만든 것일까. 푸코에 의하면 다만 그것을 지키도록 만드는 과정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규율을 강제한다는 것이 푸코의 대답이다. 군인과 죄수의 머리를 짧게 자르게 하는 것이나 학생의 머리를 짧게 자르게 하는 것이나 그 이유에 있어서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한다는 강령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강력한 믿음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두발에 있어서 개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학교 권력에 대한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두발자유화’만큼 찬반의 논란이 분분한 소재도 없다.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고, 학교현장에서 두발 규제에 대한 학생들의 시위 사태가 곧잘 신문지상에 보도되곤 한다.

이렇게 민감한 소재인 ‘두발자유화’를 본격적인 문학의 소재로 다룬 소설이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열일곱 살의 털』이다. 자칫 지레짐작으로 이 책이 ‘두발자유화’의 주장을 외치는 생경한 고발문학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문학이 어떠한 주장을 말하되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실례를 보여준다. ‘머리털’을 둘러싼 풍성한 담론과 작가의 녹록치 않은 성찰은 이 소설을 한낱 ‘소재주의적인 소설’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한다.

주인공은 열일곱 살 소년 송일호다. (‘일호’라고 하니 ‘일호(一毫)’가 연상된다. 한 터럭이라는 뜻이겠다. 재미있는 명명이다. ‘쪼잔’하고 물컹했던 범생이 일호가 학교의 강압적인 두발규제에 맞서 정학을 당하고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나와 가족과 세계에 대해 눈을 뜨며 ‘야물딱지게’ 커가는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다. 두발단속에 저장하는 주인공 송일호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이발소인 태성이발소의 3대 이발사다. 고조 할아버지는 고종황제 시절 단발령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의 상투를 자르는 관직, 체두관이었다. 머리칼을 자르는 가업으로 삼는 집의 손자가 머리칼을 자르는 것에 저항한다는, 이런 아이러니한 설정이 소설에서 시종 긴장과 흥미를 이끌어낸다. 이발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믿고 살아온 할아버지의 ‘세상의 모든 머리털은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고, 아이들의 머리털은 부모의 동의를 얻고, 어른은 스스로 허용해야 이발사가 가위를 든다.’라는 ‘두발 철학’에 구체적인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도 이발사 가족이라는 특수한 일호의 가족사다.

할아버지가 보름마다 해주는 '삼삼삼'(앞머리, 뒷머리, 옆머리 모두 3㎝) 이발 때문에 입학식 날부터 '모범생 1호'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은 일호는 체육선생이 두발 규정을 어긴 아이의 머리에 라이터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것을 보고 돌변한다. 이 과정에서 일호는 ‘열일곱 살의 털’은 단순한 ‘털’이 아니라 인격과 인권의 문제임을 깨닫고 두발 규제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마포구 도원동 일대의 재개발을 놓고 주민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나뉘자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니 반대를 해야 쓰겠습니까? 우리가 따라야지요.”라며 찬성파로서 주민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재개발을 하게 되면 개발 이익은 건설업체가 챙기고, 영세한 주민들은 살던 집마저 빼앗겨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대하는 세입자들의 시위에 동참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손자, 일호의 1인 시위 사실을 알게 되자, 교내 이발소에서 학생들 머리를 별 모양으로 깎으며 손자에게 힘을 보탠다.

일호가 체육교사의 라이터를 빼앗아 내던진 바로 그 날. 17년 전 원양어선을 탄 이래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돌아온다. 다음날 학교 상담실로 불려간 아버지는 학생부장에게 “바리캉으로 머리를 미는 행위는 반인권적”이라며 맞선다. 1980년대 운동권 세대를 상징하는 듯한 일호의 아버지는 학생부장에게 거의 준비된 연설문에 가까운 훈계를 늘어놓는다. “ 아이들의 반대의견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묵살하고 제재를 가하다 보면 올바른 교육을 해칠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라고 묻는 대목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대한민국의 경직된 교육현실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는 점에서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겠다.

1895년, 고종은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단발령을 단행한다. 짧은 머리는 사실 위생개혁의 일환이었다. 그 시절이야 샤워 시설이나 온수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이가 득시글거리던 시절이었으니 짧은 머리가 위생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신체의 자유, 인권에 대한 시민의식도 그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겨울에도 하의 주머니를 꿰매게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학생으로서의 절도와 품위가 손상된다고 으르대던 군사독재시절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열일곱 살의 털』은 이런 점에서 좋은 타이밍을 맞았다. 더구나 한 영화사에서 이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이다. 과연 열일곱 살의 머리털은 누가 관리할지, 두발자유화에 대한 사회 각계의 성숙한 의견 교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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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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